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수필(校洞隨筆) / 청상의 우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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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음담마을에서 양담마을로 넘어가는 대밭 초입에 공동우물이 있었다. 우물은 길에 내려서지 않고는 보이지 않았다. 분화구처럼 옴팍한 가장자리에 향나무 가 자라 우물에서 나는 소리가 길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마을 주민 모두가 먹는 우물이었다. 물맛이 좋아 오이 냉국을 타서 마셨고 막걸리 걸러 먹는데는 그지없는 물맛이었다.
마을의 아침은 우물가에는 시작되었다. 물을 길러야 부엌일을 하니 물동이 이고 오는 아낙, 쌀바가지에 쌀 담아 오는 아낙, 빨래 담은 대야 들고 오는 아낙, 우물은 아낙들의 만남의 장소이고 동네 소문이 번져나가는 곳이기도 했다.
두레박으로 길러 올리는 우물이 아니라 그냥 앉은 채로 바가지로 퍼 올리는 우물이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 마을 처자들은 일년에 몇 번 날을 받아 우물 청소를 했다. 물을 퍼내고 우물 속에 들어가 샘물이 솟아나는 오목한 곳에 든 자갈을 꺼내 깨끗이 씻고 우물 안을 말끔히 청소하였다. 우물 속은 장년 여럿이 함께 들어갈 넓이였다. 내 이모가 청소를 하기도 했다. 청소를 하고 나오면 옷은 물에 다 젖었지만 물싸움까지 한바탕하고 나와야 우물 청소한 치레가 되었다. 마을 길흉사 치는 일도 이 우물과 함께 이루어졌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도 이 우물가에서 생기곤 하였다. 조동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을 떠나서 살 수가 없었고 이 우물을 사랑하고 자랑으로 여겼다.
솔개등대 초입에 늘어선 벚나무에서 벚꽃가루가 훨훨 날아 마을 앞 들판에 진눈 개비처럼 날리던 봄은 다 지나가고 어느덧 벚나무가지 잎새가 하늘을 막아주던 초여름이었던가 보다. 학교를 갔다온 장희형이과 윤희형 그리고 이제는 이름도 기억을 못하는 친구들과 솔개등대에서 다른 날처럼 놀았지 싶다만 그런 기억까지는 되살아나질 않는다. 등대 솔밭에는 온통 늙은 소나무가 울창했고 그 아래는 키 작은 잡목과 풀들 그리고 떨어진 솔잎이 땅을 덮고 있었다. 윤희형이 나를 보자 손에 쥔 것을 내밀어 주면서 말했다.
"학끈아 꽁알"
나는 얼른 받았다.
"이거 꽁알 맞아?"
"응 맞아!"
나는 의심 없이 말랑말랑한 것을 꽁알이라고 먹어 버렸다. 내가 막상 입에 넣고 먹자 꽁알을 준 윤희형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야 임마 그것 꽁알 아냐. 이 자식이 정말 바보네. 꽁알 같이 생겼다는 말이지."
"그럼 뭔데?"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물었다.
"버섯이야."
"버섯은 못 먹어?"
"임마 봐라. 산에 먹는 버섯이 어디 있나? 어디 뱉어!"
나는 메추리알처럼 생긴 버섯을 통째로 씹어 삼킨 후였다.
장희형이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장희형은 윤희형이 갖고 있는 버섯을 보고는 독버섯이라고 했다. 장희형은 얼굴이 상기되어 날 업고 마을로 뛰었다. 벌써 사람들은 내가 독버섯을 먹었다는 소문을 듣고 면장집 타작 마당 앞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나를 받아 업은 외숙모는 공동우물로 데리고 갔다. 외숙모는 내 옷을 벗기고 등을 뚜드려서 먹은 버섯을 뱉으라고 나를 보고 애원을 해도 먹은 버섯은 나오지 않고 마른침만 나오는 것이었다. 외할머니는 고운 소금을 한 줌 들고 오셨다. 나는 소금을 입에 털어 넣고 박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마셨다. 그저 시원하고 속이 후련하기만 했다. 그래도 걱정은 많이 되었다. 어른들이 말하기는 독버섯을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었다. 배가 아프거나 기운이 없거나 머리가 어지러워야 죽을 것인데 나는 그렇지는 않았다. 어른들은 걱정이 태산같았다. 토하면 좋을 텐데 토하라고 소금까지 먹었는데 소식은 없고 과연 먹은 버섯이 어떤 것인지 마을에는 먹어 본 사람이 없으니 그저 내 눈만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놀란 어른들 때문에 알지도 못하면서 걱정이 되어 울기만 했다. 나는 울다 지치고 허기져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우물 속은 물 그늘이 드리워서 물 속 조약돌이 산들산들 흔들렸다. 물은 황갈색으로 영롱하게 하늘을 담고 있었다. 올려다 본 하늘은 우물속보다도 깊고 청자 빛보다도 푸르기만 했다. 어머니 품속 같아 안겨 잠들고 싶었다. 잠이 들었다. 잠이 든 나를 외숙모는 등에 업었다. 자면서 나는 엄마 꿈을 꾸었지 싶다.
그날 후 조동마을 사람들은 날 이렇게 불렀다.
"학끈아 꽁알."
꽁알이란 꿩의 알을 말한다. 어린 내가 들은 바로는 사람들은 꿩알을 주워 먹는다고 했다. 허나 꿩알을 본 적도 없었고 어떻게 먹는 지도 알지 못하였다. 다행이 독버섯이라고 했던 그 버섯이 독이 많은 버섯이 아니든지 아니면 그 독이 적어서 화를 면하였는지 모른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형은 나를 더욱 열심히 보살폈다. 시골생활에 적응하는 법을 일일이 알려 주었다. 해야 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것, 위험한 일에는 근처에도 못 가게 했다. 형이 보는 앞에서 동네의 친구들과는 마음대로 어울리지도 못하였다. 내가 다치거나 해를 입는 일이 생긴다면 외가의 가족에게 형이 무척이나 난감한 일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시골에서 하는 일들을 형에게서 익혔다. 소꼴을 베고, 땔나무로 솔잎을 끌어 모으고, 작두로 여물을 썰고, 아궁이에 생솔가지 불을 피우고, 모 줄을 잡고 모내기를 하고, 보리를 베고 벼를 베고, 이삭을 줍고 도리깨질을 하고, 낟가리를 쌓고 짚단을 엮고, 새끼를 꼬고 벼 가마니를 짰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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