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수필(校洞隨筆) / 햇살은 다시 들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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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가 장가를 오신 날은 음력 정월 스무 이레 날이었다.
내 외할머니 대물림을 받은 천상 이야기군인 내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이팔청춘 내 어머니는 꽃다운 열 여덟에 아버지를 결혼식장에서 처음 보셨다고 했다.
신랑 신부 맞절 할 때 신랑은 신부에게 한번만 절을 하고 신부는 신랑에게 두 번 절을 했다. 그 빚진 절은 다음에 혹 아내가 남편보다 먼저 죽게 될 때 죽은 아내의 영정 앞에서 갚는다고 했다.
사주단자를 보내고 가문을 서로 알고 혼사를 하지만 사진 한 장 없는 시절이었으니 신부는 신랑 얼굴이 얼마나 궁금하겠는가 마는 그 시절에 양가집 규수는 부모가 맺어주는 배필이라 그런가 했다. 배목(전주 이씨의 집성촌인 梨木里) 이씨 양반이라고 살림조차 궁색한 집으로 출가를 시킨 것이다.
사실이지 그 전까지 궁금하긴 했다만 내색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식장에 둘러선 사람들이 마치 신부가 들어라는 듯이 신랑의 눈이 사팔뜨기이니 코가 비틀어졌다니 하면서 신부의 궁금증에 애간장을 태우는 것이었다. 너무나 궁금하여 용기를 내어 겨우 얼굴을 살짝 들어 아버지의 모습을 훔쳐보았다고 한다. 허나 내 아버지는 콧대가 반듯하고 얼굴이 가름한 귀공자 모습이셨다.
아버지는 장가를 가기 전날 결혼 사실을 아셨다고 했다. 진동면 건너 진북면이 내 아버지 고향인데 마산에서 역무원으로 계시던 아버지를 할아버지께서 찾아오셨다.
"내일 아침 일찍이 조동마을에서 결혼을 할 터이니 그리 알고 준비해서 오도록 하여라."
할아버지는 이 한마디로 당사자에게 알려왔다.
"조동이 어디 있는 마을입니까?"
"창원군 진동면 조동부락, 진동 읍에 내려서 찾아가면 그날 잔치하는 집은 그 집뿐이니 신랑이 왔다고 하면 돼. 빙장어른 함자가 이자 시자 붕자이니라."
그 다음날 아버지께서는 친구 두 분을 우인대표로 하여 조동마을을 찾아갔으나 진작 조동마을에는 잔치하는 집이 없었다.
진동면에 정말로 조동마을이 있었는가 보다. 내 외가는 조동마을이 아니라 교동마을인데 이 곳 마을 사람들은 모두 조동으로 발음을 하니 내 할아버지도 조동이라고 일러 드린 것이었다.
아버지 일행은 조동마을은 포기하고 다시 교동마을로 찾아오니 정말로 식장에서는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진작 나타나야 할 신랑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사정이 딱하게 되었겠는가. 그래도 느긋하기 그지없으신 내 할아버지는 내 어제 틀림없이 아들에게 여기를 찾아오라고 직접 일러 놓았으니 염려 말고 기다려달라고 하셨단다.
그 때는 지금의 삼간 초옥은 없었고 사랑채가 윗마당 자리에 있었고 안채가 지금의 초가 자리에 있는 마을에서 면장집 다음으로 큰 집이었다. 집성촌 종가 집에 첫딸을 치우는 혼사이니 동네 사람들에게는 동네 잔치 날이었다.
혼례가 끝이 나고 저녁에 새신랑을 다룬다며 처각들이 모였다. 처각이란 신부의 남자 동기나 동네 젊은 오빠나 미혼인 아재뻘 되는 남자들을 말한다.
그들은 신랑을 볼모로 술상도 우려내고 겨울에 없는 음식을 청하여 장모나 처제들을 아주 곤란하게 하는 풍습이었다. 닭을 잡아라 하면 닭을 잡고 고기를 내라고 하면 고방 기둥에 걸린 고기 살도 도려내고 신랑을 곤경에서 구해줄 요량으로 갖은 음식 다 차려내었는데 마침내 그들은 수박을 청했다.
헌데 그 겨울철에 어디서 수박을 구해 올 것인가. 지금 같으면 제 철이 아니어도 구할 수가 있지만 그 겨울에 없는 수박을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신랑의 발목을 광목 띠로 묶어 마루 위 나무 보에 걸고는 발바닥을 몽둥이로 때렸다.
"아이고 장모님! 나 죽것소! 수박을 달라고 하니 수박 좀 구해 주소!"
"이 일을 어쩌나. 이 놈들아 내 사위 좀 봐 주라. 이 겨울철에 수박이 어디서 나오나!"
"이런 부잣집에서 수박 한 덩이 사위 줄라고 사 올 수도 없나? 할 수 없지 우리들이 사위나 실큰 다루자. 에잇 한 대 더 맛아 봐라!"
"저 새 신랑 발목의 복숭 씨가 다 뭉개졌소.. 영 죽을상이구먼."
"이 놈들아 수박, 그래 수박 여기 있다. 이 수박 말이가?"
"남의 장모님, 이건 수박이 아니고 하늘수박이잖소."
"하늘수박은 수박아이가! 이놈들아 이제 풀어주어라! 여기에 새 상으로 술상 내 놓았다."
"하하하"
모두들 내 외할머니 기지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고 말았다. 부엌 흙벽에 말라서 쭈그러진 주먹만한 하늘수박을 기억해 내고는 누군가가 찾아서 외할머니에게 전해주었다.
한바탕 술잔이 돌고 난 후 물싸움이 벌어졌다. 마을 우물에서 물을 길러 이고 와서는 편을 갈라 짚단에 적시어 상대편을 때리는 놀이였다.
동네 처각들이 한편이 되고 신랑과 신부 친구들이 한편이 되어서 처각들은 신랑을 주로 공격하고 신랑 신부와 신부 친구들은 방어를 하면서 짚단으로 노는 놀이이다.
마당 구석에 짚을 쌓아둔 짚동에서 짚단을 하나씩 빼내어 던지고 받고 때리고 하다보니 짚 한 동이 어느새 마당에 다 갈렸다. 짚단은 마당이고 부엌이고 방안까지 날라 다녔다. 물이 묻은 짚단은 다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였다.
알뜰한 내 외할아버지는 저 아까운 짚단이 마구 흩어지는 것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날은 구두쇠 내 외할아버지도 그냥 허허하고 넘겼을 것이다.
내 어머니는 첫날밤 신방에서 신랑 들어오기를 기다렸는데 밤이 깊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들어와서는 술이 곤드래 만드래가 되어서 첫날밤도 못 지낸 첫날밤이 되었다고, 그렇지만 이제는 장난 많았던 그 시절이 그렇게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내내 회고담을 들려주신다.
그리고 몇 해 후 동란이 일어나고 그 집들도 다 타고 말았다. 나머지 내 이모들은 이 삼간 초가에서 혼례를 치렀다.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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