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무반 탄불 당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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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 피우길 좋아한다. 어릴 적 가마솥 걸고 소죽 끊인 일부터 시작하여 연탄불 살리 기 그리고 산아래 눈밭에서 모닥불 지피기까지 불 살리는데 일가견이 있다. 화톳불을 피우 면 그 불꽃 속에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심을 보노라면 마치 황홀경에서 춤을 추는 여흥을 보는 감회가 일곤 했다. 그래서 작은 모닥불을 피워 올리는 일은 누구보다도 잘 일으킨다. 우리말에 불과 여자는 건드리면 간다고 한다. 가만히 두고 바라보아야지 자꾸 들 쑤시면 작은 불씨도 꺼지고, 오던 여자가 도망을 간다는 말이다. 어쩜 그리도 불과 여자의 심리와 맞는지 혼자 되 내보아도 무릎을 칠 일이다. 그럼 나는 불을 잘 지 피우니 여자도 잘 꼬신 단 말인가? 모를 일이다. 불은 잘 지 피워도 여자를 잘 단속하고 곁에 붙들어두는 일은 아 닌 것도 같다. 어찌되었거나 이번에는 이 불에 관련된 이야기 하나를 해 보기로 하겠다.
그 시절 겨울 내무반에는 석탄을 연료로 난로를 피웠다. 일명 뻬치카 난로였다. 탄가루를 황토와 물 반죽을 하여 물 반, 탄 반으로 난로통 곁에 개어놓고 탄이 제일 고조로 불이 올 라설 때 불 속 탄을 잘게 깨어서 그 활활 타오르는 불 속으로 물 반죽한 탄을 솟아 부여 놓 는다. 물과 섞은 탄이라 불심이 약하거나 가는 불이면 그 물 세례에 여지없이 꺼지고 마는 것이 바로 뻬치카 난로 불이다. 그러니 이건 숙달된 조교가 아니면 틀림없이 꺼지는 불장난 같은 불놀이가 이 난로관리 일이다. 그런데 한번 불이 꺼지면 이 불씨를 올리는 일이 여간 아니다. 생각해보시라 물 탄을 올 려서 그 탄이 다시 말라 불이 붙을라치면 그 불심이 얼마나 강해야 하겠는가? 그러다 만약 불이 꺼지면 각목인 火木 한 아름은 족히 필요한 일인지라 불을 꺼트린다면 이는 내무반 전 체가 곡소리 날 일이다. 내무반장님을 떨게 만들었으니 그리고 모두가 밤새 꽁꽁 얼 일이니 말이다. 신병 훈련소 내무반에도 바로 그 뻬치카 난로가 사용되었다. 그 시절 육군의 전 부대 내 무반은 바로 이 뻬치카 난로였지 싶다. 그 훈련소 탄 당번으로 내가 임명이 된 것이다. 이 일도 그 중에서 끗발이 있어야 맡을 수 있는 직책이었다. 그 즈음에 내 고교 친구가 부대 보안대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훈련받는다고 면회를 다녀갔다. 면회란 게 정문 면회소 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시간을 잠깐 내어 저녁시간에 우리 내무반으로 와서는 어깨 한번 쳐주고 내무반장에게 친구라고 소개한 일이 전부였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가 가고 난 후에 내무반장은 날 탄 당번으로 임명시켜주었다. 그날부터 난 모든 훈련이 면제되는 혜택인지 기회인지 그냥 다들 교장으로 훈련 가고 나면 내무반에서 탄불을 지키는 일을 맡게 되었다. 훈련소 훈련병치고는 만고 땡인 직책이었다. 하루종일 빈 내무반에서 뒹굴뒹굴 지내다 그 Px의 단팥빵 생각이 나면 재빨리 사와 불 뚜 껑에 올려서 노릿노릿 빵 껍질을 구워서 먹었다. 드디어 짠밥도 맛이 없어 안 먹고 그러다 이제 먹고 노니 배탈까지 생긴 것이다. 알고 보 니 이 일이 특가병이고 혜택받은 직책이 아니라 바로 누릿팅팅하게 얼굴이 붓고 소화불량까 지 걸리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 탄 당번 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마침내 탄불을 꺼뜨리는 일을 만나게 되었다. 탄 당번이 하루종일 하는 일이 오 직 탄불 지키며 살리는 일인데 불씨를 죽였으니 얼마나 걱정이 되고 마음을 조였을까? 자꾸 만 힘이 없어 죽어 들어가는 탄불을 붙들고 갖은 노력과 정성을 들였건만 한번 사그라드는 불은 다시 피워 올라주질 않았다. 그러다 오후 5시가 되자 하늘같은 내무반장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로 탄통을 집어 던져 버리고 말았다. 두말하면 잔소리고 얼마나 혼이 났는지 하루종일 겨울 바람맞고 야외교장에서 훈련받고 돌아온 전우들에게도 얼마나 미안한지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따름이었다. 내무 반장은 나보다도 더 이 뻬치카 불 피우는데 선수였다. 각목 불쏘시개를 집어넣고 불을 활활 타워 각목들이 숯이 되도록 한 후 그 숯 위로 물 탄을 한 통 집어넣고 그 속에서 불씨가 다 시 살아나도록 기다리는 것이었다. 물 탄은 점점 불기운에 마르고 까만 석탄에 불이 엉겨붙 어 뻬치카 불은 그렇게 다시 살아나 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탄 당번은 교체되고 말았다. 그 동안 모두들 얼마나 날 부러워하면 한편 으로 시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놈들아 아니해보면 모른다. 그 일이 얼마나 고달픈 일 인지 차라리 찬바람 같이 맞고, 구보하고, 기합 받고, 군가 부르며, 구령 맞추며, 훈련병이 훈련받는 편이 훨씬 나은 일이라고 내 해보고서 알았다. 세상의 일들은 대개 다 그러할 것이다. 마치 남 보기에 좋은 일 같은 것도 실상을 알고 겪어보면 그렇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의 직업에 부러워 할 것도 내 일에 불만할 일도 없는 게 이 세상의 일이고 이치인 것이다.
그리나 저러나 불을 지피는 일만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내 외할아버지의 화롯불을 끼 고 앉아서 굳은 찰떡을 구워먹는 일도 즐겁고, 추운 겨울날 새벽시장에서 드럼깡통 속에 피 어 올린 화톳불도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운 불인가? 어디 가을걷이 끝난 논 가운데 마른 상 수리나무 주어다 짚단을 밑 불로 불 피워보는 일도 즐거운 일인데 해 볼 만한 장소와 기회 가 올려나. 금년 가을에는. 이 사천땅 근처 어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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