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수필

두칠이



조동수필(校洞隨筆) / 청상의 우물 6
   
   
 
6.

사람이란 추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고 한다.
내 유년의 가장 오래된 추억하고 싶은 기억은 화장실에 대한 기억이다. 조동마을 내 외가에서는 '통시'라고 불렀다. 변소를 부르는 말에는 내가 아는 말만 해도 참으로 많다. 뒷간, 측간, 해우소, 심지어 작은 집으로도 부른다. 헌데 왜 '통시' 이야기를 하냐하면 동란 후 지은 통시란 것이 과연 어떠했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임시로 사용하는 변소가 아니라 그래도 명색이 한 가족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인데 그 시절의 우리네 사정을 대강 이러했다.
조동마을 외가에는 두 개의 통시가 있었다.
하나는 앞마당 오른쪽으로 헛간이란 건물에 있었다. 헛간이란 곳을 화장실이라고도 하지만 헛간은 거름을 보관하거나 쓰던 농기구를 비 맞지 않도록 보관하는 곳이다. 외가의 헛간에는 오줌 담는 독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남자는 물론이거니와 여자도 가능하면 오줌항아리에 엉덩이 사이즈가 좀 안 맞아도 적당히 걸터앉아 오줌을 받아야지 그냥 통시에 해 버리면 안되었다.
헛간은 흙벽으로 된 초가집이 있었으나 헛간의 반을 나누어 나무문을 달아서 곡간으로 사용했고 곡간을 제외한 남은 부분의 반은 흙벽으로 쌓아서 앞을 막았다. 사랑채에서 먼 쪽으로 마지막 남은 반은 정면이 개방된 상태지만 그냥 열린 것은 아니고 처마 밑에다 가마니 한 판을 달아 커튼을 쳐 놓았다. 가마니 커튼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면 흙벽이 막힌 쪽으로 커다란 오물 웅덩이가 파져 있었다. 웅덩이의 앞쪽 흙벽으로 열쇠 주둥이처럼 좁고 길게 오물 통이 연결되었고, 그 위에 통나무와 송판을 걸쳐 발 디딜 곳을 만들었다.
내가 이모나 외숙모의 도움을 받아 통시 발판에 앉으면 내가 볼일을 다 보고 일어설 때까지 그녀는 밖에서 기다려야 했었다. 그 정도만 해도 그전처럼 굴뚝 자리 옆 맨땅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워리'하고 개를 불러 변을 치우던 시절은 면하게 되었다. 나는 변 보는 일에서 어서 자립을 하고 싶었다. 굴뚝 자리 옆에서 볼일을 보면 똥개는 내가 일어설 때까지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변이 떨어지자마자 냉큼 삼키고는 또 다음 떨어지기를 기다리는데 나는 혹시 개가 내 불알을 삼킬까 하는 걱정에 개가 오면 이모를 불러서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막내 이모가 오면 저리 가라고 손 사례를 쳤다. 그 집에서 남자는 외할아버지와 나이었으니 남자가 귀한 집안이었다. 여자가 많은 집에서 자라면서 좀은 조숙하게 남녀 유별을 경험하였지 싶다. 외증조할머니까지 나머지 여섯은 모두 여자가 아닌가.

