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수필(校洞隨筆) / 청송은 굽어도 7
|
| |
|
|
| |
| |
| |
7.
내 외할머니는 한 많은 인생에 뭐 한다고 그리 오래 사셨는지 알 수가 없다.
웬만큼만 사셨으면 내가 이런 말은 안 할 것인데 외할아버지께서는 일흔 두 살에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두 분이 사용할 비석과 상석을 만들어서 아직 외할아버지 무덤 앞에 놓지 못하고 외할머니 돌아가시면 놓겠다고 준비하여 두었는데 그 비석이 다 섞어서 어디에 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 오래 사셨다.
외할머니께서 봄이면 고사리 캔다는 핑계로 외할아버지 무덤을 찾아가셔서 "이녁 날 어서 댈고 가소!" 하며 곡을 하고 내려오신다고 조동마을 라디오 방송에 종종 나오곤 했다는데 여든을 넘기고 아흔을 넘기고 그리고 다섯 해를 더 사셨으니 천수를 넘긴 셈이다.
외할아버지 살아 생전에 추수를 하여 방앗간에 나락가마니를 맡기면 할머니는 쌀로 돈을 사는 일을 하셨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할머니께서는 쌀 몇 말을 외할아버지 몰래 따로 방앗간에 숨기셨다. 다른 용도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못사는 딸자식 양식이라도 보태어 줄 셈으로 그러하셨다. 외할아버지가 아시면 출가외인 제 살림하는 아이들 도와줄 버릇 들면 매년 도와주어야 하니 그런 사정은 씨도 안 먹히는 일인지라 외할머니께서 몰래 숨긴 쌀을 이모 집으로 보내곤 하셨다.
작고 꼬부랑 할머니이신 외할머니께서는 항상 일에는 서두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구들이 외할머니 등살에 느긋하게 앉아 있질 못했다. 장을 보러 갈 사람은 일찍 장으로 나서야 하고, 밭을 맬 사람은 어서 집을 떠나야 외할머니의 채근을 면하는 일이었다. 잡수시는 밥에 국이나 물은 거의 안 드시고 밥과 찬만 드셨다. 그래서 우리는 할머니를 염소 같다고 했다. 염소는 물을 싫어하고 물을 마시는 법이 없다. 염소는 똥도 구슬 같은 마른 똥을 눈다. 그리고 언제나 조동마을 라디오이셨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잘 하시고 많은지 잠시도 입이 쉴 여가가 없는 분이셨다. 외할머니께서 저의 집을 오시거나 딸들 집에 가실 적에도 이틀을 자고 가시는 법이 없었다. 하루 밤 주무시고 나면 별로 할 일도 없는 몸이지만 아침을 드시기가 바쁘게 떠나셨다. 외가에 댕기로 온 사람도 돌아가는 날이 밝으면 아침 먹는 배가 채 꺼지기도 전에 떠나라고 채근을 하셨다. 그런 성격이 생활에서 익힌 것인지 모르나 아무래도 외할머니의 천성이지 싶다.
매년 몸이면 고부랑 허리로 뒷산으로 동산으로 깨사리(고사리)를 꺾어서 다발로 엮어 딸들에게 보내 주시더니만 어느 해부터 기력이 쇠잔해 지셨다. 그러나 노망이 들어서 딴소리를 하시거나 변소 가시는 일을 못하시지는 않았다. 다만 너무 소식을 하여 기력이 거의 소진되어서 결국은 마른 북어처럼 한 조각 마른 몸이 되셨다. 그렇다고 어디 아픈 곳이 없었다. 건강한 죽음이 무엇인지 우리 외할머니를 보고 알았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병들어 죽는다고 하는데 외할머니께서는 늙어서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편찮으시지 않고 다만 기력이 없어 돌아가셨다. 미국의 스코트 니어링 부부의 '아름다운 삶 그리고 죽음'이라는 책을 보면 니어링이 백살이 되던 해 마침내 기력이 없어지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했듯이 바로 외할머니께서 그런 죽음을 맞이하셨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 외가의 초가에 외할머니를 뵈러갔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도 또렸 하였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면 아무 곳도 아픈 곳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운명을 하셨다.
정말로 이를 두고 호상이라고 했다. 자식이라고는 딸들이지만 비록 어미가 죽었다는데 울기야 하였지만 헛 울음이었지 싶다. 슬픔은 다만 천륜이 닿은 모녀간이기에 울음이 나왔지 어디 원통하고 애통하고 한이 되지는 않았다.
외숙모는 장례칠 일이 걱정이 되었다.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며느리와 손자가 있지만 손발 벗고 나서서 일을 처리할 마땅한 상주가 없었다. 나는 외손자이지만 장손으로써 아우들에게 여러 가지 준비를 시켰다. 사위들이 있긴 해도 어디 사위도 일흔이 가까운 노인들인지라 장례에 일꾼이 되질 못했다. 우리 형제들은 마당에 천막을 치고 일꾼을 사고 문상객을 받았다. 그리고 십시일반으로 부조를 받아 삼일장을 보란 듯이 장례를 치렀다. 외숙모는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두고두고 감사하다고 하였다.
정말로 호상이 있다면 이를 두고 호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육이오 동란때 아들 잃고 손자 잃고 그후에 비록 외할아버지와 양손자를 잃긴 했지만 사위 딸 모두 살아있었고 아흔을 넘긴 나이에 저승으로 떠났으니 모두들 웃는 얼굴로 상을 치렀다.
