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수필

두칠이



조동수필(校洞隨筆) / 청송은 굽어도 9
   
   
 
9

내가 조동마을 뒷산으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던 그 해 그 달에, 외가의 텃밭에 봄 마늘이 마늘 쫑대를 하늘로 향해 치솟아 올리던 그 봄날이 지치던 그 늦은 봄에 외숙모는 쓰러지고 말았다.
급히 연락을 받고 진동 태봉 병원으로 가보니 코에 호흡기를 박고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담당의사는 거의 회복 불가능한 뇌혈관 장애로 일어나는 뇌경색이라고 했다.
지난 2주전 만해도 그리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는데 약도 꼬박 꼬박 잘 드셨는데 노인에게 지병은 기약이 없는 일이었다.
그날도 이웃집 아주머니의 관심으로 외숙모는 발견이 되었다. 아랫집에서 외가를 보니 마당의 빨래가 해가 지고 어둠이 지붕 위에까지 내렸는데 빨래 줄에서 아니 걷히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웃집 아주머니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사립을 열고 외숙모를 불러도 대답이 없자, 방문을 열어 보니 혼자 쓰러져 있었다.
병원에서 며칠이 지나자 의식은 희미하게 돌아왔으나 수족마비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회복을 기원하고 기원했건만 거의 식물인간이 되고 있었다.
입원비용과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외숙모 저금통장에는 시골에서는 제법 큰돈인 몇 백만 원의 현금이 있었다. 사실이지 그 누가 제 호주머니에서 이제 곧 돌아가실 기약 없는 사람에게 기부를 할 것인가?
일단은 외숙모가 남긴 돈으로 입원비와 간병비용을 충당할 수가 있었다.
나는 주말이면 빠짐없이 간병 인을 만나고 경과를 보며 회생하길 학수고대하였으나, 촛불 같은 목숨은 되살아나는가 싶더니 결국은 미음도 못 드시니 수족에 혈이 돌지 않으니 목숨만 붙었지 한쪽 손부터 새까맣게 죽어가고 있었다. 간병 인이 쉴새없이 마사지를 하고 이모들이 간병을 하면서 밤을 새워 손발을 주물이었건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제 몸에 붙은 살이 섞어 가는 것이었다.
저리 목숨이 질긴 것인지, 무슨 여한이 남아서 차마 못 떠나고 이승을 헤매고 있는 건지, 현대의학으로 회생이 불가한 뇌경색에 전신마비에 의식불명에 한마디로 식물인간이었다. 산소호흡기를 떼면 그냥 죽고 마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막상 그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명이 붙어있는 한 지켜 볼 도리밖에는 없었다.
다행이 노인을 대상으로 중풍이나 뇌경색 전문병원이니 몇 일을 더 두고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갈 길이 정해져 있었는데, 그런 날도 하루 이틀을 세고 나니 마지막 목숨 줄을 당신 스스로 놓고 십자가 새긴 묵주를 손에 든 채로 눈을 감고 말았다.
"외숙모님, 정말로 힘든 한 세상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는 편안히 저 안식의 나라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과 편안히 지내길 바랍니다."
나는 진정으로 외숙모의 죽음이 그녀의 기나긴 여정의 종지부에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얼마나 기막히고 한 맺힌 인생을 사셨는데도 이렇게 자식 한 명, 며느리 손자 한 명 없는 병실에서 마지막 임종을 고했던 사람, 길고도 험한 세상을 혼자 헤매며 살았던 사람, 열 여섯 꽃다운 나이로 시집와서 나이 스물에 남편 잃고 청상에 과부가 되어 이 풍진 세상에 그 모진 세월을 다 겪고 사신 나의 외숙모는 그렇게 이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내 막내 이모는 외숙모가 시집온 후 외할머니가 낳았다고 하니 딸같이 키운 사람이었다. 막내 이모는 그 큰 눈이 다 허물어지도록 울었다.