통시에서 변을 보고 난 뒤 사용하는 밑 닦는 물건은 휴지도 아니오 종이도 아니오 호박잎도 갈잎도 아니고 바로 짚 나래끼였다. 짚 속에는 가늘게 이삭이 달렸던 심이 있다. 이 심을 쭉 뽑으면 부드럽고 연한 속대가 나온다. 이 속대를 뽑아서 통시 앞자리에다 한 움큼 묶어 놓았다. 그 짚 나래끼 몇을 뽑아서 반 뼘 크기로 꺾어 모아 짚솔을 만들어 들고는 항문을 적당히 훔치고 마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얼마나 개운하고 좋은 마사지인지 그 때는 몰랐다. 이건 닦는 것이 아니라 털어 내는 일이다. 내가 그 시절 그 곳에 살면서 산에서 가서 볼일을 볼 때는 갈잎이나 망개 잎으로 냇가에서는 조약돌도 사용해 보았지만 짚 나래끼 만큼 시원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없었다.
이 통시란 게 평시에는 빠질 위험만 배제하면 그런 대로 사용할 만 했다. 허나 비가 오면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았다. 오물 웅덩이에 빗물이 고이는 것이다. 오물 통이 물통이 되어서는 오물이 튀어 오르면 그 위기를 피하는 재주를 연마하지 못하였기에 물이 고여 있는 날은 헛간 안 입구에서 똥개를 불러 해결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나에게 그 고도의 오물 피하는 비법은 아무도 전수해 주질 않았다. 아마도 여자의 비법과 남자의 비법이 따로 있지 않았나 싶지만 나의 외할아버지께서 그런 비기를 알려 주실 위인은 아니었기에 난 자라면서 내 스스로 터득한 방법으로 해결을 했었다. 비가 오고 나면 고였던 오물이 저절로 내려가지는 않아 외할아버지께서 똥 장군을 지고 논밭에 있는 옥외 오물 저장 웅덩이로 옮기고 나서야 해결이 되었다.
통시 두 개중 나머지 하나는 사랑채 뒤에 소 마구간에 있었다. 소가 사는 곳인데 마구간 입구에 짚으로 움막을 만들어 세우고 그 속에 간이 통시가 있었다. 그 곳에 앉으면 어른은 머리가 짚으로 만든 천장이 닿았다. 그 속에는 웅덩이가 아니라 큰항아리를 통 채로 묻어 통시로 사용했는데 굳이 두 개의 통시를 만들었는지 몰랐는데 이즈음 생각을 해보니 비상용이지 싶다. 헛간에서 오물을 퍼내는 일이 생기거나 거름을 옮길 일이 있으면 여자가 많은 집에서는 비상용이 필요하였지 싶다.

외할아버지는 아주 부지런한 분이셨다.
홀어머니 혼자 사시는 집으로 양자를 오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거의 살림이 거들 난 집으로 양자로 와서는 사랑채 안채를 당신이 지었고, 갓(산)도 있고 논이 스무 마지기에 밭이 열 마지기쯤 되는 살림을 일구신 분이었다. 조동마을 집터 여럿이 아직도 외가 소유로 되어있는 걸 보니 외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절에는 천 석을 했다는데 그 할아버지의 후처로 들어온 할머니가 다 팔아먹었다고 했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후담에 의하면 담안양반(아버지는 재미로 장인을 이렇게도 불렀음)은 갓 쓰고 등대 앞까지 행차하다가도 마른 개똥이 있으면 집에 다시 돌아와 망대 들고 가서 주워와 통시에 넣고 갔다는 사람이라고 흉인지 칭찬이지 모를 말씀을 하시곤 했다. 논에서 일을 하시다 점심을 드시러 오시면 호주머니에서 갓 딴 풋고추를 꺼내서 된장에 꾹 찍어서 막걸리를 한잔 술술 드셨고, 아침에 마음먹은 일은 밤이 되고 비가 와도 마쳐야만 저녁을 드신 분이셨다.
단단하기를 말하자면 돌덩이보다 더한 쇠덩이같은 분이셨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랄까 삶에 대한 치열한 정열이랄까! 그 시절에 무슨 일확천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투기나 투전이 있는 일도 아니다 오직 근검절약과 근면함이 삶의 재산이라고 여긴 분이셨다.

