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수필

두칠이



조동수필(校洞隨筆) / 청송은 굽어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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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지 아제가 마산으로 온다는 소식을 받고 나는 아제를 만나러 장희형을 따라 시외버스 터미널에 갔다. 대한금속 빨간 버스에서 아제는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그러나 항상 그러했듯이 좀 어눌한 말투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반가워했다.
마산 신포동은 시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차량의 이동이 많은 역사와 항만이 인접한 곳이기도 했다. 근처에는 항구에서 수송해온 무연탄으로 연탄을 찍는 공장들이 있었고, 3.15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회관건물과 기념탑이 있었다. 3.15회관은 정부에서 지었으나 수익사업으로 영화관이었고 3.15의거 기념탑으로 가는 도로위로 두 개의 철교가 지나고 있었다. 하나는 구마산역에서 신마산역으로 연결되는 철로이고 다른 하나는 북마산역에서 신마산역으로 연결되는 철로가 나란히 신포동을 지나고 있었다. 이 세 개의 역들은 다 사라지고 지금은 없다.

몬지 아제를 데리고 당시에는 마산의 명물인 3.15의거 기념탑을 구경하고자 철교 밑을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철교 아래로 도로가 지나고 있어 철로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열차가 달려와도 기차 소리만 들렸다. 알다시피 지금처럼 디젤 열차가 아니라 미카라고 이름을 가진 석탄을 연료로 달리는 시커먼 증기기관차였다.
기차가 다리근처를 지나갈 무렵이면 기관사는 기적을 울리었다. 우리 일행은 무심코 그 아래를 지나갈 때였다. 기적소리와 함께 열차가 철교 위를 지나가는 소리는 정말 장관이지 않는가? 그 순간 몬지 아제가 바람같이 사라졌다. 아제는 어느새 철둑의 제방아래에 혼자 머리를 박고는 숨어있었다. 영문을 모른 우리들은 급히 아제를 일으켰으나 아제는 기차 소리가 멀리 사라지어 들리지 않을 때까지 눈은 감은 채 머리를 들지 못했다.
우린 아제의 겁에 질린 얼굴을 보고는 박장대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아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회지에 온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기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시골에서 보았던 것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전부인 아제에게 기차란 괴물이었다. 기차가 머리 위 철교를 지나면서 기적을 울리는 것을 태어나 처음 본다는 상상을 해 보라. 아제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린 상식으로 알고 배웠기에 또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마주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아제는 우리의 설명을 들어도 믿지를 않았다. 하여간 그에게 도회지는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을 본 것이었다.
아제와 다음으로 간 곳은 영화관이었다. 영화 제목은 기억이 없지만 2시간동안 아제는 무슨 영문인지 말 한마디하지 않고 다 보고 나서 나에게 물었다.
"애나로(정말로) 사람이 죽는 건 아이제? 부로(거짓으로) 그러는 기제?"
그는 영화를 연극 보듯이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엄청 머리를 써 상상을 한 질문이었다. 활동사진이란 것, 영화의 원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가 그래도 영화 속의 사람이 진짜로 죽이지 않았을 거라고 이해하는 것은 세상에는 법과 질서가 있다는 것은 믿고 있다는 셈이다.
시골에서는 꿩과 노루를 잡을 수 있고, 물고기를 잡고, 집을 짓고, 지게를 지고, 쟁기를 부르며, 소를 몰던 아제. 가마니를 짜고, 똥장군을 지고, 상여를 맬 줄 아는 아제가 도회지에 오니 내가 선생이었고 아제는 어린아이였다. 나는 그런 아제를 데리고 마산시내를 구경 시켜는 재미가 있었다. 비록 내가 중학생정도였지만 아제에게 문화적인 것과 문명에 대한 경험을 가능하면 많이 시켜주고 싶었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텔레비전이란 것은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날 기차에 대한 이해는 결국 시킬 수 없었다. 다시는 철교 근처에 안 갈려고 했고, 보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영화에 대한 이해도 시킬 수가 없었다. 다만 영화는 무척 재미있었다는 평을 한 것이 전부였다. 내 기억으로 아제는 다시는 조동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다시는 무서운 괴물이 사는 도회지가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소먹이는 일이 아이들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하루 내내 소와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봄에는 소가 들일을 하기에 낮에는 논 밭갈이 일을 했다. 그러나 나머지 철에는 소를 먹이는 아이와 노는 시간이 길었다.
나는 외가 소에 대한 여러 기억이 있고 소의 얼굴이 또렷이 기억되기도 한다. 소 얼굴들이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뿔 모양으로 우리 소와 남의 소를 구별하지만 나중에는 덩치나 털 색깔이나 엉덩이 모양으로도 알 수 있었다. 농사를 짓는 시골집에서는 주로 암소를 먹였다(키웠다). 조동마을에서는 짐승 키우는 일을 먹인다고 하고, 쌀을 시장에다 파는 일은 돈을 산다고 했다.
황소가 잘 자라고 값도 나가지만 키우는 일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은 주로 암소를 키웠다. 혹 황소를 먹이는 집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와 어울리지 못했다. 암소 노는 데 황소가 오면 암소들이 먹이질 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하고 황소는 아무 암소나 보면 그냥 엉덩이에 타고 올라 어린 암소 허리를 절단 내는 일이기에 그러하고 또 황소는 화가 나면 아이들을 떠 받아버리기도 하기에 황소를 먹이는 아이들은 천변이나 밭둑으로 따로 소를 몰고 가야만 했다.

