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기

두칠이



10. 팁으로 셈한 裸身
   
   
 
10. 팁으로 셈한 裸身

대구 샌님 같은 내 대학친구들이 1학년을 마치자 재수로 입학한 친구들은 입영통지서를 받 고 입대를 하였다.  그리고 2학년을 마치자 ROTC 입단한 친구만 남고 모두들 현역으로 입영을 하고 말았다. 나 도 눈보라 차가운 그해 2월 먼저간 친구 따라 마지막으로 입영을 했다. 막차가 되다보니 나 의 입영잔치에는 참석해야 할 친구들은 모두 입영한 뒤라 전송 나온 친구는 몇 몇 되지 않 았다. 그리고 졸병생활 1년도 채 못되었지 싶다.  울산 방어진 항에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봄날 오후였다. 예고 없는 내 대구 친구중 한 명 인 윤군이 면회를 왔다. 병장 계급장을 턱 붙이고 울기등대 위 철조망으로 억새 밭을 둘러 싼 조망 좋고 햇살 좋은 부대 정문에 찾아왔다. 나보다 일년 먼저 입대했으니 이제 빨라야  상등병 정도 되었어야 하는데 무슨 병장 계급장을 붙이고 왔단 말인가? 그나저나 졸병인 나 에게 병장 친구가 면회를 와 주었으니 무척 기쁘고 반가웠다. 그럼 그렇지 그놈도 휴가 오 면 날 한번쯤은 찾아오리라 기대는 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그 시절 그곳은 울산공단 방어를 담당하는 위수지역이므로 휴가증이 없으면 울산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휴가란 일년에 한번 스무날 정도로 정해져 있는데 모처럼 왔으니  어쩌면 방어진 지역 내에서 외박은 가능한지도 모른다만 그것도 저 호랑이 같은 인사계가  날 보낼 줄지는 또 줄다리기를 한참 해야 할 터인데 윤군의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대학 친구 7명중 세 명은 ROTC로 학교에 있고, 입대한 4명중 2명이 마치 휴가를 왔는 데 그 5명이 오늘 저녁에 대구서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치 대구서 울산은 가까우니 윤 군이 나를 데리러 특사로 왔던 것이었다. 그러니 무조건 외박 허가를 받아서 나오라는 것이 었다.  그러나 내가 외박을 받으려면 그놈의 인사계인 김상사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한데 인사계의  성질로 보아 애인이나 가족이 면회를 오면 외박이 허가되나, 군바리 친구 면회 오면 붙들리 면 혼만 나고 말 터이니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혹 외박을 허가 받더라도 울 산을 어떻게 벗어난단 말인가?

윤군이 말 또한 여간이 아니다. 전혀 걱정 말고 외박만 나오라는 것이었다. 가짜 휴가증을  갖고 왔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가짜를 구했는데?" 그 녀석은 부대에서 장병들 휴가 보내는 인사과 요원이니 그 부대장 직인 찍힌 백지 휴가증 이 나왔다. 내 군번 계급 성명 쓰면 완전한 휴가증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 계급도  마이가리(先借用) 병장 달고 왔던 것이다. 녀석이 휴가 나올 때 이런 수작 다 꾸미려고 준 비하고 왔는데, 내가 못 나간다면 참으로 내 성격에 말이 되질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들 얼마나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인가? 이렇게 모두 군대 생활하다가 어찌되었거나  만날 수가 있다는데 외박 하루 나가면 다녀올 수가 있는데 아니 가고 못 간다면 나의 명예 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 가마!" "그런데 우리 인사계랑 너무 못 친해 절대로 날 외박 보내주지 않을 것이니 가서 담배 두  보루만 사 가지고 와라!" 인사계랑 예시당초부터 이 일에 대하여 사정할 의사는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본부에 같이  근무하는 예비소대 소대장 유중위를 찾아갔다.  그 유중위를 말하자면 우리 대학 선배요, 그는 만기되면 제대하는 ROTC 소대장이었다. 유중 위도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아 날라리 소대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래도 학교 후배라고 장교  사병간이지만 종종 애로도 이야기하라고 하고 말상대도 되어 주었기에 그를 찾아갔다.

그에게 사정 이야기를 다 했었다. 내가 저녁에 대구까지 가짜증을 가지고 친구 만나러 갈  것이며 내일 아침까지 틀림없이 원대 복귀할 것이니 저 늑대 같은 인사계가 날 보내 줄 리 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내 눈을 가만히 살펴 보더니  "이 일병 걱정 마라. 내 꼭 보내주마. 그 김 상사 나에게는 지가 지은 죄가 있어 내 부탁은  아니 들어 줄 수가 없으니 기다려."  난 상사보다 중위가 높으니 계급으로 이길 줄 알았는데 그게 계급으로 이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지은 죄가 무엇인지는 지금도 모르나 유중위는 나를 인사계에게 가보라고 했었 다.  담배 두 보루를 남게두고 인사계에게 갔더니 인사계 하는 말이 자기로서는 절대로 보낼 수 가 없는 나를, 자기보다 높은 계급의 명령이니 아니 들을 수가 없어 보내니 내일 아침 8시 까지 귀대하라고 하였다. 나는 그들이 무슨 흥정을 했는지 모르나 아무튼 나는 외박을 갈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 가짜증에 내 이름 석자를 척 쓰고 대구로 당일 휴가를 떠났다. 두 번의 검문소를  통과했으며 윤병장과 나는 거수경례로 답례하고 대구로 대구로 친구들이 기다리는 대구로  팡파르 불며 갔었다.

