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명정기

명정기

두칠이

18. 시어머니 하듯이



	18. 시어머니 하듯이 이제 군대 술 이야기는 이로써 그만 쓸까한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말이 있듯이. 졸병도 세월이 가니 고참이 되더라. 마치 며느리 늙으면 시어머니 되듯이 말이다. 그리고 꼭 며느리 시어머니 하듯이, 나 졸병 시절에 고참들이 하던 식 그대로 배워 내 졸병 들에게 대하고 부리니 이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고 말하고 싶구나. 그러니 며느리 늙어지면 시어머니 되어 잔소리에, 용심에, 부림은 다 하늘에서 내려온다지 않던가? 우리 졸병동기 3인은 옛날 고참들이 하던 데로 여름날이면 이른 저녁을 먹으니 군에서는 하 절기 동절기 구분 없이 언제나 5시면 저녁을 먹는다. 저녁식사 후 연병장에서 축구 한 게임 하고 나면 부식 차가 남겨둔 안주거리를 취사병이 챙겨두었는지 확인을 한다. 취침점호가 끝나고 나면 중대본부 행정반 고참과 졸병이 취사장으로 내의바람으로 슬슬 움 직인다. 물론 중대장 인사계는 營外에서 살림을 하니 고참들 세상이다마는 순찰이라도 들이 닥치면 큰일이 벌어지나 대개 순찰은 중간 초소를 지나야하니 다 본부로 연락이 오기 마련 이다. 이렇게 야간에 술을 마시는 날이 매일 있지는 않다. 저녁과 아침용 부식 차가 매일 한번씩 오고 부식이 술안주로 적당한 놈이 실려와야 마시는 날이 되는 것이다. 좋은 안주 감으로는 아무래도 생닭이 나온다든지 소고기 돼지고기는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것 같다. 동태는 안 되고 꽁치가 나오면 찌개가 만들어지니 마실 수 있었다. 졸병은 점호후 술을 구하러 나가야한다. 어디 가서 술을 구하느냐고? 마을 가게가면 술이야 얼마든지 있지, 돈이 없어서 못 구하지. 그러나 그 졸병은 돈이 어디서 나오는가? 그러나 졸병은 술 사러 나간다. 술은 외상이었다. 한 달 동안 갖다먹고 월 말되면 본부요원이 나누 어 낸다. 고참들 서너 명에 졸병 한둘이니 마실 사람은 다섯명 정도이나 항상 졸병은 술을 얼마나 사 와야 할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안주가 장만되는 동안 취사장 조리식탁에 앉은 우리에게 이세상 모든 것은 아무 의미도 존재도 없었다. 우리들에게는 미래도 희망도 없다. 그런 생 각을 할 필요도 현실도 아니니 그냥 오늘도 무사히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있구나. 나의 고참들이 하나씩 둘씩 개구리복 입고 제대하여 나간 것을 보았건만 나의 제대는 도저 히 현실로 나타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날은 너무나 멀리 멀리 있었다. 그러니 오로지 이 순 간만 이 시간만 무사하고 행복하면 아무런 걱정이 없는 어찌 사람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 는가? 취사병이 마련한 안주가 익어갈 때면 졸병이 술을 들고 들어온다. 그의 손에는 부식 담는 플라스틱 박스가 들려있다. 마치 대형 슈퍼 가면 물건 담아 계산하는 그런 박스이나 이 부 식 박스가 조금 크지 싶다. 이 홉들이 소주병이 얼마나 그 속에 들어있을까? 여러분은 궁금 하지 않은가? 졸병이 제법 통 큰 졸병이 그 박스에 가득 소주를 사들고 왔었다. 안주거리가 있으니 대강 마시고 자야하는데 이놈이 어쩌려고 이렇게 많이 사왔지. 마실 우리 고참들도 그놈 얼굴을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 녀석 대답이 마시다보면 항상 술이 모자라 또 술 사러 가야하고 또 가야하니 그냥 한번에 두세 번 갈 것 다 같고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나 저렇게 많이 마셔왔단 말인가? 그래 마시다 남으면 숨겨두고 마시지 하면서 맛 나는 찌개에 밤이 으슥하도록 술값은 같이 내고 고참들만 주로 마신다. 졸병이야 많이 마시고 싶어도 야간에 일어나 불침범에 상황 보아야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고참은 근무 안 서냐고요? 우리 고참들이 옛날에 근무 섰으면 우리도 설 것이나 그들도 안 섰는데 우리가 어찌 서느 냐? 우리가 본 것 배운 것이 그것인데 술 마시고 근무서는 방법을 못 배웠는데 어찌 할 수가 있 느냐? 그리하여 우리는 술 한 박스를 다 마시고 잔다. 점점 박스의 술은 줄어들어 다 마신 빈 병 만 남아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남은 빈 박스를 보고하는 말이다. "그 술 누가 다 마셨나?" 졸병이 하는 말이다. "봐요, 내 두 번 아니 갈려고 가득 잘 사왔지요." 그 박스에 몇 병이나 들어갈까? 왜 궁금하냐고? 이제는 그만큼 못 마시니 알아보고 술 자랑이라도 하려고...... 그런데 그 내 졸병들 그놈들도 고참 되어 제 졸병들에게 술 심부름시키며 근무 열외하고 박 스에 가득 술 받아 놓고 마셨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시어머니 하듯이 그 며느리 시어머니 되듯이........... 2000. 0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