조동마을 들판 건너 마산에서 오는 국도가 산을 넘어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곳으로 제법 넓은 하천이 진동만으로 흘렀다. 골짜기 안 마을 추시골에 저수지가 생기고 수량이 적어지긴 했으나 냇물과 봇물은 여름내 아이들 멱을 감고 놀기에는 괜찮은 곳이었다. 하천에 씨알 굵은 감자 같은 조약돌들이 수면과 간간이 나올 정도로 물이 빠지면 나는 친구들과 붕어 떼를 쫓아서 하천을 누볐다. 하천 자갈에 청태가 끼어서 미끄러지기도 하지만 자갈 위로 낮은 물길을 쫓아 달아나는 붕어를 손으로 움켜잡아 갈대 속가지나 풀줄기에 붕어 아가미를 끼어 제방 둑에 올려놓고 땀을 식으려 물이 깊은 곳을 찾아서 멱을 감곤 했었다. 해가 구름 속에 들어가면 산바람이 불어와서 살에 소름이 돋아났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귀알이를 하게되니 볕에 데워져 따끈하고 미끈한 조약돌을 주워 귓구멍에 대고 있으면 귓바퀴가 데워져 귀속에 고인 물이 빠지면 까만 돌에 물기가 비치기도 했다. 알몸이 떨리면 하천에 누어있는 까만 바위에 타고 엎디려 맨 몸을 데우기도 했다.
동신재를 지내는 들 가운데 정자나무에는 전에 물방앗간이었다. 골짜기를 따라 봇도랑이 있어서 이곳을 마을 사람들은 물방아실이라고 불렀다. 물방앗실에 있는 외할아버지 논에는 물웅덩이가 있어 가뭄에는 웅덩이 물을 퍼 올려야 했다. 물웅덩이는 돌을 쌓아 만든 작은 원형의 연못이었다. 물바가지로는 통나무 막대 끝에 바가지를 달아 지렛대가 되도록 막대기 중간을 논둑에 걸고 두 손으로 손잡이를 아래로 누르면 물바가지에는 웅덩이 물을 길러 올라왔다. 물을 다 퍼 올리고 나면 할아버지는 물통을 들고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는 바닥 뻘 속에서 미꾸라지를 골라 담았다. 씨앗 굵은 장어를 두 손으로 잡아 올릴 때는 구경하던 이모들은 함성을 질렀다. 그렇다고 미꾸라지를 잡으려고 때도 없이 웅덩이 물을 퍼내는 일은 없었다. 한해 한번정도이거나 이태에 한번 정도이지만 봄에 물을 퍼 올리면 그 때는 미꾸라지를 잡지는 않았다. 초가을에 물을 퍼야 할 경우에만 미꾸라지를 잡는 것이었다.

미꾸라지 국을 끓여 먹는 제 철이 있었다. 벼이삭이 베기 시작하고 돌무덤 풀숲에 심은 호박잎이 무성한 초가을이 되면 할아버지가 잡은 미꾸라지를 이모가 이고 왔다. 외숙모는 미꾸라지와 대바구니를 공동우물로 들고 갔었다. 텃밭에서 딴 제법 거칠어진 큰 호박잎으로 대바구니에 옮겨 담은 미꾸라지를 손으로 마구 비볐다. 미꾸라지들은 호박잎 가시에 시달려 엷은 비늘을 벗어내고 누런 배에 붉은 핏자국이 베어 나오면 대바구니에 물을 살살 부어서 헹구어 내었다. 그리고는 백 솥(양은 솥)에 넣고 미꾸라지 하얀 살이 툭툭 터져 나오도록 푹 삶아내어서 삼베 천으로 미꾸라지 뼈를 걸러내었다. 남은 살과 물을 서 말들이 소죽을 끊이는 조선 솥으로 옮기고는 애호박 푹 푹 손으로 빻아 넣고, 호박잎 호박순도 손에 잡히는 데로 꺾어 넣고, 고구마 잎을 잘라서 잎줄기에 붙은 껍질 식구대로 앉아 벗겨서 넣고 풋고추마저 넣고 얼큰하게 끊였다. 온 가족이 평상에 앉아 저녁밥상 받으면 긴 해는 어느 덧 지고 건너 낮은 남산머리에도 땅거미가 먹물처럼 번져 내렸다. 마른 풀 한 아름 마당 한쪽에 모깃불로 피워놓고 더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미꾸라지 국을 대접에 받아서는 붉은 고추와 마늘 파 총총 썰어 넣은 양념 간장 한술 넣고 마지막으로 산초나무 껍질을 빻은 가루를 숟가락으로 살짝 한번 떠 넣고는 바람 한 점 안 부는 저녁시간에 땀을 흘리며 먹었다. 외할머니는 대나무 부채로 내 곁에서 내내 부쳐 주고 외숙모는 부엌으로 왔다갔다하느라고 같이 앉아 저녁을 먹어 보질 못하였다. 식구들이 다 먹은 후 어두운 부엌에서 혼자 먹었고 빠르지 못하였지만 차근차근 빈틈없이 오랫동안 혼자서 부엌일은 다 하셨다. 어린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발 들어야 할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닌 처지라 차라리 부엌에서 지내는 것이 당신으로서는 편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밤이 깊어지면 시누이들과 같이 자면 되는 일이기에 오히려 천천히 일을 하는 것이 요령일지도 모른다.

