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명정기

명정기

두칠이

20. 곰절에서 희나리



	20. 곰절에서 희나리 성주사라는 곰이 지었다는 전설이 있는 곰절이 내가 사는 창원 근교에 있다. 지금은 창원시가 번창하여 절 아래까지 승용차가 다니지만 십 수년 전에는 한적하고 푸근한 절과 계곡이었다. 백두대간이 지리산까지 精(정)과 氣(기)를 담고 내려와 몇몇의 정맥을 만들었는데 제일 남 단으로 뻗어 내린 것이 낙남정맥이다. 이는 지리산 세석고원이 자리한 영신봉에서 출발하여 하동 진주 함안 마산 창원 김해를 지나 낙동강 하구에 빠져든다고 한다. 이 정맥이 창원시 를 감싸고 있고 그 곳에 불모산이라는 남도의 명산이 큰 자락을 펴고 있다. 그 산세를 설명 하면 마산의 진산 무학산(761고지)과 창원의 천주산(641고지) 봉림산(일명 정병산) 대암산 용지봉(728고지) 장복산 그리고 최고봉인 불모산(802고지)이 있고 그 아래 곰이 절터와 절 자재를 옮겨다 주었다는 곰절 성주사가 있으니 예전에는 곰이 살았다는 산중 골짜기이다. 소학교 친구 몇이 모여 친목회를 구성하려니 인원이 모자라 각자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 몇 을 불러들이어 임술년(壬戌年)에 창립했다고 임술회를 만들었는데 이 계원들이 가을 놀이 야유회를 부부동반으로 불모산 성주사(곰절) 계곡으로 갔다. 우리 나이 삼십초반이었으니 아직 자식들이 어려 하는 수없이 부부동반에 초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어린아이들 데리고 갔다. 그 시절에는 승용차도 또 그 계곡까지 가는 버스도 없었으니 우린 젊은 힘으로 아이 안고 음식과 음료 술 잔득 준비하여 들고 갔다. 가을날 정오에 햇살은 계류물 옆 버려진 밭 터에 아무렇게 자란 억새를 눕혀 따스하게 깔고 앉아, 여자끼리 남자끼리 먹고 마시고 놀기를 한 지가 네댓 시간이 지났으니 우리들은 술 깨나 마셨던 모양이다. 그 계군들은 하나같이 술에 일가견이 있었고 또 이렇게 술 마시기 좋은날 그 옛날 학창시절에 포장 집에서 닭꼬지 몇 점 사서 마셨던 우리들인지라 오랜만에 회포 풀고 야외 나와 그 젊은 기운과 우정으로 주거니 받거니 돌리고 붙고 마시고 또 돌리 고 그러다 보니 슈퍼로 술 도매상 경영하는 친구가 우리들 술 실력을 아는지라 제법 통 크 게 준비해온 소주 한 박스가 완전히 다 비워버린 것이다. 남자 7명이 2홉들이 무학소주 한 박스가 몇 병인지는 지금도 그때도 잘 모르나 술이 떨어졌으니 이제 일어서야 하나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추던 흥은 도무지 가라않질 않았다. 부인들은 아이들 챙기고 우리는 플라스틱 소주 박스랑 별로 중요하지는 않아도 버리면 변상 해야하는 반품들을 하나씩 손에 들고 계곡 길 따라 내려왔다.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물길 옆 으로 서 자라는 산모롱이를 따라 난 흙 길을 내려오며 깨어지지 않는 흥은 손에 든 박스와 그릇들은 장구와 꽹과리가 되어 뚜드리고 손 벌려 흔들어 돌며 춤추며 내려왔다. 누군가가 꽤이나 칭칭나네를 부르고 우리소리를 앞소리로 부르고 뒤를 따라 줄을 지어 빙글빙글 돌며 뒷소리를 후렴으로 합창을 했다. 그러다 시골집에서 술과 안주를 파는 주막으로 저절로 빨 려 들어갔다. 남자를 따라오는 아낙네도 그 흥에 어느새 끌리어 마음속으로 같이 놀며 왔는 지라 꽁치 끈에 엮인 꽁치 한 줄이 되어 주막으로 들어갔다. 선 채로 소주를 막걸리 대접에 한잔씩 순서대로 마시고 신명놀이는 계속되었다. 산을 지나 내려서자 논들이 들에 을시년 스럽게 앉아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빈 논에는 여기저기 짚단 낟가리가 돈 둑에 있고 우리 놀리 패 일행은 빈 논배미로 또 밀려들어갔다. 낟가리 밑에 짚단을 펴고 아이와 아낙들은 한숨을 돌리고 남정네들의 춤과 살풀이 놀이는 장구 치고 꽹과리 뚜드리니 깨어지지 않는 흥으로 이어지고 끊어질 듯 하면 주막서 들고 온 술 한잔을 대접에 부어 마시니 정말로 그 신명은 인간의 기력이 아니고 초인적인 주술력과 그 어울림의 삼박자가 기막히게 맞아서 우러나온 희나리였다. 그 누구 하나 즐겁지 않은 이가 없고 마음을 열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임술회 계원의 우의 와 신의는 평생에 깨어질 수가 없으며, 이 세상이 모자라면 저 세상으로 이어질 인정으로 맺어졌다. 금년이 경진년(庚辰年) 용의 해니 임술년(壬戌年)이면 개띠라 임술 지나 계술 지나 4년 후 면 또 술(戌)의 해가 오니 어언 16년이 지났구나. 그 임술회 회원들 지난 년 말 만나니 아 무도 나이 먹어 늙어 보이는 사람 없으니 술 마시기 좋아하고, 놀고 춤추기 좋아하고, 이야 기하기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사람 치고 일찍 늙고 단명 하는 이 없으니 어울리 고 마시고 춤추며 사시오! 그 아비 어미보고 자란 아이들 본보고 자랄 것이니 모든 인성 교육은 만사형통일 것이다. 2000. 0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