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수필(校洞隨筆) / 청상의 우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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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어머니의 택호는 조동댁이시다.
조동은 교동의 경상도 발음이다.
학교를 학조라 하듯이 교동이 조동인 것이다.
부산서 목포까지 가는 우리 나라 2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이니 그리 산골 벽지도 아니고 어촌 낙도도 아니다.
마산 무학산 줄기는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낙동강 남쪽을 흘러서 낙남정맥을 이루니 그 맥아래 바로 창원군 진동면 교동리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지금은 도농통합이 되어 마산시로 편입이 되고 말았다.
조선시대에 해안지방 군사요충지에 진이 설치된 곳이라 鎭東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진동 진북 진전을 삼진면이라고 불렀었다.
외할머니께서는 정말로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르시는 분이셨다.
그래도 어찌 그리도 입담이 좋으신 지 한두 시간은 충분히 혼자서 말씀을 하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셨고 나도 그 손자답게 기분이 거나해지면 내 이야기에 내가 빠져드는 실수를 가끔씩 범하곤 한다. 엄지손톱 한마디가 짧아서 손톱이 아니라 마치 손톱 깍은 자투리 같았고 내가 할머니 손마디를 잡으면 손을 내어 주시긴 해도 미상불 당신은 가슴이 아프셨다. 당신 손톱모양이 저래서 아들 손이 귀하다고 여기고 계신 까닭이었다.
아침에 잠을 깨어 요강을 찾으면 얼른 문을 열고 마루에 사기 요강을 들고 와서는 팽팽해진 고추를 꺼내어 오줌을 받으셨다.
눈을 감고 오줌을 싸던 나는 오줌발이 굵었다 가늘어졌다하여 오줌발이 방으로 뿌려지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그칠 때까지 고추를 붙잡아서 조준방향이 잘못되지 않도록 하셨다.
오줌이 방울로 떨어지는 고추를 털어 주시면서 말씀 하셨다
"이 고추 뭐 할 끼고?"
"씨 할낍니더."
나는 외할머니의 이 질문에는 반드시 이렇게 답을 해야만 하하 하시며 속옷에 넣어 주시곤 하셨다.
어린 내가 이 말의 뜻이 무언지 알 턱이 없었다마는 다른 말을 할 요량이라고는 꿈에도 없었다.
저녁에 잠자리에서는 눈 사이에 낮은 내 코 부분을 당신의 두 손가락으로 세워주시면서
"코가 커야 사내가 되는 거야."
그러면 나는 할머니 말씀대로 내 코를 할머니께 맡기고 죽은 내 콧대가 살아나길 바랬다.
가끔씩 이웃 할머니께서 놀러 오시면 나보고 묻는 말씀이 있으셨다.
"터 팔았나?"
나는 무슨 말씀이신 지를 모르니 대답을 못하면 얼른 할머니께서 답을 하셨다.
"터 팔았데."
"그래, 그럼 또 고추밭에 팔았겠지?"
그런 다음부터 나는 할머니께서 너 터 팔았나 하시는 질문에는 늘 이렇게 대답하였다.
"터 팔았어요."
"어디에다?"
"고추밭에요."
할머니들은 내 대답에 까르르 웃으시고 즐거워하셨다.
내가 손자 볼 나이에 들어선 이즈음에서야 그 말의 뜻을 되새겨 볼 수가 있었으니 그 동안 나는 참으로 유년의 기억들을 송두리째 잊고 살았던 세월이었다.
어린 내가 어디에 내 터가 있었겠냐?
바로 내 어머니 자궁이 내 터였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는 말을 터를 팔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조동마을 앞에는 들판이 건너 산과 뒷산사이에 하천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들판 건너산기슭을 따라 2번 국도가 마산으로 연결되었고 국도에는 일제시대에 심었던 포푸라나무가 늙고 궁상맞은 꼴로 보얀 자갈먼지를 덮어쓰고 길 언덕에서 뙤약볕을 맞고 있었다. 길은 하천을 따라 산 속으로 뱀꼬리 마냥 사라지는 곳으로 하루에 네댓 번 대한금속 정기버스가 내려왔다. 부산서 출발하여 마산을 경유하여 충무까지 가는 버스였다. 버스라고는 직행이고 완행이고 구별이 없었다. 도라꾸라고 부르는 트럭들이 버스보다 많이 오가는 길이었다.
들말이라는 곳이 조동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들말을 지나 하천을 건너야만 조동으로 올라갈 수가 있었다. 하천을 진동만으로 흘러가지만 조동은 바다가 보이지 않고 작은 들판을 가운데 두고 산으로 둘려 쌓여 있었다.
