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수필(校洞隨筆) / 청송은 굽어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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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외숙모 칠순 잔칫날이었다.
청춘에 홀로 되시어 시부모님 모시고 일평생 혼자 살아온 정신을 사람들은 말하길 그 시대에 우리네 여인상이라고 치부하고 얼부무리고 마는 일이다. 그러나 시대가 아무리 기구하고 어려웠다고 해도 인간 한 세상 태어나 살다 가는데 예전 세상에는 그래도 되었고 요즈음 세상에는 그럴 수는 없다고 어찌 말할 수 있는가?
세상의 모든 딸들은 원초적으로 숙명적으로 남자에 비하여 여러 가지 삶에 고단함을 겪어서 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은 여자에게 남자가 갖지 못하는 모성의 본능과 상냥함과 여성다운 면을 갖는 장점을 주었다.
홀로 사신 외숙모의 일생은 한의 세월이었다. 남편 잃고 어린 자식 잃고 양자마저 잃고 말았으니 세상에 불행이 있다면 어디 이만한 개인적인 불행이 어디 있겠는가?
내 어머니와 이모들이 나서서 환갑 잔치를 벌렸다. 본인이야 남편 없는 여자가 혼자 하는 칠순이 어디 자랑이냐? 마다하였지만 내 형제들이 앞장서 마을사람 청하여 잔치를 마련했다.
비단 한복 맞추고 파마머리에 고운 화장까지 하니 새 색시같이 고왔다.
잔치 전날 가족들은 초가의 좁은 방에 촘촘히 누워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외숙모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감나무 곁에 서서 솔개등대 생갑나루쪽으로 내려다보았다. 작은 키에 외숙모의 모습이 보였다. 손에 들고 머리에 이고 진동 고현 뱃머리 새벽 어시장에서 바다 생선을 가득 사 왔다.
펼쳐놓으니 봄철 최고의 횟감인 학공치가 펄쩍 펄쩍 뛰고 있었다.
칼질 솜씨가 좋은 아우가 꽁치 주둥이 쳐내고 꼬리를 쳐내고 비늘을 대강 벗기고는 초고추장에 풋고추 숭숭 썰고는 초장에 버물려서 한 그릇씩 내어놓으니 천하일미였다. 우리는 식전부터 학공치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비웠다. 동네에 사는 일가친척들은 아침에 모이고 멀리서 기별을 듣고 온 외숙모의 친정식구들은 점심상을 마련했다.
초가 마당의 밭자락은 그냥 사람 발에 밟혀 마당이 되고 말았다. 해거름이 되자 장구가 나오고 어와 둥실 춤사위가 한바탕 벌어졌다. 외할머니 사위들은 이구동성으로 혼자서 이 집을 꾸려온 외숙모의 노고에 잔을 올리고 모두들 취하여 놀았다.
그런 시절도 다 지나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외숙모는 시름시름 편찮아지기 시작했다. 내 어머니의 권유로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고 새벽마다 성당에 기도 가는 일을 낙으로 삼고 사셨다. 글을 아시니 성경을 읽고 여러 가지 기도문을 익혀 묵주 기도를 하루에도 여러 시간을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일로 나날을 보내셨다. 늦게 믿은 신앙이지만 십 년 이십 년을 믿은 사람 못지 않을 정도로 신앙심이 돈독했다.
외숙모의 방에는 아들 같은 젊은 나이의 외삼촌 흑백사진이 앉은뱅이 책상머리에 놓여있었고 그 곁에 성모상과 촛대가 놓여있었다. 외숙모는 매일 성모님과 외삼촌에게 기도를 받쳤다.
혼자 사시는 외숙모를 그나마 찾아가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내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면 외숙모에 대한 은혜를 값을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말이면 찾아갔었다. 얼마나 사람 찾아오는 걸 반가워했는지 그리고 날 끔찍이도 사랑하였는지 그 사랑을 그릇으로 담아 모았다면 작은 호수 하나는 채웠을 것이다.
외숙모의 지병은 심장병이었다. 언제나 약을 잡수셔야 했다.
외숙모는 돌아가실 날을 거의 알고 계셨을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하고픈 일이란 죽은 장희형의 양자를 파기하는 일과 남은 재산을 어찌 할 것이라는 거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일을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양자를 파기하는 일도 간단하지 않고 누구 한사람 도와주거나 동조를 하지도 않았다.
외숙모는 나를 만나면 가끔씩 죽은 몬지 아재 이야기를 꺼내고 아재의 두 아들이 집안 밖의 일을 거들어주어 편하다고 했다. 몬지 아재 아들은 예전에 몬지 아재가 살던 집에서 형제간에 의지하며 살다 부모가 그립고 외로우면 외숙모 찾아오곤 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추측에 양자를 파기하면 이 집과 남은 전답을 몬지 아재 아들에게 남길 심사인지 아니면 양자로 두 아들 중에 하나를 다시 들일 생각을 했을 것도 같았다.
몬지 아재 아들을 보자 제 아버지 얼굴보다 잘 생기고 체격도 다부져 건장한 청년이 되어있었다. 아재의 그 허허롭고 다정한 성격을 닮았다면 외숙모의 생각도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마음에 걸리는 일은 외할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장희형의 아들이 있는데 그런 생각을 혼자서 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옥잠화 푸른 잎사귀 사이에 박꽃처럼 희디흰 옥잠화 꽃이 만발한 가을이었다.