조동마을 동구밖 길을 들어와서 마을 앞 농노를 따라 마을 어귀를 뒤돌아 나가면 마을의 마지막 오두막을 만나고 그 다음부터는 산기슭의 밭 자락이 연이어져 있었다. 그 첫 밭은 감나무 밭이었다. 아이들은 소를 몰고 산에서 내려오면 집으로 바로 가기도 하지만 시간이 이르면 이 감나무 밭에다 소를 메어 놓고는 한바탕 술래잡기를 한다든지 남의 밭고랑을 뒤지어 먹거리를 구해 먹고 노는 곳이었다.
그날은 아마도 만희형이 그랬지 싶다. 형의 소가 그날 소몰이에 따라 내려오질 않아서 결국 형은 혼자서 소를 찾으러 가서 찾아왔었다. 우리가 그 감나무 밭에서 놀고 있었는데 화가 난 형은 소를 끌고 감나무 밭으로 들어왔다. 형은 감나무 기둥에다 소코뚜레를 한치의 여유도 없이 다잡아 메었다. 소의 코가 나무 기둥과 하나로 붙어버렸다. 형은 대나무 가지를 꺾어서는 소를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면서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가 나무 기둥에 묶인 상태에서는 뒷다리로 매를 피하는 거리가 고만 고만하니 소는 진퇴양난이 되었다. 소는 회초리를 맞고는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형은 인정사정이 없이 소에게 매타작을 하였다. 마침내 소의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되더니 그 순한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나는 소의 애절한 눈망울 보는 순간 어쩜 저리도 곱고 순한 눈이 어디 있을까? 사람이 어찌 소보다 순하고 여리단 말인가? 그 큰 덩치의 소가 작은아이에게 애원하는 울음소리와 눈물을 보는 순간 나는 차마 말리지는 못하였지만 불쌍한 소가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말 못하는 소, 오직 일만하고 주인 말만 듣는 소, 순하고 좋은 일만 해주는 소를 저리도 학대를 하는 것일까? 코뚜레에 매달린 소의 코는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였다. 매를 맞는 동안 얼마나 몸을 피해 되었는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윤희형은 소에게 분풀이를 다했는지 소를 풀어주자 소는 기가 죽어서 고개를 떨구고는 그저 주인의 눈만 살피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말 못하는 소이지만 소를 학대하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인데 아무 생각 없이 짐승이라고 저리도 학대를 하는 걸까. 나는 개고기도 먹고 소고기도 먹지만 개고기를 금기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소고기를 먹지 않아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어머니가 해 준 이런 이야기가 있다. 소가 호랑이를 이긴다는 이야기이다. 옛날에 어느 집에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러 왔다. 이 때 소가 호랑이 앞에 나타났다. 소는 주인을 뒤 다리 사이에 끼워 보호를 하면서 뿔로 호랑이와 싸웠다. 주인은 소가 잘 싸운다고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마침내 소는 호랑이를 물리치고 주인을 구한 이야기이다. 그 반대로 소가 주인을 죽인 이야기인데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주인은 호랑이를 보자 겁이 나서 소를 버리고 혼자 도망을 쳤다. 주인은 집에 돌아와서 가뿐 호흡을 가다듬고 있으니 성난 소가 따라 와서는 주인을 단숨에 뿔로 받아서 죽이고는 소도 기력이 빠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주인이 버리고 간 소는 사력을 다해 호랑이를 죽이고는 자기를 버리고 간 주인을 찾아온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옛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지만 우리 생활에서 소는 가족과 같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나는 소등에 타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어릴 적 이야기지만 외할아버지 때문에 한번도 타 보지 못하고 말았다. 외할아버지는 사람이 소를 타면 소등이 내려앉아서 소가 병신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어린 나를 못 태울 소가 아닌 건 확연한 사실인데 외할아버지가 무서워 끝내 해보지 못한 일이 되고 말았다. 사람이 소를 타는 일은 그림에도 나오고 이야기에도 나오는 일인데도 외할아버지께서는 절대로 못하게 하셨고 나에게는 그토록 무서운 분이셨다.
소는 새끼를 일년에 한번씩 낳았다. 소가 새끼를 낳은 광경을 직접 보기도 했다. 소는 선 채로 송아지를 낳았다. 그러니 송아지는 어미 배속에서 땅으로 뚝 떨어지는 것이다. 떨어진 송아지에 쌓인 우윳빛 망을 어미 소가 혀로 걷어내고는 송아지의 몸을 입으로 핥아서 닦는다. 송아지는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것이다. 떨어진 태는 어미가 먹었다. 그런 후 외할머니께서는 작은 밥상에 물과 쌀을 마구간 앞에 놓았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대문에 금줄을 매달지만 송아지가 태어나면 마구간에다 금줄을 매었다. 송아지가 서너 달 후 젖을 때면 우시장에 팔기도 하고, 소가 없는 집에 배내기로 주어서 소를 키우기도 했다. 배내기란 남의 소를 빌려다 키워서 첫 송아지를 낳으면 키운 사람이 갖고 어미는 주인에게 돌려주는 우리네 풍습이었다. 주인은 소를 키워서 팔 수가 있고 키운 사람은 송아지를 얻을 수 있은 상부상조의 일이었다.