여름에 장마가 지고 큰물이 내려오면 하천에는 물이 그렁그렁 하도록 흘렀다.
비가 그쳐도 봇물은 큰 봇도랑을 따라 물살이 거칠었고 그런 날이 이삼일 지나면 할아버지는 물방아실 봇도랑에서 참게를 잡으셨다. 참게는 바다에서 올라와 민물에서 살다가 새끼를 낳을 때는 바다로 내려갔다. 큰물이 흐른 후에 참게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지 내려가는 지는 나는 모른다. 허나 대나무로 엮은 통발을 쳐서 참게가 지나가는 길목을 막아서 통발에 걸린 놈을 아침에 건져 오는 것이었다. 참게가 많이 잡히면 사변 통에 주운 미군용 차량 그리스 깡통으로 한 통씩 잡았다. 허나 그런 일은 몇 해에 한번이나 있는 일이고 내가 해 본 일은 참게를 낚는 법이다. 긴 대나무 막대 끝에 소꼬리 털을 뽑아서 올가미를 만들고 다른 한 손에는 막대 끝에 미꾸라지를 매달고는 맑은 물이 흐르는 봇도랑 돌 사이에서 참게를 낚아 올리는 것이다. 참게가 사는 구멍 앞에는 모래 밥이 쌓여 있었다. 바위틈 게 구멍으로 미꾸라지를 꼬리부터 넣어주면 참게는 앞다리를 살살 밀고 구멍 앞으로 나왔지만 정작 머리를 내밀고 쏙 나와 주지는 않았다. 잠깐 나왔다가는 위험을 느끼고는 또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이런 수고를 몇 차례 하면서 참게를 유인하여 참게의 큰 앞발에다 올가미 막대기를 잘 겨냥하여 다리를 걸게 되면 일순 잡아채는 것이다. 올가미에 앞다리가 걸린 참게는 대롱  대롱 매달려 물 밖으로 나왔다. 이런 일은 나 혼자 하는 것은 아니고 마을에 또래의 친구나 형들과 같이 했는데 참게를 잡아서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다만 그렇게 잡아 본 기억만 남은 것은 그런 일은 자주 할 수가 없었다. 수리조합에서 봇도랑 허물어지는 것을 막고 물길을 지키는 면사무소의 직원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참게가 민물 디스토마가 있다고 안 것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이고 외할아버지가 잡은 참게들은 모두 참게 장을 만들어 먹거나 국을 끊여서 먹었다. 산 참게에 간장을 끓여서 붓고 또 식으면 끓여 부어 몇 차례를 하여 담근 참게 장은 게장 한가지로 밥 한 그릇을 비울 만큼 맛이 뛰어났었다. 이제 물방아실 봇도랑에는 참게도 안 살고 게를 잡던 외할아버지도 외삼촌도 외숙모도 안 사는 마을이 되었다.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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