남새밭에는 고추가 붉게 익어가고 파란 하늘이 지붕을 인 듯한 초가에는 몇 고랑만 심은 마늘이 꽃대를 올려서 부지런한 외숙모도 이제는 작은 남새밭 가꾸는 일도 힘에 부치는 건강이었다. 예전에는 그렇게도 주렁주렁 달리던 반시 늙은 감나무에는 감도 이제는 별로 열리지 않았다. 밭둑 언저리를 어시렁 거리는 암코양이는 빈 헛간에는 쥐도 안 잡고는 고추밭 가지위로 날아가는 호박벌을 냉큼 뛰어올라 잡아서 먹는 고요 속에 빛나는 찰나였다.
외숙모는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방에서 앉아 묵주기도를 하루 종일 드리는 일이 전부이셨다. 새벽기도 나가는 일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러나 당신의 한평생은 시부모님 봉양하고 양아들이지만 키웠는데 이제 늙고 병들고 보니 누구한 사람 밥 한끼 차례서 대접하고 약 한 첩 다려서 올리는 사람이 없었다.
외숙모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선정이 되지도 못했다. 호적에 며느리와 장성한 손자가 있고 논밭이 있으니 해당이 되지 못했다. 지역의료보험조합에서 매달 기 만원의 고지서만 날아왔다. 일전 한푼 돈 생기는 일이 없는 사람, 논 몇 마지기 남에게 도지 주어 가을에 쌀 받으면 혼자서 먹는 식량이 겨우 되는 사람에게 세상에는 복지사회 선진국이라고 하는 우리 나라에 이런 현실이 있었다.
논을 가져간 이모가 매달 얼마의 생활비를 보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명절에 내 아이들을 데리고 인사차 들리면 꼭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내 아이들에게 세배 돈을 챙겨 주시던 외숙모, 그런 외숙모는 내가 어릴 때는 나에게, 이제는 내 아이에게까지 베풀며 나에게는 너무도 잘 하신 분이었다.
외숙모에게 가장 큰 일은 조상 제사 모시는 일이었다. 제삿날이 오면 제물은 손수 준비를 하셨지만 정작 제사를 지낼 제주가 없었다. 제사가 몇 개나 되었는지 내가 가늠을 할 수는 없으나 일년에 몇 번은 챙겨야 하는 제사인데 술을 따르고 절을 올릴 자식이 없는 것이다. 양자 온 아들은 죽었고 그 손자며느리는 발걸음을 끊었으니 혼자서 밥만 올리는 제사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내 외조부모님 제사에는 딸과 사위가 가서 같이 모시는 경우였지만 혼자서 그냥 밥과 술을 올리고 촛불 켜 두고 시간이 지나면 상을 물리기도 했다고 하였다.
사람 나이 일흔이 넘으면 이제 살만큼 살았고 겪을 만큼 견딘 나이이다. 이제는 남은 여생을 정리하고 생의 보람을 추억하고 살 나이인데 일흔을 넘긴 외숙모에게는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여생에는 보람도 희망도 없었다. 그리고 남은 것도 없었다. 혼자 제사를 모시는 날에는 고아로 사는 몬지 아제의 두 아들이 기별을 듣고 찾아와 주곤 하였다. 그래도 그들은 남자라고 술도 따르고 절도 하고 외숙모가 가르치는 데로 제사의 예법대로 조상을 모셨다. 장희형이 죽자 처음 몇 년은 찾아와 주던 손자며느리도 이제는 영영 기별조차 없는 남남이 되었다. 두 사람 다 청상에 과부 된 이력이 있어 의지하며 잘 살 것 같은데도 서로에게 기대하였던 몫이 있어 그런지 살면서 쌓인 원한이 있어 그런지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몇 해 전 외숙모는 내 어머니와 이모들을 불러 대동하고 양자를 파기하겠노라고 어느 날 진동면 사무소로 갔다. 당사자인 외숙모가 강경하게 나서는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일도 그 동안 수 차례 의논도 하였지만 이번에는 정작 결말로 내자고 모였다. 허나 내 어머니는 그럴 수가 없었다. 건너 산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자식을 내려다보고 계실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당신이 생전에 정하였던 일을 자식이 나서서 그것도 딸자식이 나서서 그르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외가 집안에서 제일 어른이 된 내 어머니의 반대에 그날도 외숙모는 뜻을 못 이루고 말았다.
혼자 사는 외숙모에게 유일한 낙은 천주님께 기도하는 일과 성당에 미사 올리는 일이었다. 언제나 성당 제일 먼저 도착하여 맨 앞자리가 외숙모 자리였고 나이 드신 신부님과 가장 잘 상대가 잘 되는 사람도 외숙모였다. 기도하고 매달리는 모습이 얼마나 애절하고 지극 정성인지 마을 사람들도 성당 사람들도 그 행동과 마음에 탄복을 하였다.
외숙모가 영세를 받는 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조동마을 성당을 방문하였다. 미리 사 둔 성모상과 묵주 반지를 선물로 드렸더니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주중에도 전화를 드려 안부를 묻곤 하는데 말씀에는 오히려 내 가족 안부를 먼저 묻곤 하셨다. 허나 연세가 있고 지병이 있어 약으로 연명하는 목숨이라 그리 길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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