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명정기

명정기

두칠이

1. 부전자전(父傳子傳)



	1. 부전자전(父傳子傳) 명정(酩酊) 40십년을 쓴 수주 변영로님은 한마디로 대주가이고 호걸이었다. 그의 奇行(기행)을 읽노라면 과히 천하의 술꾼이요 술에 달인이라고 할 만하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할아버지께서도 일약 호주가라고는 할만하셨고 나 또한 대주가는 아니 려도 애주가라 함이 타당할 것이다. 나의 家系(가계)에는 白晝에 소를(수주 선생의 명정 40년 중)탈 만큼 기골이 장대하거나 기 백이 출중하여 만용이라고 함은 적당하지 않으나 그만한 용기와 용맹도 없거니와 그를 만큼 재물도 풍유도 없었다. 그러하나 우리 가계 나름대로의 명정기를 쓸만한 집안의 술 내력은 있었으니 이를 그냥 넘 길 수가 차마 없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술에 대한 내 기억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의 아버지는 애주가이셨다. 술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셨다. 친구분과 술을 드시다 술이 남으면 결코 일어서시는 법이 없으셨고 한번 술을 드시면 내리 삼일을 끼니도 그르시고 해장술부터 마셨고 친구를 만나시거나 문종 종사를 보시면 술이 안 취하신 적이 없으셨다. 우리 형제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 술 드시고 오시면 하도 우리 형제 를 찾으시니 우린 항상 어머니 치맛자락으로 숨어서 지내야 했다. 손님이 오시면 언제나 술 심부름은 우리 몫이었고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들고 오면서 찔 끔찔끔 마시며 술맛을 익혔다. 막걸리의 그 텁텁하고 찜찜한 맛에 인상을 찌푸리며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맛을 보았는지 아마도 장난기 아니면 호기심 많은 나이 탓이리라. 주전 자로 모자라는 날이면 술 도가(막걸리 공장)까지 말 통이나 바께스로 술을 받아 날랐었다. 아버지 연세 약관 스물에 해방을 맞아 좌우익의 와중에서 죽마고우 다 잃고 혼자 살아남아 살아 온 나날이 덤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일찍이 인생을 달관인지 관조인지 입에 달고 다니시 던 말씀이 "청춘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사나이야 한 많은 인생 웃으면 살자" 칠순 넘기시고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 술을 차고 사셨으니 남긴 글은 없어도 명정 50년은 되리다.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중학교 다닐 즈음에 돌아가셨으니 물론 일흔을 넘기신 나이지만 분명한 기억은 술을 사서 올리시는 어머니와 주량(酒量)을 관리하시는 할머니의 정성이 아 니었다면 아버지보다 훨씬 주량(酒良)이셨을 것이다. 그 당시도 술이란 막걸리와 소주가 대 중주였고 둘 다 한 되들이 병으로 거래를 하였다. 소주를 사서 공급하는 어머니께서는 돈이 모자라 이틀에 한 되씩 사 드렸고 할머니께서는 한 되를 이틀에 나누어 자시도록 마시는 주 기(週期)와 마시는 양을 조절하시었다. 그러다 보니 한 되 병을 따서 이 홉 짜리 병에 부어 서 소주잔과 짠 김치를 방 머리에 두고 시간 되면 한 잔씩 마시고 신문지로 병머리에 막아 두고 하루 반되씩밖에 못 드신 것이다. 그러니 술이 취한 적은 거의 없으시고 항상 모자라 게 술을 마셨으니 아마도 이를 두고 약주라 하지 않겠느냐? 식전에 꼭 한잔 식후에 꼭 한잔 식간에 생각나면 또 한잔 내가 마셔도 그러하면 안 취하고 지내겠다마는 나의 할아버지 주 량이 그 정도가 아니고 공급량에 맞추어 마시니 어쩔 도리가 없으셨다. 그래서 나는 한번도 할아버지의 술 주정도, 아니 취하시어 비틀비틀하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에 반해 아버 지께서는 술만 드셨다면 갈지자걸음에 크다란 노랫소리에 동네방네가 떠들썩했다. 그러니 누가 더욱 애주가고 호주가인지 비교를 할 방법이 없고 미루어보니 기골이 보다 장대하신 할아버지께서 주량이 크실 것 같은 내 짐작이다. 누가 날 보고 "그럼 당신은 어떠하오."라고 물어온다면 나의 아버님의 네 아들중 내가 제일 술을 못하나 술을 사랑하긴 우리 아버지 못지 않다. 그 래서 세세한 나의 술 사랑 술 자랑 이야기를 하나하나 엮어 볼 테니 명정 40년은 못되어도 명정 30년은 될 터이니 들어보시기 바란다. 2000. 0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