징검다리를 건너야 조동마을로 갔다. 하천을 건너기 전에 하천 물을 농사용 봇물로 돌리는 수로를 따라 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작은 호수를 만나게 된다. 호수주위는 물버들나무나 수양버들나무 또는 물풀들이 시퍼렇게 자라 덤불을 이루어 내려다보면 간담이 서늘하기도 했다. 처녀가 탯줄도 안 끊고 버린 아이가 발견되기도 했다느니 밤에 머리 푼 처녀 귀신이 나타난다는 등 머리칼서는 소문들이 무성한 호수였다. 그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봇도랑 물 속에는 미나리와 말풀들이 물살에 쓰러지며 자라고 있었다.
징검다리는 어린 내가 건너기에는 돌 사이가 멀었다. 그러나 나는 요령 좋고 조심성 있게 건너다녔다. 물론 내가 혼자 하천을 건너기까지는 제법 긴 세월이 흐른 뒤이었을 것이다.
하천의 폭이 넓고 자갈이 하상을 메우고 있었지만 물이 흐르는 곳은 일정하고 물이 깊지 않는 곳으로 돌다리가 놓여 있었기에 물을 건너다니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조동마을 초등학생들도 다 이 하천을 건너서 다녀야 하고 장을 보러 다니는 아낙이나 늙은이도 일상으로 건너야 하는 돌다리였다.
들판을 지나는 우마차 길을 따라 걸어가면 큰 정자나무가 마을 입구를 알리고 그 아래에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었다. 오른쪽으로 아담한 동산이 마을뒷산에서 흘러 내려와 마을을 두 곳으로 나누어 놓았다. 동산자락 끝나는 하마비가 있는 곳에서 길은 양담마을과 음담마을로 나누어졌다.
동산의 이름은 솔개등대라고 불렀다.
솔이 울창하고 양쪽 마을을 지키는 등대처럼 생긴 모양에서 불렀는지 솔개가 나는 모양이어서 부르는지 모르나 나는 날만 새면 등대의 숲에서 놀았다.
솔개등대를 마을에서는 등대라고 했다. 등대 위에는 평지가 있었고 평지에는 큰 무덤들이 석물의 경호를 받으며 널브러져 있었다. 오래된 곰솔(해송)들이 키를 재며 자라고 남으로 비탈진 곳에는 재실 전각이 서 있었다. 지붕과 마루가 아름답게 나무 조각이 되었으나 가꾸는 사람이 없어 버려진 재실건물은 어린 우리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신발을 신고 오르내렸으며 비를 피하기도 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기둥이나 난간에 매달려 노는 일이 다반사였다. 재실에서 바라보면 양담마을 앞에도 작은 산줄기가 흐르고 그 앞으로 하천 물이 계곡을 만들어 진동만으로 흘렀다. 재실건물에는 솔바람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대 바람 소리는 더욱 무성하게 들리는 곳이었다. 양담마을과 재실사이는 대숲이 경계를 하여 마을이 보이지 않고 언제나 대밭만 보였다.
등대를 오르는 길은 오솔길들이 여기저기로 생겼다. 솔밭사이로 난 오솔길을 다 외우고 있었다. 그래야 술래잡기를 한다거나 장난싸움이 붙을 일에도 사라지고 나타나고 하는 것이 여반장이고 작은 동산이지만 위급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지름길을 외우는 일은 본능이었을 것이다.
솔개등대 아래 길을 따라 등대를 타고 가면 조동마을 동네에 들어서게 되었다. 마을과 논의 경계가 마을길이었다. 면장집 논 앞에 사각으로 황토 마당이 길에 있었다. 마당에서 면장 집으로 들어가고 마을길은 면장 집 흙담을 따라 돌아가면 뒷산이 흘러 내려온 등대로 넘어가는 재를 만나게 되었다.
재를 넘어가면 양담마을이고 면장 집이 있는 곳이 음담마을이었다. 재를 넘어가기 전에 마을 공동우물이 있었다.
우물은 어른 키 두어 자 길 아래로 내려서야 우물마당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우물마당 사방으로 돌담을 쌓았고 그 마당에 내려서면 물을 손으로 직접 길러 올릴 수가 있도록 우물 담의 높이가 앉은 자세에서 어른 허리 높이정도였으니 앉은 채 바가지를 들고 우물 턱만 넘기어 물을 퍼 올리면 되었다.
우물마당은 시멘트 마당으로 되어 있었고 허드레 물이 흘러 내려가는 곳으로 물 굴이 있어 물은 굴을 통해서 면장 집 논으로 흘러 들어갔다. 논은 이 물을 받아 농사를 짓는 미나리 밭이었고 물 굴속은 시원하고 바람이 잘 통하여 동네 콩나물 통들이 삼베수건을 하나씩 머리에 쓰고 앉아있었다.
시멘트 마당은 제법 넓어 낮에는 급한 빨래를 하기도 하고 밤이면 목욕탕이 되기고 했다.
아침이면 물독을 이고 오는 아낙들과 쌀을 씻는 며느리들의 아침 인사 터가 되는 곳이었다.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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