작품집-명정기

명정기

두칠이

23. 白晝에 햇살을 이불 삼아



	23. 白晝에 햇살을 이불 삼아 산청군 시천면 소재지인 덕산에서 우리 3인은 그날 하오를 즐길 술과 안주를 샀다. 덕산은 지리산 국립공원 남부지역 관리사무소가 있으며 지리산 남부로 올라가는 주요 관문 인 셈이다. 밤과 죽산물 그리고 임산물 거래가 성행하며, 물맛이 좋아 막걸리 맛이 유난하 다. 차가 남해고속도로를 지나 추석 귀성객의 편의차 일시 사전 개통한 진주 함양간 고속도로를 타고 덕산에 도착하니 2시가 채 못되었고 추석이 아직 삼일이나 남았으니 차 막힘이 아직은 순조로와 추석연휴에 앞서 자투리 기간을 이용하여 하룻밤을 지리산 계곡서 물놀이하며 남 자끼리 자유롭고 유쾌한 시간으로 마음껏 酩酊(명정)을 하자고 여기 지리산 대원사에서 4킬 로를 더 올라갔다. 준비물로 야영용 텐트 하나 취사도구 그리고 덕산서 동동주 4되와 소주 한 되 그리고 푸줏 간에 들려서 시골 한우 등심 서 근에 돼지 삼겹살 2근을 준비했다. 그리고 물고기 천렵용 어항과 고기 뜰 망을 사고 떡밥도 샀다. 잘 익은 술 냄새가 오래된 친구의 우정처럼 향기롭게 피어오른 차 속의 우리 3인은 가슴 가 득 부푼 소학교 학생의 소풍처럼 즐거웠다. 이십대 후반에 한 직장에 입사한 우리는 20년을 같이 다녔으니 가족 아닌 가족이다. 한 직 장에서 매일 만나며 회식에 놀이에 어울렸으니 가족보다 同樂(동락)하는 시간이 길고 서로 가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며 지내는 사이이니, 마음 터놓을 좋은 벗이랑 추석처럼 좋은 계 절에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중봉 물이 남쪽으로 흐르는 조갯골로 밤새워 술 마시러 酩酊 (명정)하러 가는 길이었다. 술도가에서 나온 지 3일이 지난 동동주를 구했으니 발효가 충분히 되어 술 향기가 차 속에 가득 넘쳐나고 얼마 아니 가서 시작될 술판의 기대와 산중 진미인 등심 소금구이를 기대하 며 차가 대원사를 지나면서 우리는 콧노래를 흥얼대고 있었다. 새재 마을에 차를 대고 조갯골로 올라서니 계곡은 추석전이라 사람이라고는 보이질 않았다. 골이 깊고 물이 좋으니 민박집과 농가가 있어 관광객 몇몇은 있을 것이나 산골의 마을은 사 람이라고는 찾을 길 없었다. 그러니 오늘 이 계곡은 우리가 통 채로 빌려쓰는 셈이다. 바위 계류가 沼(소)를 만든 물 옆에 물이 밀어 올린 모래가 펑퍼짐하게 모래 둔덕을 만든 바위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바나를 피우고 상추와 양파 마늘을 차리고 불 판 올려 바로 고기 굽고 잔에 막걸리 채워서 一杯(일배) 一杯 또 一杯 지글지글 고기 굽는 연기는 코를 간지르고 그 연한 고기에 상추며 고추를 싸서 된장 찍어 먹으며, 동동주 향기를 온 산에 흩트리며 쉼도 없이 끝도 없이 마시 고, 떠들고, 돌리고, 부딪치고, 순식간에 되 병 막걸리 4통이 동이 나 버렸다. 이제 소주를 막걸리 잔에 채워 막걸리처럼 부어 마셨다. 모래톱 옆 바위 물 속으로 된장과 떡밥 풀어 넣어두니 피리 쉬리 잔챙이 산중 고기가 어항 에 가득하여 물 반 고기 반으로 어울리어 논다. 고개를 들고 산허리를 보니 먼 산은 그 연 한 紅(홍)을 엷게 감추고 밝고 맑은 가을 햇살에 푸른 하늘만 계곡을 천연스럽게 내려다보 고 있었다. 물소리가 사방에서 울리어 들리니 술기운이 오른 우리는 몸도 식힐 겸 초가을 더위도 식힐 겸 목욕을 하자고 그 자리에다 옷을 훌훌 벗고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 시원함과 청량감 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하리오마는 물싸움 장난에 작은 폭포에 싸워하며 잠수하여 상대방 뒤 집기를 하다가 물길을 따라 바위를 타고 벗은 몸으로 오르니 바위가 넓게 파져 소를 이루고 폭포 물이 그대로 떨어지는 이름 없는 潭(담)에 올랐다. 