아, 얼마나 가고 싶은 곳 대구가 아니던가? 애인도 떠나가 버리고 친구도 떠난 도시 대구는 그래도 풍요롭고 따스하였다. 내 그리운 친 구들이 아직도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내가 제대 후 다시 돌아 올 곳이고, 무엇보다도 내가  전송해준 먼저 입대한 놈들이 군복입고 나온다는데 기대와 흥분으로 어떻게 대구까지 왔는 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그 봄날 한나절이 다 지나가고 어스름 저녁이 왔었다. 택시를 타고 어느 요정 같 이 정원이 크다란 한옥으로 들어갔었다. 들어가니 큰 방안에 기다랗게 술상이 올라왔고 음 식이 가득했으며 친구 셋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여섯 명은 그렇게 다시 만났다. 학교 다닐 때 하루만 보지 못하면 집으로 찾아가고,  먹고 자고 또 학교가면 언제나 모여 놀던 친구들이 아닌가? 참 신나고 즐거운 꿈같은 자리 가 아닌가?  설마 올 수 있겠나했던 내가 위수지역을 뚫고 왔으니 그들의 환호는 과연 어떠하였겠는가?

이제는 그 술판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방안에는 병풍이 둘러쳐 있고 나긋나긋한 색시들이 남자들 사이사이에 짝을 맞추어 앉았다.  아무쪼록 이 글은 남자들만 읽기 바라면서 글을 쓴다. 맥주와 양주를 마셨지 싶으나 그 시 절 우린 양주보다도 맥주를 잘 마셨다. 나는 소주를 더욱 잘 마셨지만 아시다시피 내 대구 친구들 술 실력이 너무나 옹졸하니 맥주를 주로 마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구친구들 술은  별로 못하나 연애 잘 걸고 노래 잘 부르는 것은 내가 다 아니 그들도 이는 부인할 수가 없 을 것이다. 혹 그 녀석들 부인들이 이 글을 읽으면 그 녀석들이 없는 소리했다고 날 죽일  듯이 덤빌지도 모르지만 이제 쉰 살이면 쉰 나이라 쉰 냄새나는데 무얼 숨기리요?  아니 그래, 이놈들아 내가 다 아는데............... 젓가락 장단에 음담패설에 우린 멋지게 마시고 놀았다.  술에는 무릇 여자가 앉아야 흥이 나고 술이 잘 들어가는 것은 음양의 진리가 아니던가? 그렇게 재미있게 노는 중에 이 놈의 윤군이 무슨 홍두깨 제안을 했다.

여기 앉은 아가씨 중에 누구 옷을 다 벗을 사람이 없느냐는 것이다.  너희들중 한사람이라도 이 상위에 올라가 팬티까지 벗으면 우리 나갈 때 팁을 줄 것이며 그 렇지 않으면 오늘 팁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남자들은 하나같이 도둑놈같이 박수를 치 며 찬성을 했다.  한복까지 곱게 차려입은 여섯 아가씨들은 모두들 제 파트너 얼굴만 쳐다보고 시큰둥했었다.  아무도 시범을 보일 색시는 없었다. 까까머리 군바리와 촌놈 여섯 명은 눈만 굴리며, 어느  아가씨가 나서는지, 누구 파트너가 나서는지 싱글벙글 웃기만 하지 제 파트너 나가보라고  하는 녀석이 없었다. 아무도 나설 것 같지가 않았다. 난 누구 한 아가씨는 올라올 줄 알았 었다. 순진하게도...... 하는 수없이 내 파트너에게 말했다.  "그럼 니가 올라가서 옷을 벗어라, 그럼 오늘 저녁 팁은 내가 모두 책임지마" 돈은 없었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랬더니 이 녀석 말이 가관이었다. 날더러 올라가서 옷을 벗으면 오늘 저녁 팁은 전부 자기가 책임진다는 것이었다.  이 녀석이 사나이 오기가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러자 나머지 아가씨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하고 그것 참 볼만한 제안이다 하면서 이제 그년들이 호들갑을 떨고 기세를 올리며 좋아라  야단이었다. 아! 이를 어쩌나?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기나? 좀 머뭇거리자 한 년이 아예 상위를 올라서기 좋게 치우고 있었다. 여기서 년 놈이란 욕이  아니라 부르기 좋게 그냥 그렇게 호칭하였으니 이해 바란다.  아니 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지경이었다. 내 친구들 이놈들 한 놈도 이 위 기에서 날 구해 줄 생각은 않고 그 년들 장단에 같이 놀고 있었다.

