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명정기

명정기

두칠이

22. 노란 밤 노란 술



	22. 노란 밤 노란 술 술 이야기를 하자니 군 복무시절의 술 마신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허나 그 시절을 지내본 대한의 남아 분들께서는 이해가 될 줄 알지만 혹 경험하지 못한 사 람께서도 이해는 하시리라 믿고, 젊은 나이에 친구 좋아 마시고 술 좋아 마신 이야기이니 편하게 들어보기 바란다. 내 군대 3년을 완전히 같이 보낸 친구 3인이 있었다. 같은 부대에, 중대에, 소대에, 졸병시 절에 전입 와서 제대할 때까지 지냈으니 3년이 아니라 30년을 같이 지낸 친구라 해도 될 터 이다. 그중 기영이는 무척 애주가에 호주가다. 그래서 소주라도 한 병 생기면 기영이랑 숨 어서 마셨다. 취침 점호 후 1시간 자다말고 기상을 했다. 소주 한 병 마시고 자자는 것이 다. 취침 전에는 점호시 술 냄새가 풍기니 못 마시고 하는 수 없이 자다가 일어나 마시고 잤다. 내의 차림에 막 잠든 눈 비비고 일어나 취사장 문틈에 끼워두었던 술병을 찾아 미식 기 두 개에 반병씩 따라 단숨에 마시고 소금 한줌 입에 털어 넣고, 그 술이 가슴에 데워지 기도 전에 다시 잠이 든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 같았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게 영내 (營內)에서 마시고 싶었다. 술이 그리웠다. 아니 엄마보다도 여자보다도 술이 아쉽고 애틋 했다. 그 기영이와 서울서 만났다. 제대 후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마음놓고 술 마실 시간은 서 로가 없었기에 만나자마자 술과의 전쟁을 치렀다. 마치 우린 그 동안 이 전쟁을 위해 갈고 닦고 연마한 사람처럼 술집으로 전진했다. 나는 전역 후 남도의 향리에 살았고 그는 안동 양반이지만 서울서 살고 있으니 그는 주인이고 나는 객인 셈이다. 그래서 그냥 그 녀석이 가지는 데로 이끌리어 갔다. 밤은 깊었고, 강남의 잘 나가는 룸 살 롱이지 싶다. 밴드와 아가씨 불러놓고 돌아가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곳이다. 지금의 가요주 점이랑 좀 다른 그러니 음악이 생 음악이란 점이 다르구나. 악사가 둘이 들어온다. 아코디 언과 기타를 멘 악사가 악보를 일일이 찾아서 연주를 하거나 아니면 그의 머리 속에서 익힌 악보로 즉각 연주해 주는 곳이다. 물론 노래 부르는 사람은 가사와 곡을 익히고 있어야 따 라 부를 수가 있다. 그러나 박자는 악사가 잘 맞추어 연주하니 지금 노래방처럼 박자 놓칠 염려는 없었다. 술꾼도 가끔씩 술 마시다 술값 걱정은 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그날은 전혀 술값 걱정이 되 질 않았다. 내 생각에 그녀석이 이 정도는 정리할 능력이 될 것 같았고 이 정도의 술값이 얼마나 나올지는 향리에서 올라온 나로서는 전혀 감도 느낌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술맛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내 항상 이야기하듯이 술 중에 제일 맛있는 술은 술 잘 마시는 좋은 친구랑 술값 걱정 없이 마시는 술이라고 일찍이 터득했고 설파했듯이 바로 그 날이 그런 날이었다. 군대 친구 만나면 군대시절 이야기 빼면 이야기할 것이 없잖은가? 고 참들 선임하사들 씹는 안주로 졸병시절 줄빳다에 숨어서 술 마신 갖은 기억들 회상하며 자 정이 넘도록 마셨다. 손님이 둘이니 아가씨와 밴드가 더 마신 술이었을 것이다. 80년대 강 남 유흥가의 하루저녁 술값이 얼마나 나갈까? 그러나 나는 지금도 모른다. 모든 비용이 포 함한 풀 코스의 턴키 베이스의 술값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녀석은 그 술집에서 제공하는 승용차에 타고 혼자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나야 전후사정을 잘 모르니 나 혼자 남을 수도 없으니 그 녀석을 따라 아파트로 취중에 따라 갔었다. 강남서 차를 타고 인천쪽 부천 어디 라고 했지 싶은데 그렇게 멀리 까지 자정을 넘어서 가니 생전 처음 보는 부인이 토끼 같은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상 차려놓았는데 어찌 이리 늦으시오? " 내 친구 왈 "어어, 어어, 학근아 저, 저, 뭐교? 인사해라 내 집사람이다." "그리됩니까? 처음 뵙습니다. 꿀꺽. 딸꾹." "그라모 우리 여기 마루에서 자자" "학근아, 오랜만에 우리 둘이 안고 한번 자보자" 그렇구나 졸병시절 우린 한 모포 덥고 잤다. 내무반이 하도 추워서, 추위 때문에 우린 서로 부둥켜안고 잤었다. 그러다 장난으로 불알도 만져주고 잤다. 강남의 양주 얼마나 독하던지 다음날 일어나니 천장이 노랗고, 친구도 부인도 노랗고, 아침 밥도 노랗다. 출근하는 친구 따라 나와서 서울 거리를 걷는데 하늘도, 땅도, 사람도, 서울 천지가 내 눈에는 노랗게 보였다. 어제 밤 먹은 술, 노란 술을 먹었는가? 어느 대로변 대중 목욕탕에 갔었다. 그리고 탕 바닥에 쓰러져 한나절을 잤다. 비몽사몽(非夢似夢), 주몽사몽(酒夢似夢)간에 자고 일어나 출근한 기영이에게 낙향한다고 전화를 걸었 더니, 그 녀석 참 술 한번 세더구나. 끄떡없이 오전 일과보고 나 점심 걱정하고 있었다. "야, 야, 내 마, 내려간다. 내 가서 연락하마." "어 그래, 갈 수 있겄나? 하룻밤 더 자고 가모 안 되겄나?" "야, 머라카노? 니 내 목가지 자를 일 있나?" "그래, 그래 알았다. 잘 가거래이." 2000. 0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