외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자 이제는 외숙모 혼자 사는 집이 되었다.
외숙모는 이제 바닷가 어장에 날품을 파는 일을 가시는 일도 못 나가게 되었다. 외할머니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할머니 식사도 챙겨드려야 하고 어른이 계시는 이일 저일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혼자가 되고나자 마음이 놓치셨는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니던 어장에 날품 일도 아니 가시고 텃밭에 고추나 마늘농사나 지으시며 사셨다.
그렇다고 돈이 없이 살수는 없었다. 시골에도 농사를 제대로 짓지 않으면 단돈 만원도 생기는 법이 없으니 생계가 난감하게 되었다.
논이 몇 마지기는 있었으니 이모들이 모여 상의를 했다. 외숙모 혼자서 먹을 식량을 할 서너 마지기는 남에게 농사를 짓게 하여 식량으로 삼고 나머지 논을 이모에게 넘기고 외숙모님 사시는 동안 생활비를 책임지기로 합의를 했다.
참으로 경이로운 합의이다. 논 값이 얼마인지도 따지지 말고 외숙모가 얼마나 오래 살지도 따지지 말자. 하여간 십년을 살건 이십 년을 살건 사는 동안 생활비를 부담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건 경제논리로 해석하면 놀음에 해당한다. 하여간 합의가 되어서 이모는 매달 일정액을 외숙모에게 보내고 논은 이모 앞으로 등기를 마쳤다.
어찌 보면 이모는 외숙모가 일찍 돌아가시길 바라는 꼴이 되었지만 막내 이모는 외숙모와 나이 차이가 많으니 딸 같은 사이였고 어릴 적에 외숙모가 키우다시피 한 사이이니 그런 계산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내가 사는 고장의 산줄기를 타는 산행을 자주 한다.
어느 초가을 나는 마산 무학산에서 출발하여 대한금속 빨간 버스가 넘어 다니던 동정고개를 넘어 산길을 걸어서 외가의 뒷산 수리봉을 따라 내려가니 어릴 적 내가 낫치기 고상받기하던 무덤을 지나서 외할아버지 무덤을 지나게 되었다. 외할아버지 무덤은 반듯하게 잔디가 잘 살아 제법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혼자 생각에 누가 와서 돌보는 것일까? 늙으신 외숙모가 벌초를 오실 리는 없고, 나중에 외숙모를 만나 여쭤드니 몬지 아재 아들이 해마다 외할아버지 산소 벌초를 해 준다는 것이었다. 외숙모에게는 몬지 아재가 살았을 적에는 몬지 아재의 도움을 받드니 대를 이어서 이제는 아재의 아들의 도움을 받구나 싶어 새삼 몬지 아재에 대한 그리움이 저 가을 하늘의 뜬구름 한 조각처럼 아름답고 그리운 시간이었다.
나는 산을 내려가는 길은 오래되었지만 익숙하여 쉽게 외가를 찾아 들어섰다. 배낭을 맨 등산복 차림의 나를 보자 외숙모는 놀라기도 했지만 반가워하였다. 갑자기 온 나에게 자리를 권하고 바삐 부엌에서 무언가를 장만하여 들고 나왔다. 조동마을은 갯가인지라 싱싱한 회 한 접시와 소주를 한 병을 차려 들고 나왔다. 시장한 나는 맛있게 먹으면서 어디서 이런 음식이 나왔냐고 물으니 오늘 꼭 누군가 사람이 올 것 같아 고현 뱃머리에 가서 생선을 사 두고는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소주 반병을 마실 즈음에 외숙모는 나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고 했다.
"내가 들은 이바군데 양자 한 호적을 파 삐는 수가 있다는데 조카 니가 좀 알아 봐 줄래?"
이러는 거였다. 양자를 판다는 말은 죽은 장희형의 양자 입적을 호적에서 다시 제거하자는 뜻이었다.
그런 외숙모의 심정은 어머니에게서 듣기는 했지만, 또 부산에 혼자 사는 죽은 장희형의 형수와 외숙모와 사이도 나쁜 지라 무슨 말뜻인지를 알았다.
"너거 실안 고모도 양자를 했다가 팠다는데 함 알아봐라. 니가 좀 그 일을 처리해 주면 좋겠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심더. 처음 듣는 일이라 방법을 알아보겠으나 그 일을 처리하는 것은 제가 못 하겠습니더. 내 사정이 이 집안에 외장손이고, 내가 이런 일에 나서면 마치 얼마 남지도 않은 재산이지만 재산 문제도 있고 외할아버지께서 하신 일이라 어머니와도 상의를 해야 할 일이니 그리 이해를 하이소."
외숙모는 이런 생각을 하신 것이다. 이제 자기 죽고 나면, 남은 재산이 미운 며느리에게 상속이 될 터이니 그것이 못 마땅한 것이었다. 양자만 파기하면 재산권은 전적으로 외숙모 마음대로 처분할 일이지만 당장 어떻게 할 일은 아니지만,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 심사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물론 실안 고모님께 여쭤는 보았지만 그렇다고 사정을 알리고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외숙모에게는 이렇게 말하였다.
"실안 고모님도 양자를 했지만 백골 양자로 삼는다며 양자를 파내지는 않았다고 합디더. 그래서 잘 모릅디더."
어머니가 아시면 돌아가신 어른께서 하신 일을 이제 늙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판에 양자를 파기한다는 것은 펄 펄 뛰실 일이기에 나는 어머니에게도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사천의 두칠이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