그 푸르고 맑은 明鏡止水에 이 한 몸 보잘 것 없는 이 肉身(육신) 미련 없이 담그니 두둥실 얼씨구나 노래와 춤과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목소리 좋아 노래와 唱(창)이 좋은 박처사가 先唱으로 부르니 햇살이 미끈한 바위에 진종일 살 비벼 데워진 까만 부드러운 바위 평지로 나왔다. 물 속에서 나오니 몸이 떨리고 추웠다. 그러니 저절로 춤이 나왔다. 셋 중 한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둘은 그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춘다. 深山幽谷(심산유곡) 폭포 아래 너럭바위 댄스 홀 에서 3인은 술에 취해 목욕하고 옷 벗은 맨몸으로 미친 듯이 흥에 겨워 뛰고 소리치며 춤춘 다. 두 팔을 벌려 흔들며 춤을 추니 흔들리는 錘(추)가 또 하나씩 있으나, 누구 보는 이 없고 흉보는 이 없고 미안하고 부끄럽고 마음에 그슬리지 않으니 바로 이런 세상이 천국이고 우 리가 최고의 自然人(자연인)이니 身土不二요 諸行無常(제행무상)이라. 내가 곧 하늘이요 내가 곧 自然(자연)이로다. 한바탕 신풀이를 마치고 나니 우리끼리라도 얼마나 즐겁고 우스운지 입을 닫지 못하였다. 술도 취하고 몸도 지쳤으니 계곡에 흩어져 있는 큰 바위에 몸 붙여 길고 크게 팔 벌려 누우 니 셋이 하나같이 잠이 들었다. 따스한 바위에 식은 몸 밀착하여 뺨 대고 팔베개로 눈감으 니 잠이 들었다. 세 사람은 알몸으로 단잠이 들었다. 시인 변영로선생은 그의 수필 명정 사십 년에 옷 벗고 白晝(백주)에 소을 타고 놀았다고 했 는데 우리는 白晝에 햇살을 이불 삼아 계곡의 넓게 앉은 바위 셋 위에 神仙(신선)이 되어 잤다. 단잠 한숨을 자고 일어나 서로를 바라보니 서로가 하나같이 裸身이라 이제서야 武陵桃源의 꿈길에서 깨어 나와 이승으로 왔는지 그제사 이 벗은 몸이 부끄러워 벗어둔 옷을 찾아 입었 다. 술은 다 깨고 머리는 맑은데 아직도 가을 해는 서산으로 지지 않고 반짝이는 가을 山色 (산색)에 부딪히고 있었다. 夢遊桃園(몽유도원)에서 翠扇(취선)이 되어 한나절 놀다가 俗世(속세)로 되돌아 온 사람이 된 것도 같은 우리 모습을 서로 바라보다 그만 빙그레 웃고 말았다. 그리고 담구어 두었던 물 속 어항을 보니 그 많던 물고기는 다들 어디로 갔는지 한 마리도 보이질 않고 빈 어항만 남았다. 아! 모두가 꿈이로다. 一場春夢(일장춘몽)이었구나. 짐을 챙기어 새재로 드니 桃花(도화)는 없고 철 이른 사과가 온 마을 밭에 따스한 가을 햇 살에 단물을 담고 있었다. 그 후로 그 새재 마을 조갯골로 두 번을 더 갔었다. 그러나 그 마을엔 별장이 서고 산장과 모텔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추석이려도 사람이 끊이지 않고 우리가 놀았던 그 바위 댄스 홀과 폭포와 소는 그 자리에 있어도 우리가 놀았던 그런 분위기 있는 장소도 놀이터도 아닌 것 같아 목욕도 춤도 못 추고 멀리서 바라보다 돌아왔었 다. 아마도 이제 다시는 그 곳에 武陵桃源(무릉도원)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 무릉도원으 로 초대받은 사람이 되었다. 2000. 0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