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수필

두칠이



조동수필(校洞隨筆) / 청상의 우물 3
   
   
 
3.

피난생활은 두 달 정도였다.
그 두 달 사이에 세상은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
시집살이라고 하지만 맏며느리에 시할머니 시부모 시누이 모시고 젊고 건강하고 듬직한 신랑의 사랑을 받고 산 지난 시절이 외숙모는 꿈같았다.
동란이 일어난 그해 여름 첫애를 낳고 세 이레를 보낼 즈음에 홑이불 한 장 들고 하룻밤 피신길이라고 양담마을 저수지골로 피난을 나갔다.

인민군은 낙동강을 교두보로 결사항전을 한 국군에 대구, 영산 전선을 돌파하지 못하였으나, 호남 쪽으로 진격한 인민군 제6사단은 7월 24일에는 광주를 점령하고 7월 27일에 하동을, 그리고 8월에는 급기야 진주를 지나 함안 여항산(갓떼미산)을 넘고 진북면 서북산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진동 만에서 미 해군의 함포 사격이 시작되어 밤마다 하늘에는 불꽃놀이처럼 포탄 불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나날이었다. 여항산을 보고 날아가야 할 포탄은 가끔은 방향을 잃고 조동마을 들판에 떨어지면 마을사람들은 사색이 다 되었다. 막상 인민군이 밀어닥치지는 않았지만 흉흉한 소문은 마을을 떠날 시간을 오늘내일 하면서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날도 며칠을 못 가서 포탄이 마을앞 들에 떨어지고 근처 진동마을까지 인민군이 왔다는 소문에 돌자 사람들은 그제야 다급하여 저녁밥도 짓기 전에 마을을 떠나야만 했었다.
핏덩이 같은 어린아이를 업고 외숙모도 가족과 함께 집을 떠났다. 다만 늙으신 할머니는 남기로 했다. 놋그릇과 제기그릇은 부엌 아궁이에 밀어 넣고는 외삼촌은 저녁 지을 밥솥하나 지게에 지고는 하룻밤 자고 돌아온다며 떠났던 것이다.

마산에서 신혼살림을 하던 내 어머니는 마산에서 진동으로 살림살이 갖고 와야한다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그날로 마산까지 왕복을 시켜서 옮기고 보니 마을은 모두 피난을 떠나고 외증조할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다. 포탄 하나가 날아와서 뒷집에 떨어지고 불이 붙으니 이고 지고 온 짐을 놓기가 무섭게 떠난 사람들이 간 저수지골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 길로 저수지 골에서 하룻밤을 새고 나니 여기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다음날 저수지 골 안 고개 마루를 넘고 말았다.
내 어머니는 이모 셋을 맡았다. 네 살 짜리 막내 이모는 어머니가 업고 그 무더운 8월 초 길도 없는 산을 넘어가는 피난길이었다. 촉촉한 개울을 손을 후비고 파서 고인 물을 나뭇잎으로 떠 마셨다. 목발같은 총을 들고 우중충한 색깔의 복장을 하고 납작한 빵 모자를 쓴 군인 둘이 땀을 뻘뻘 흘리고 따라 올라 와서는 거침 억양으로 물었다.
"이 쪽을 올라가면 마산으로 가는 길이요!"
어머니가 그렇다고 하자 그들은 거침 숨을 되 몰아 쉬면서 빠른 걸음으로 앞서서 사라졌다.
어머니는 국군이줄 알았으나 그들은 인민군 정찰병이었거나 포탄을 피해 나온 낙오병이었을 것이라는 걸 뒤에 알았다.

고개를 넘어서니 쪽빛 바다가 눈 아래 들어왔다. 구산면 마전마을이었다.
마전은 진해앞 바다와 거제도가 눈앞에 보이는 어촌이었다. 허나 배를 타지 않는다면 걸어서 가야 하는 산골 바다마을인지라 인민군이 산길을 타고 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진동을 떠나온 피난민들의 생각이었다.
어느 집 마당을 얻어서 솥을 걸고 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배는 고파 잠은 오지 않고 여름밤에 별은 어찌 그리도 총총한지............ 외양간 옆에 자리를 얻어서 잠을 자다 소똥세례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밥을 지었다. 소금 국을 끓였다.
소금 국, 소금을 담은 사발에 쌀 씻은 뜨물을 붙고 밥솥에 넣고는 밥을 지으면 밥물에 넘쳐 소금 국이 되는 것이다.
밥덩이 하나에 소금 국으로 밥을 먹었다. 마전에서의 피난생활도 한 달로 끝이 나고 피난민들은 거제도로 피난처를 옮기게 되었다. 피난민을 수송하는 배를 타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숙모와 아이 그리고 외삼촌도 함께 거제도로 떠났다. 어머니는 마산으로 가는 사람 속에 섞여 헤어져 마산으로 혼자 돌아왔다. 신혼살림과 전장으로 전쟁마중 간다고 가져가서 다 버리고 몸과 돌아왔다.

