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명정기

명정기

두칠이

13. 술 마시고 맞은 빳다



	13. 술 마시고 맞은 빳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졸병이 고참처럼 군다고 벼르고 있던 서무계 이 병장이 그날 부대로 들 어온 나를 취사장으로 불렀다. 일등병 주제에 傳令(전령)이라고 외근 나갔다가 夕食 무렵에 귀대하니 주간의 졸병생활도 면하고 있는 데다 행동조차 재빠르지 못하니 두고보자 하고 있던 차에 그날 석식시간이 지 난 후 귀대를 했으니 빌미를 잡혔던 것이다. 그는 내 사수는 아니나 서무병인지라 문서의 수발이 대개 그의 손에서 작성되고 접수되는 것이었다. 내가 사령부로 떠날 때도 그는 일찍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떠나려 면 그제야 공문서 준비를 하니 나는 언제나 그 때문에 늦게 나가는 꼴이 되어 미상불 나도 그를 별로 탐탁찮게 여기고있었다. 그러나 군에서 졸병이 고참보고 어쩔 것인가? 언제나 내 가 기다려야하는 셈이었다. 그날도 졸병이 주제 파악 못하고 울산시내에서 소주 한두 잔 마시고 돌아왔었다. 술을 마시 고 와도 일찍만 들어와 가만히 있으면 술 마신 줄 모를 터인데, 그날은 제대로 서무계 이 병장에게 걸려든 것이었다. 취사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늦은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댈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렇 다고 그 자리에서 한 잔 한다고 늦었다고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술 마셨느냐고 물었다. 그저 나는 묵묵부답밖에 대답이 없었다. 영창을 보낼 수는 없으니 빳다를 맞아라는 것이었 다. 그리고는 빳다용 나무 몽둥이를 찾아오라고 했다. 갑자기 어디 가서 빳다용 몽둥이를 구한다. 연병장 유류고 참호를 다니며 찾아도 내가 보아도 치기 좋을만한 나무 몽둥이는 없 었다. 나는 그에게 보기 좋은 빳다를 구해 주고 싶었다. 아무리 내가 맞을 몽둥이지만 어디 쓸만한 놈으로 골라가야지 말도 안 되는 빳다를 구해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보급계 내 동기친구에게 창고에 있는 야전 곡괭이 자루를 빌려갔었다. 군대에서 졸병 치는 빳따로 야전용 곡괭이 자루보다 나은 빳다를 본적이 없었다. 고참 이 병장은 내가 구해간 빳다를 받드니 몇 대를 맞을 수 있냐고 물었다. 아! 이런 놈의 질문이 어디 있나? 맞는 놈이 많이 맞고 싶은 놈이 세상에 어디 있나? 그저 고개 바로 들고 고참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날도 대강 마시고 일찍 들어왔으면 별 탈이 없었을 터인데 기분에 그만 과하고 말았던 것 이었다. 그러니 부동자세로 서있는데 취한 상태라 주저앉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때리고 싶을 만큼 때려달라고 했다. 차라리 잔소리 듣고 아니면 그 자리를 면하고 두고두고 미안할 것이니 시원하게 맞고 끝내는 편이 나은 일 같았다. 그는 크게 20대만 맞아라 했다. 사실 빳다 20대 때리기 나름이지만 이 병장 체격에 그 황소 같은 힘에 10대만 맞으면 뻗을 것 같았고, 단체기합이야 받아도 보고 푸시압, 원산폭격, 통 닭구이, 빤츠바람 갖은 기합은 다 받아보았지만 혼자만 이렇게 빳다를 맞아본 적은 없었기 에 나도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에게 맞는 수를 헤아리라는 것이었다. 다섯 대를 맞고 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술기운이 싹 가시고 엉덩이 살이 헤지는 것 같았다. 열까지 헤아리니 엎디려 뻗쳐한 자세가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정말 살이 터진 것 같았다. 앞으로 열대를 더 맞으면 어찌될 것인가? 아득하고 아득하여라, 곡괭이 자루 빳다여! 나머지 열대는 어떻게 맞았는지 느낌이 없었다. 걱정처럼 아프지도 감각도 없었다. 다만 한 대 한 대 내리칠 때마다 내리치는 기압과 이겨내는 기압 소리만 한 박자 한 박자 간격으로 흘러나왔다. 치는 회수에 그의 힘도 겨운지라 맞는 나도 맞는데 익숙해지고 다만 악다문 이빨 사이로 헤아리는 소리만 터져 나왔다. 그는 빳다를 버리고 취사장을 떠났다. 그사이에 어둠이 취사장 안으로 스며들어 깜깜해진 취사장 나무식탁에 앉으니 말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가슴속에서 밀려나왔다. 몽롱하고 황홀한 기분이 저 가슴아래에 쌓여 숨어있던 희열이 온몸으로 퍼져옴을 느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어둠 속에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죄를 사한 깨끗함으로, 이제 저 고참에게 다시는 미안 해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그 동안 내가 졸병으로 다하지 못한 업보를 이로써 다 갚았다는 상쾌함으로, 그런 가슴의 응어리가 이제 다 풀려 버렸으니 정말 이 빳다가 얼마나 고마운지 말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가슴 펴고 이 병장 앞에 웃으면 나설 수가 있었다. 항상 그의 눈치를 보던 일도 이제 없어졌다. 정말로 나를 때려준 그에게 고마웠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나에게 정말로 인간적으로 대해 주었다. 나의 의견은 언제나 긍정적으로 들어주었다. 물론 그는 나보다 일년이나 먼저 제대를 했고 우리가 그의 제대 회식도 준비해 주었지만. 이십 오 년이 지난 일이건만, 그의 이름은 李養雨 병장이었다. 2000. 0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