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명정기

명정기

두칠이

15. 심야의 침입자가 되어



	15. 심야의 침입자가 되어 친구 누구였을까? 나에게 면회 와서 하룻밤을 술 마시고 지새워 준 친구가? 난 참 친구 복이 많은가보다? 아니면 내가 친구 챙길 줄 정말 모르는 자인지.... 그 친구가 누군지 기억도 못하다니? 내가 울산 방어진서 졸병으로 군대 생활하던 시절이다. 하도 여기 저기 친구가 많고 또 술 좋아하는 知友가 많아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그 친구 가 누군지 생각나지 않고 그 밤에 일어난 일만 생생하다. 다음에 내 친구들이 이 글을 보고 주인공이 자기라 나타나지 싶어 여기서는 그냥 친구라고 부른다. 내가 태어나고 학교 다닌 곳이 마산과 대구이니 두 곳에 사는 친구일 것이다. 그는 날 만나러 방어진 해안 부대로 겨울 어느 날 오후에 찾아왔다. 물론 나는 새까만 졸병 시절이었다. 그래서 인사계 소대장에게 외박 허락을 받고 방어진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조건 으로 외박을 나갔다. 그와 나는 그날 방어진 항구의 허름한 술집에서 군복 입은 모습으로 항구의 주막에서 어느 술집 아낙이랑 젓가락 뚜드리며 코가 비뚤어지게 마셨다. 정말이지 그도 아마 군인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이면 내 친구들 거의가 입대하여 군 복무할 시기였으니 그러니 우리 처지에 술값과 여관비도 모자랄 것이었으나 그는 내가 술 좋아하니 귀대하면서 하루 일찍 출발하여 술 마시자고 면회를 왔으니 그가 술을 사겠다는 것이고, 나를 위해 찾아 왔으니 비록 돈은 없지만 내가 사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그도 사고 나도 샀다. 그리고 밤이 깊도록 항구의 주막집을 배회하며 객기를 달랬다. 군대생활 졸병시절의 설움을 술과 우정으 로 달랬다. 그리고 자정을 넘겨 어느 여관으로 갔다. 그는 나를 부축하고 나는 그를 껴안고 갔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자다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서 화장실을 찾아갔다. 혹 이 글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가실 분 을 위해 그 여관의 구조를 설명하면 복도를 통로로 양쪽에 방이 늘어서 있고, 그 통로 끝에 남녀 화장실이 있었다. 각 방에서 방문 열고 나오면 바로 신발 신고 화장실로 그리고 출입 하는 옛날식 여관이다. 지금은 이런 여관 없을 것이다. 어디 화장실 문밖에 붙은 여관 갈 요즈음 사람 없을 터이니. 복도라는 표현이 맞지 않고 현관이라고 해야겠다. 깜깜한 현관을 지나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군인이니 겨울용 내의를 입은 채였다. 지금도 겨울에 내의를 안 입고 다니지만 그때는 춥고 배고픈 군인이라 冬內衣를 꼭 입고 지 냈다. 화장실을 다녀왔으니 취한 술이 좀 깨었는지 내 옆에 자고 있는 친구의 잠꼬대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좀 이상하였다. 우리 방 내 옆에 웬 여자가 누워서 내 친구에게 나직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따뜻한 방안 불 꺼진 여관방에서 피곤한 몸 다시 눕혀 잠 좀 다시 자려는데. "여보, 여보 일어나 봐요." "여보! 여보! " 그 여자는 이제 다급한 소리로 옆의 남자를 깨우는 것이 아닌가. "왜 그래!" 남자의 잠결 속 대답이었다. 친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보 누가 내 옆에 들어왔어요." "아니 뭐라고 어서 일어나 불 좀 껴 봐." 두 남녀가 잠에서 깨어 방에 도둑이 들어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심상찮 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아무리 술이 취하였기로서니 일이 잘못 되면 군인은 바로 영창 이 아닌가. 외박 나와 사고 치면 구해 줄 사람도 없지 않는가? 갑자기 술이 확 깨고 이 위기를 어떻게 모면하지? 불이 켜지고 내 목이 그 녀석의 손아귀에 바로 잡혔다. 나는 반항도 못하고 꼬꾸라졌다. 나 는 외마디 소리를 치며 방바닥에서 사방으로 뒹굴었다. 곧이어 주인이 들어왔고 나는 술이 점점 깨어나고 있었지만 점점 더욱 술이 취한 척 헛소리를 하고 고성을 지르고 방바닥에 자 빠지고 혼자 넘어졌다. 그러다 목에 항상 걸려있어야 할 인식표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그 녀석이 내 목을 비틀 때 떨어진 모양이다. 인식표를 잃어버리면 흔적이 남는데 큰일이구나. 이제는 정말로 방 구석구석을 헤매야 되겠구나! 나는 고성을 지르면 인식표를 찾기 위해 이 불 밑으로, 베개 밑으로, 서있는 사람 사이로 발 밑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그 빛나는 개 목걸이, 생명줄, 군번표, 인식표를 찾아 재빨리 上內衣 속으로 집어넣었다. 여관 주인이 왔다. 冬內衣 차림에 맨발의 취객 군인을 보더니 해명을 해 주었다. 옆방에 투 숙한 군인 두 명중 한 명이라고. 그런 후 그 녀석의 행패가 좀 수그려졌고, 그제야 자고 있 던 내 친구도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나타났다. 난 내 친구의 부축을 받고 우리 방으로 무 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잠을 잤다. 아침이 올 때까지 정신없이 잤다. 인식표 를 가슴에 품고. 그 다음의 일은 거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그 친구는 친구의 부대 로 귀대했을 터이고 난 내 부대로 복귀했을 것이다. 우리 나이 스물 한두 살에 있었던 일인데, 이십 년이 흘러 삼십 년이 가까워오니 어찌 기억 들이 날수 있겠냐마는 이 정도라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 내가 기억력이 좋든지, 그 사건의 해프닝이 위기일발 의식으로 남아 지을 수 없는 상흔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돌 이켜 지금 생각해보니 젊은 시절의 술에 관한 기이한 행적 같아 추억담으로 남기고 싶다. 2000. 02.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