"자, 너희들 잘 들어라. 이제 장난이 아니고 내기가 되었으니 잘 생각해라." "정말로 내가 여기서 옷을 벗으면 너희들 어쩔 셈인가?" "말했듯이 팁을 하나도 안 받겠다고 했지 않는가요?" "자 그럼 내 다시 이야기하마. 내가 옷을 벗으면 다음에 너희 여자들 중에 누가 옷을 벗어 라." "만약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정말로 오늘 팁은 일전도 없다. 그래도 좋으냐?" 그년들 모두들  "그래요. 좋아요. 약속하지요."

아, 갈수록 태산이구나. 그러나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 뿌리라도 찔러야하고 말을 뱉었 으면 지켜야지 이제 벗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자, 내 친구들 너희들이 증인이다. 이건 게임이니 규칙을 지켜야한다." "너희 남자들 중 누구 여기 올라서 옷 벗을 사람 있나?" "그러니 내가 벗으마."

그들은 차마 내가 벗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친구들은 그런 일은 꿈도  못 꾸는 순진파들이었다.  난 단숨에 바지와 런닝을 훌러덩 벗고 상위로 팬티만 입고 올라섰다. 그러니 한 년이 아니  팬티까지 벗어야지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 다 안다. 팬티 벗으려고 올라왔는데 아니 벗을 손가?" 후닥닥 팬티를 발랑 벗어버렸다.  "그래, 자 보아라, 다 보았느냐?" "군바리 X도 X이가?" 얼굴을 돌리는 년, 낄낄거리고 씩씩거리는 년, 아연 실색하는 년, 소리치고 도망가는 년.  건장하고 균형 잡힌 이십대 초반의 내 육체 본 그년들은 아마도 그날밤 잠을 못 잤을 것이 다.

이제 게임은 끝이 났고 싱거운 여운만 남았다.  그 나이에 나의 그 용기는 어디서 왔던가? 어떤 이는 그게 무슨 용기냐고 비웃을 지도 모른 다. 용기의 정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나이에 돌이켜 생각하여도 이 건 만용이 아니라 용기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건 분명히 용기가 아니고 무 엇인가? 그 용기는 그 시절 정신 무장된 군에서 나왔다고 단정할 수가 있다. 생과 사를 오 가며 고난과 투지로 뭉친 그 정신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용기일 뿐이다.

그렇게 하룻밤을 새우고 뜬눈으로 새벽 버스를 타고 방어진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흘러 낮  12시가 다 되었다. 8시에 귀대하라는 약속은 처음부터 지킬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각오를 하고 갔으니 덤덤하였다. 인사계는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소대로  가라고 했다. 너를 구제하려면 빳다라도 치고 용서를 할 터인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기다리라는 말이 전부였다.  소대로 배치된다. 그래 소대로 가자. 밤에는 바다 지키고 낮에는 잠자고 사역하는 소대로  가자. 차라리 김상사에게 정신적 고초를 겪느니 소대 가서 육체적 고통으로 때우리라. 그리 고 이제 무슨 소원도 없지 않는가? 내 사랑하는 대구친구들이랑 하룻밤을 십년 같이 놀다왔 는데 이제 남은 2년 군대 생활 거꾸로 매달아도 보낼 수가 있으니 아무소리 할 것 없이 따 블백 싸고 명령만 기다렸다.  그러나 그 소대 전속명령도 선배 유중위가 어떻게 무마했는지 소대장 실로 갔더니 씩 웃으 며

"잘 놀다왔나 이 일병! " "그럼요 밤새워 술 마시고 이 코가 그 코가 시근시근하도록 놀다 왔지요. 그나저나 인사계 는 어찌되었기에 아무 말이 없어요?" "마, 다 해결했다. 니 주는 담배 두 보루 내가 사서 준다고 했더니 싱글벙글하면서 중위님 이 하신 일인데요, 뭐 별일 있었겠어요 하던데......."

내 사랑하는 대구촌놈 친구들.  술에 대한 지독히도 촌놈들, 이 촌놈들 중 세 놈은 지금 제 아버지 가업 이어받아 장로가  되셨다나 그게 보통이 아니고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데, 나랑 헤어져 사는 동안 착실히  술끊고 열심히 기도하여 장로가 되셨다니 다행이다마는  "이 놈들아! 내 차마 너희들 이름은 아니 밝힌다마는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느냐?" 오는 2월 말일 날 그 촌놈들과 모임이 대구에서 있다.  너희들이야 옷도 안 벗었고 팁도 안내고 아가씨 붙들고 놀았으니 모두 잊어버렸을지언정 어 찌 내가 잊을 손가?  그 치욕의 순간을 내가 어찌 잊을 손가? 지금 다시 만나며 그날의 팁들 다 내어놓아라 이놈들아..........

X영아, X돈아, X기야, X득아, X수야, X모야................ 이중 한 놈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내 그놈이 누구라고 차마 말 안 하리다. 다들 그놈이 자기라고 할 터이니..............

2000. 0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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