그 시절 우리 농촌의 논농사 일은 소가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논을 쟁기로 갈고 물을 대고 써레로 흙을 고르는 일은 소를 부려서 했다. 이런 일은 소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소를 키우는 일은 중요한 농사일이 되었다.
소는 사철 여물을 먹었다. 여물은 짚을 날 것으로 먹이는 것이 아니라 작두로 짚을 자르고 콩깍지와 쌀겨를 넣고 소죽솥에 넣고는 끓여서 먹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소죽을 몇 번을 뒤적여서 잘 끓여서는 마구간의 여물통에 옮기면 소는 김이 나는 소죽을 입으로 잘 뒤적여 식혀서 천천히 먹었다. 소죽만 먹는 것은 아니고 날 것으로 던져 준 짚도 큰 입을 좌우로 돌리면서 어썩 어썩 씹어먹었다. 그리고는 내내 되새김질을 하였다.
소는 여간해서 우는 법이 없다. 어미가 새끼를 찾을 때나 병이 들어 죽을 지경이 되면 울지라도 여간 일에 우는 가축이 아니다. 여름이면 낮에는 쇠파리 떼와 밤이면 모기와의 전쟁을 해야하는 소이지만 그까짓 일로 울지는 않는다.
쇠파리나 모기를 쫓는 유일한 장비는 꼬리이다. 꼬리로 좌우 상하를 이리저리 돌리며 방어를 하지만 더위와 곤충과의 싸움은 실로 소에게는 여름은 지옥이었다. 또 하나 소를 괴롭히는 것은 '가분 다리'라는 아주까리(피마자) 씨앗처럼 생긴 곤충이 있다. 이 녀석은 소의 등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다. 소 스스로 '가분 다리'를 물리치는 방법이 없으니 사람이 자주 잡아주면 되는 일이다. '가분 다리'는 피를 먹고는 똥은 싸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나 어른들은 그렇게 말을 하곤 했다.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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