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수필(校洞隨筆) / 청송은 굽어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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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소주만 하루에 반되씩 드신 내 친할아버지께서는 일흔 두 살에 돌아가셨는데, 다섯 살 아래이신 외할아버지께서도 막걸리만 드셨는데 같은 연세에 돌아가셨다. 내 친 할아버지께서는 평생 선비 노릇을 하면 사셨다. 갓 쓰고 허리춤에 안경집 불알 통처럼 덜렁 덜렁 달고서 지팡이 하나에 경로당에 나서시면, 술친구 불러서 소주 마시는 일로 소일하시다 술값은 홀로 다 부담하시며 사셨다. 어느 날 별로 앓지도 않고 자리에 눕자 사흘만에 말문 닫고 이틀 후에 세상을 하직하신 죽음에 복이 많은 복 노인이셨다.
반면에 내 외할아버지께서는 살아 생전 그저 농사일로 한평생 편할 날이 없으신 분이셨다. 막걸리는 농사에 지치시면 마시는 음료였고, 곰방대 풍년초 담배는 일년 열두 달 담뱃대 허리에 끼고 다니셨다. 그런 외할아버지께서 연로하시자 병이 나셨고 수술도 못할 정도로 악화되어 세상을 떠시고 말았다.
외할아버지께서 추석을 이틀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내일 모래가 추석명절이니 사람들은 명절 제사를 지내고자 문상 오는 일을 꺼리어 초상칠 일이 난감하였다. 삼일장을 치자니 추석날이라 어쩔 수 없이 7일장을 치르기로 하였다.
시신에 염을 하고 사랑방 윗목에 모셨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며칠 내리는 날이 계속되어 방에는 불을 아니 넣을 수 없었다. 삼일이 지나니 향불을 피워도 시신에서 나는 냄새가 방을 진동했다. 시신을 입관할 때 미리 비닐을 몇 겹을 쌓지만, 9월 날씨에 삼일을 넘기니 집안에 냄새로 견딜 일이 아니었다. 가족들은 별 도리가 없었다. 지금 같으면 병원 영안실에다 냉동처리를 하니 아무 일도 아닌 일인데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사방팔방에 향불을 피워 냄새를 제거했다. 방을 지키는 상주와 백관 그리고 딸들의 코는 마비가 되었다.
비는 어찌 그리도 몇 일을 퍼 붙드니 팔월 추석이 지나고 7일만에 장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상여가 놓이는 상여 방틀에 관을 운반하다 일이 터지고 말았다. 무명 천으로 끈을 만들어 관을 묶고 한쪽에 삼 인씩 여섯 명이 끈을 잡고 사랑방에서 상여까지 수평을 맞추어 들고 마루로 나서는데,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오면서 관이 기웃하여 관속에 고였던 시신 썩은 물이 마루바닥에 왈칵 솟아지고 말았다. 이를 본 이모들과 외숙모는 그만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외할머니 혼자 얼른 수건을 들고 와서 짚이 썩은 물 같은 검붉은 물을 훔치는데 나는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장희형은 양자로 왔지만 외할아버지에게 아들이 없으니 손자가 상주 노릇을 하였다. 백관들과 작은집 아재들이 운구를 하였다.
꽃상여는 공동 우물 앞 넓은 공터에 마련되어 있었으니 그곳까지 관을 운반해야 했었다. 수평이 맞지 않아 흔들릴 때마다 시신 썩은 물은 길을 따라 흘렀다. 길을 따라 마치 수차가 지나가듯이 관에서는 짙은 물이 흘러내렸고 흐른 곳에 쌀겨를 가마니 채로 풀어서 덮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손자이지만 장희형은 상주노릇을 잘 했다. 외할아버지가 정하신 일대로 대를 이을 양자로 가문의 맥을 이을 수가 있었다. 넷이나 되는 사위들이 나서서 초상은 잘 치렀다.
외할아버지는 외할아버지 갓(산)에 묻히셨다. 꽃상여 앞에서 발인 재를 올렸다. 물고기와 과일 그리고 고기 수육으로 상을 차려 제문을 읽고 상여는 상여꾼들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외할아버지 영정을 모시고 상여 앞에 섰다. 만장 기가 뒤를 따르고 앞소리꾼은 꽹과리를 치며 슬픈 가락을 읊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가지 마소 가지 마소."
"가네 가네 두고 가네, 산천초목 다 두고 가네."
"북망산이 어디든지,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네."
이렇게 앞소리꾼이 앞소리를 하면 상여꾼은 한 구절 한 구절마다 후렴으로 소리를 했다.
"에이호 에이호 에아라 영차 에이호"
그러다 다리를 건넌다던가 오름 길이 나오면 상여는 앞으로 나가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였다.
"저승길이 구만리라, 노자 없어 못 가겠네"
앞소리꾼이 이렇게 노자 돈을 상여에 걸기를 유도하면, 상여꾼들은 한 발짝도 걸어나가지 않고 상여만 어깨로 밀었다 당겼다 했다.
그러면 일가들이나 사위들이 만원 짜리 한 장이나 두 장을 상여에 걸면
"저승길은 구만리 길, 배 삯이나 달아주소."