내 어머니는 한 달에 한번정도 날 보러 오셨다.
빨간 무늬 대한금속 버스를 타고 한복을 곱게 입고 오셨는데, 치마는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는 벨벳 치마를 입고 거기에다 꽃신을 신고 도회지 여자처럼 꾸미고는 바람처럼 오셨다.
사랑방 곁문을 열고 들판을 내려다보면 건너 산 아래로 버스가 나타나는 걸 매일 바라보며 어머니를 기다린 나는 정작 어머니께서 나타나시면 기쁘고 반가움을 표현 할 줄 모르는 철이 든 것처럼 보이는 영악한 선머슴아이였다. 참으로 나는 어머니가 날 껴안아 줄 때까지 멀뚱히 바라보는 아이 어른이었다.
어머니가 보고파서 밤마다 울며 잠이 든 아이는 정작 어머니가 떠날 때 한번도 따라 가겠다고 때를 써 보질 못하였다. 외할머니와 외숙모에게서 절대로 네 어머니를 따라 갈 수는 없으니 따라 가서는 안 된다고 이미 수도 없는 세뇌교육을 받아 어머니가 도착하자마자 어른들은 나에게 어머니를 따라 가겠느냐 물어서 내 대답을 먼저 받아두곤 했다.
어느 땐가 어머니께서는 한번쯤 나에게 넌지시 물어오셨다.
"같이 우리 집에 갈래?"
그러면 나는 내가 한 약속이 있어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고 어머니는 날 두고 그날 타고 오셨던 대한금속 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가셨던 것이다.
나는 그날 밤 좀체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런 날 저녁에는 외숙모의 등에 업혀 밤길이 어두운 우물가로 해서 재 너머 양담마을까지 밤 마실을 다녀온 후에야 잠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외숙모는 혹시나 살아 돌아 오실까 외삼촌을 기다리며 둘은 한 몸으로 의지하며 별빛에 노래를 묻어서 외로운 마음을 저 하늘로 떠나 보냈다.

이 상조, 그는 내 어머니의 한 분뿐인 오라버니 이셨고, 외할아버지의 외동아들이었다.
아들과 손자를 놓치고 피난길에서 돌아온 집안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피난에서 돌아온 마을 사람들은 집을 짓고 곡간에 곡식을 채우고 삶의 근본을 다시 일으켰으나 아들과 손자를 잃고 돌아온 이 집안에는 희망과 낙이 없었다. 다 타고 없어진 자리에 집을 짓는 일도 내 외조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아니 마지막 한 분으로 이 집을 지키신 외숙모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이 초가 삼간에 사시다가 모두 돌아가셨으니 집안의 운명은 자식이 없고 대가 끊기면 인간사 삶의 근본이 사라지는 것인가 보다. 우리 옛말에 선비의 책 읽는 소리가 나야 하고, 아낙의 베 짜는 소리가 나야 하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나야만 행복이 깃 든 집이라고 하였다.
허나 대한금속 버스는 날이 밝으면 또 오지마는 거제도 땅에서 헤어진 이상조, 내 외삼촌은 결국 돌아오시지 않았다. 한 많은 이산가족 찾기가 방송국에서 수백만 인파를 울리고, 남북 이산가족 찾기가 또 다시 수천만을 울리었건만 살아있는 사람은 돌아오고 찾아오건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외삼촌은 외숙모의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로 아들같이 젊은 외삼촌 사진 한 장 앉은뱅이 책상머리에 걸어두고 천주님께 기도하던 내 외숙모 님의 한 많은 청춘을 어린 내가 알기에는 나는 너무도 어렸다.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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