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수필(校洞隨筆) / 청상의 우물 7
|
| |
|
|
| |
| |
| |
7
장희형이 외가로 양자로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외할아버지의 뜻이다.
외할아버지는 피난에서 돌아와 혹 아들을 볼까해서 작은댁을 얻어서 잠시 딴 살림을 차린 적이 있었으나 그 또한 뜻대로 되지 않자 종친들과 의논을 하여 마치 아들이 많은 친척의 셋째를 양자로 들이기로 합의를 하고 호적에 입적을 하였다.
외숙모는 장희형에게 별로 깊은 정은 없었다. 장희형의 생모를 한 동네에서 시누이로 알고 지내는 사이에다 젖먹이 나이로 오는 것도 아니라 초등학생이 된 나이이니 자식으로 맘을 주기에는 뭔가 어색하였다. 그 중에 아직은 어린 내가 외숙모의 품에 있어 더욱 그러하였다. 그래도 나는 남편의 핏줄이었고 그는 남이었다.
자식이면 한 집에서 먹고 자야 하는데 어찌 된 셈인지 장희형이 본가에서 잠을 자고 오는 일에는 두 집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장희형의 생모인 배돈댁은 잔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들이 모두 다섯에다 딸이 둘이나 되니 먹고살기 힘든 사정이었다. 배돈댁으로서는 종친과 남편이 결정하여 어쩔 수없이 따르긴 했으나 인물이 훤하고 머리가 명석한 셋째를 덥석 주어버리는 일이 가슴아파서 내내 셋째 아들 생각에 마음을 못 놓고 있었다.
장희형은 나의 유년에 사부였다. 적어도 시골생활에서는 그는 나의 선생이었다. 나는 집밖에 나가 놀 일이 있으면 꼭 형을 따라 다녔고 형도 날 아우로 지극히 보살펴 주었다. 한마디로 나이로나 힘으로나 경험으로나 나는 상대가 못 되었다.
다른 아이들 처럼 형도 학교에서 오면 소를 찾으러 산에 가야 했다. 소가 노는 산에 간 아이들은 나무 땔감을 한 짐씩 마련하고 나면 낫치기, 토끼치기(잣치기), 고상받기(레슬링 같은 놀이로 항복을 해야 풀어주는 놀이)로 잔디가 좋은 묘 터에서 뒹굴며 놀았다. 아이들과 어울려 놀긴 해도 나는 나무를 하지 않았기에 낫치기는 할 수가 없었다. 낫치기는 나무나 풀을 한 짐씩 걸고 내기를 하는 것이다. 땅의 저 만치에 선을 긋고 그 너머로 낫을 던져 낫이 넘어지지 않고 땅에 꽂히게 하는 게임이었다. 낫을 요령 있게 잘 회전시켜 던지면 낫은 허공에서 몇 회전하여 떨어지면서 땅에 착 꽂히게 되었다. 허나 난 내기에 걸 나무도 없지만 공으로 던진 낫이라도 쉽게 꽂히지 않았다. 나에게는 낫질이 어려웠고 낫질을 하고 싶어했으나 좀체로 나에게 낫을 맡기는 법이 없었다. 내가 어리긴 해도 시골아이가 아니라고 그들은 생각했고 사실 나 또한 손재주가 별로 신통하지 못한 편이었다.
마을 뒤로 돌아 올라가면 산은 높고 골이 깊으나 산에는 땔감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적어도 생솔을 지고 내려가면 일단 산 임자가 나서기 때문에 솔을 베지 못하였다. 그러니 소나무 낙엽인 갈비라는 것은 갈고리로 끍고, 베어낸 나무의 그루터기가 썩은 등걸은 발로 차서 빠지면 줍고, 마른 삭정이와 참나무 갈잎은 모아서 나무 짐을 꾸리고는 소를 찾아야 했다. 소는 우리들이 모여 노는 무덤근처에 있지 않고 언제나 저 멀리 보이는 골짜기 건너 산까지 갔다. 소의 모습이 푸른 소나무사이에 누런 버짐이 번지듯 얼룩얼룩 비쳤다 사라졌다 했다. 동네아이들은 열이나 되었지만 소를 찾으러 올라가는 아이는 하나 둘이면 되는 일이다. 소 한 마리만 몰고 내려오면 나머지 소들은 먹든 일을 그만두고 줄줄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줄 알고 따라 내려왔다. 소가 무덤가로 돌아오면 아이들은 소뿔에 감아 둔 고삐 끈을 풀어 주었다. 아이들은 땔감을 올린 지게를 하나씩 지고는 황토 진흙으로 뒤덮힌 오솔길을 검정 고무신으로 딛고 내려왔다. 앞장 선 소는 신통하게도 자기 집을 알고 주인보다 먼저 집으로 들어와 장독대 아래에 걸린 헌 조선 솥에 구정물을 입에서 물이 되나오도록 한참을 마셨다. 구정물이란 쌀 씻은 뜨물, 그릇 씻은 물, 반찬 버리는 것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헌 솥에 모아 두었다. 내 외가에는 돼지도 개도 키우지는 않았다. 다만 닭은 몇 수정도 키웠는데 소는 언제나 송아지가 있을 정도로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내가 소 고삐를 잡고 대문 돌계단을 올라서면 모두들 신발을 찾아 신고는 반겼다마는 정작 땔나무 짐을 지고 들어오는 형에게는 아무도 반기지를 않았다. 그래도 형은 그저 말이 없고 무뚝뚝하게 지게를 내려놓고 혼자 공동우물로 가서 몸을 씻고 돌아왔다. 외숙모나 이모는 길어다 놓은 물로 내 몸을 씻기었다. 나는 그런 일에 익숙하여 형과 내가 다른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었다.