상여꾼들은 더욱 신이 올라 큰 소리로 후렴을 했다.
"에이호 에이호 에아라 영차 에이호"
남은 가족들이 줄줄이 새끼줄에 돈을 걸어주면 상여는 한동안 신이 나서 떠나갔다.
언제나 근엄하시던 외할아버지, 한번도 웃을 줄을 모르시던 나의 외할아버지께서는 한 많은 한 평생, 삶에 찌들인 인생을 사시다 가셨다. 그러나 나와 장희형은 별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이모들과 외숙모께서는 몇 날 몇 일을 우셨는데, 나는 눈물이 나질 않아서 울긴 울어야 하는데 어찌 울어야 할지 난감했었다. 눈물이 아니 흘러나와 미안했었다.
마산에 우리 집을 살 때 아버지께서 돈이 없어 빚으로 산 집을 외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돈을 내어 주셨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시골 친척집에 돈을 꾸었는데 그 돈의 이자 셈으로 친척집 아이의 하숙을 받았다고 했다.
"울(울타리) 밑 논 서 마지 붙이지 말고 사람 입 하나 덜라고 한다."
사람 입 하나 먹는 양식이 그만큼 된다는 말씀이셨다. 그래서 외할아버지께서는 소를 팔아서 그 빚을 값아 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외할아버지께서는 남자란 모름지기 非一悲非一笑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상여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지 못하고 들길을 따라 산 아래까지 가서는 길도 없는 숲으로 수직 상승을 했다. 산으로 오르는 동안 상여를 수평으로 맞춘다고는 하지만 기울어질 수밖에 없으니 관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는 상여꾼들 옷을 다 젖고도 남았다. 여자들은 상여 따라 오는 일이 아니라고 남자들만 상여를 메고 가는데, 묘 자리에 가니 산길을 따라 온 일꾼들은 천막을 치고 음식준비를 하고 구덩이를 이미 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풍수가 자(방향)를 보고 하관에 참관하지 못하는 띠(나이)를 알려주고 정한 시간에 하관을 하였다. 저 아래로 마산 가는 신작로며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좋은 자리였다.
평생을 기다리던 아들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지만 당신이 소원하신 양손자는 얻어서 마음고생 하나는 덜고 떠나셨다. 주머니에 항상 담배 쌈지와 돈 쌈지를 차고 다니시던 외할아버지, 꼭 하실 말씀만 하시지 쉰 소리, 헛소리, 농 한번 안 하신 외할아버지 모습을 내가 많이 닮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즈음에 와서 외할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 나는 친가의 4대 장손인데도 불구하고 친할아버지도 보다 그렇게도 엄하시던 외할아버지가 이제와 더 보고 싶은 까닭은 내 유년의 세상을 마련해주신 분이시고, 외가의 터전을 일군 분이시고, 내가 그 곳에서 유년을 보낸 까닭이고, 그 분의 삶이 그 시절 가난한 촌부의 한평생을 보여 주신 분이시기 때문이리라. 학문이 높고 삼강오륜을 배운 선배가 아닐망정 농군의 후예로 사신 너무도 평범한 시대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위암 3기로 판명을 받을 즈음에 노구를 이끌고 평생을 아니 오시던 우리 집을 찾아오셔 하루를 유하시고, 부산 막내 이모 댁에서 몇 일을 계시면서 병원 치료를 다니셨다. 이미 시한을 넘기고 가족이나 본인은 체념을 하고 계실 무렵 병원 치료 가는 것을 마다하고 부산 시내 관광을 하셨다. 용두산 공원과 태종대 바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성지곡 유원지를 모시고 갔다. 아마도 외할아버지 평생에 이런 관광을 다니신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셨을 것이다.
그 일을 끝으로 몇 일을 병원에 계시다 조동마을로 옮겨서 숨을 거두셨다. 대를 이어줄 자손이 그토록 갈망하시던 외할아버지께서 당신의 핏줄은 잇지 못하였지만, 당신이 걸어온 길처럼 양자들 두셨고, 저 세상에서 먼저 간 외아들 상조의 마중을 받았을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을 어떤 이는 한 사람 한 사람 귀하게 때어난 존재인데 어찌 간단히 여길 일이냐고 하는 이도 있다만, 결국 우리 모두 다른 길을 걸어가지만 큰 궤적으로 보면, 사람 사는 길이란 그게 그 길이고 그 일이 그 일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살며 각자의 꿈을 꾸고 살지만 삶의 목적은 결과가 아닐 것이다. 다만 결과를 추구할 뿐이지 결과는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다 버리고 다 허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때문이다. 우린 결과를 위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우리가 갖는 것은, 영위하는 것은 그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과정만이 우리가 향유하는 가치가 않을까?
먼저 떠난 분들의 삶도 우리 조상들의 삶도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었는가?
남겨 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배우고 느낄 따름이다. 무얼 남겨 주었다고 하드라도 우리가 배우고 느끼지 못하면 남긴 것도 배울 것도 없는 일이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일생동안 오직 치열한 인간 생존의 길을 걸었을 뿐이셨고, 우리도 우리의 치열한 삶을 살고 있을 따름이다.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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