외숙모는 성당 공원묘지에 가고 싶어했다. 헌데 공원묘지에도 터를 사야하고 돌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데 저렇게 며느리 손자와는 원수가 되어버렸으니 죽고 나서도 돌볼 사람이 없는 형편이었다. 내 어머니는 아주 단호한 결정을 잘 내리는 사람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나도 네 외숙모처럼 천주님 믿는 사람이고, 너희 외숙모 같은 처지의 사람에게는 화장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니 화장하여 산천에 뿌리고 무덤을 만들 것도 없다. 생전에 자식이 있는 사람도 죽고 나면 조상묘 안 돌보아 벌초도 안 오고 제사도 없애고 하는 세상인데, 이 세상에서 다 못한 일들은 천주님 믿는 곳에서 다시 받고 누리고 살면 되는 일이지 편하고 쉬운 대로하고 말거라."
내 어머니는 이렇게 현실주의자이었다.
그래서 외숙모의 시신은 화장을 하였고 곱게 빻은 뼈 가루는 내 이모부 두 분이 저수지가 있는 추시골 산중의 어느 소나무 아래에다 뿌리고 왔다고 했다.
헌데 이게 웬일일까?
내 작은 이모부는 그날 이후에 안절부절 하면서 잠을 못 이루게 되었다. 꿈자리가 사납고 뒤숭숭하여 드디어 작은 이모부는 말문을 열었다.
유골을 뿌린다고 두 분이 가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외숙모 생전에 두 이모부는 혼자 사는 외숙모에게 여러 가지로 각별하게 지내는 사이었다. 오랫동안 처가를 왕래하면서 정이 많이 든 사람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유골을 고운 한지에 정성 들여 받아서 추시골 저수지에나 냇물에 뿌릴까하여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올라갔다. 헌데 차는 저수지에서 멈추지 못하고 지나치고 말았던 것이다. 하는 수없이 어디 냇물을 찾아서 갈려고 했는데 그 마저 길이 막히고 간단하지 않게 되자 그만 솔숲이 좋은 산으로 들어가서 막상 숲 속에 뿌릴까하니 맘이 영 안 내켰다. 때마침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작은 이모부는 그만 들고 있던 유골 봉지를 소나무 아래 놓고는 급히 내려와 버렸다. 아래서 기다리던 큰 이모부에게는 산에 이리저리 뿌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서 우리들에게는 적당히 산 속에 뿌리고 왔다고 하니 모두들 그런가보다 하였다. 헌데 문제는 그 이모부가 스스로 자책감에서 헤어나질 못하였다.
한 주일쯤 지났을까 작은 이모부는 내 어머니와 이모들 그리고 큰 이모부를 불러모아서 그날 있었던 일을 제대로 다시 이야기를 하자 모두들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외숙모의 영혼이 제 갈 곳을 몰라서 구천을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우리들이 그 원을 못 들어주어서 무슨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작은 이모부의 꿈에 외숙모가 자꾸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 사실은 안 모든 사람들 꿈에 나타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외숙모가 진작 묻히고 싶은 성당 공원묘지에 왜 묻어주지 않았는가?
외숙모가 남긴 돈이 얼마인데 우리들이 외숙모를 위해 무얼 했는지 되물어온다면, 끝없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영혼과 싸움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영혼의 원을 일찍 들어주는 편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지체 할 일이 아니다. 모두들 의견이 일치하였다. 소나무 아래 버리고 온 유골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의견의 일치였다. 그리고 그 유골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내 어머니는 아주 명쾌한 회답을 내 놓았다.
"남편의 묘지도 없는데 그리고 어차피 돌봐줄 후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묘지를 다시 만드는 일은 불가하다. 그 유골을 망자가 평소에 가고 싶었던 성당 공원묘지에다 뿌려주고 돌아와라!"
일단 유골을 다시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비가 와서 씻겨 내려갈 수도 있고, 산짐승이 물고 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찌는 듯한 팔월의 무더위 속에서 두 이모부는 기억을 더듬어서 추시골 저수지 길로 차를 몰고 갔었다. 한편으로 혹시나 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추스르며, 물론 두 사람 다 예순을 넘긴 나이이지만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라 무서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번에 차를 세웠던 곳에서 내려 이제는 두 사람이 같이 산을 올랐다. 그날도 작은 이모부는 차에 내려서 그리 멀리 까지 올라가지는 않았기에 두고 온 자리를 쉽게 발견하였다. 유골이 든 봉지를 보니 고스란히 그 모습 그대로 놓여있었다.
두 사람은 죽은 사람 다시 만나는 심정으로 유골 봉지를 수습하여 상자에 담아 들고 급히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곧장 고성 어딘가에 있는 성당 공원묘지로 향했다.
누가 알려 준 일도 아니고 누가 상관을 해서도 아니다. 일을 제대로 못하고 그냥 산에 버리듯이 두고 돌아온 본인의 마음에 흠이 되어 평생 가슴에 업 하나 지고 갈 뻔한 일을 다행이 온전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후로는 어느 누구 한사람 이 일로 상처받거나 마음에 흠이 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속으로 외숙모가 남긴 돈으로 성당 공원묘지 땅을 살수도 있었는데, 물론 병원 비를 내어줄 사람이 따로 있어야만 되는 일이지만, 아직도 외가에 남긴 유산이 어느 정도는 충분히 있는데, 당장 생돈을 내어야 하는 일이지만 내가 자식도 아닌 처지이니 내가 나서지도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었다. 헌데 이 일에 있어 어머니나 이모나 그리고 이모부나 어느 한 분만이라도 내 생각처럼 의견을 내어놓았다면 나는 어머니를 설득시켜 볼 요량이었으나 이제는 다 지나가고 만 일이 되었다.
외숙모가 돌아가시자 오래되고 얽히고 설킨 실타래 같은 이 집안의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하나씩 하나씩 풀리기 시작함을 알게 되었다.

조동마을 솔개등대의 키 크고 오래된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줄기가 굽어서 살았다.
이 척박한 땅에서 죽지 않고 살자면 굽지 않고는 살수가 없었다.
일제의 속박에서 겨우 해방이 되어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자 할 무렵 이 땅에는 좌우익의 소용돌이가 몰아쳤고, 급기야는 민족 최대의 비극인 동족상잔의 피비린내를 불러온 동란이 일어나고 말았으니 어찌 그 시대에 살던 민초들은 등이 안 굽고 살 재간이 있었겠는가?
허나 청송은 굽어도 푸르고 기상이 의젓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솔은 솔이더라.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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