저녁을 먹기가 바쁘게 형은 윗집인 본가로 올라간다. 외가에서 장희형을 한번이라도 찾거나 불러주는 사람은 잔소리하시는 외할머니 한 분이셨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말이 아들이고 손자이지 남인 걸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정하신 일이지만 외할아버지도 이런 일을 문제삼아 대책을 내 놓을 분도 아니셨다. 형이 말상대를 하는 사람은 옷과 밥을 챙겨주는 외숙모와 학비를 내놓는 외할아버지가 전부였다. 형은 내 막내 이모와는 서너 살 차이지만 꼬박 꼬박 고모라고 불렀고, 외숙모에게는 어머니라고 불렀다. 우리들은 나만 그를 장희형이라고 불렀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장희야'하고 이름을 불렀다.
형이 제법 일꾼이 되어갈 무렵이 되어서 외할아버지는 형에게 농사일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형은 부지런한 외할아버지에게 열심히 일을 배워 농사꾼으로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그것만으로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서 쌀을 팔아 돈을 산 귀한 돈으로 학비를 대어 주었다. 내 막내이모는 초등학교밖에 안 시킨 외할아버지가 장희형은 다음에 마산으로 고등학교를 보낸 것만 보드라도 손자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였다.
형은 또래의 친구들이 많았다. 저녁이면 양담, 음담마을 형 친구들이 모여서 화투놀이를 하는데 불러 다녔다. 사내아이라고 모이면 술도 마시고 과일 서리도 하고 구판장에서 군것질도 곧장 하고 놀았다. 그러다 보니 내 친구는 없고 전부 장희형 친구가 나의 친구가 되었다. 형은 미남이었지만 체격도 건장하고 힘도 좋고 주먹질도 잘 하여 마을에서는 괜찮은 사내로 성장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기 전까지 외숙모의 곁에는 양자인 장희형 자리에 내가 있었다. 가을이 깊어 가면 갈수록 밤은 길어만 갔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외숙모는 마실도 마음대로 다닐 수 없었다. 동네에는 거의가 일가친척이기에 괜히 아낙들 만나 이상한 이야기라도 하고 오면 방송국 스피커인 외할머니 안테나에 걸려들지도 모르니 그냥 청상에 과부 된 죄로 조용히 살아가는 게 편한 처신이란 걸 알았다.
마을에는 홍씨 성을 가진 과부 한사람이 더 있었다. 외숙모는 홍 과부 집으로 날 업고 저녁 마실을 나갔다. 나를 업고 나서야 마실 나서는 체면이 서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지만 홀아비는 없고 과부 친구가 있어 과부 사정 과부에게 하소연을 하고 살았다. 삯바느질을 하며 홀로 사는 홍 과부는 아들이 둘이나 있었으니 외숙모와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키가 작고 코가 납작한 외숙모는 만사에 말대꾸가 없었고 일이 느리긴 해도 못하는 일이 없었다. 음식 솜씨는 아주 그만이었고 바느질 솜씨도 여간이 아니었다. 동짓달 긴긴 밤에는 색실로 자수를 놓았다. 원으로 테를 만든 대나무 수틀 위에 옥양목 무명 천을 안 태 바깥 태 사이에 끼워서 한 올 한 올 색색으로 원앙금침 베개 모서리도 놓고, 밥상 보, 책상 보, 벽에 걸린 옷걸이 보도 자수로 놓았다. 머리에 빨간 원을 올린 학(鶴)도 놓고, 늙어 굽은 노송도 놓고, 구름사이에 걸린 달도 놓았다. 그러나 어쩜 그렇게 나는 외숙모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외숙모의 애환은 하나도 몰랐단 말인가?
일부 종사 열녀 지사. 거제에서 붙잡혀 간 외삼촌의 소식을 알아볼 길이 없었다. 한마디로 외삼촌은 빨갱이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빨갱이는 다 죽이는 세상이니 죽었을 것이고 또 그런 죽음을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 빨갱이의 자식도 빨갱이라도 불렀던 연좌제도의 세상아래서 외가의 가족들은 외삼촌의 죽음을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 어디 가서 물어 볼 곳도 볼 수도 없었다. 그저 조상이 돌보아서 살아오길 조상님과 신령님께 제를 올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뒷산 수리봉에 부엉이가 울면 수리봉 너머 바다건너 거제도에서 무슨 기별이 올까? 달이 밝은 날이면 대문을 열어두고 기다리다 잠시 잠이 든 사이 싸리문을 열고 '임자'하고 부르는 사람모습이 어른거리기도 하였지만 내다보면 언제나 무심한 달만 마당가운데 훤히 비추고 하늘은 어찌 그리도 청정하게 푸르기만 하였다.
사천의 두칠이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