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병수첩

두칠이



64. 나와 별업(別業) 김 상사
   
   
 
 이제 두칠이의 졸병수첩도 거의 종착역에 도달할 지점이다. 그 동안 참으로 쉼 없이 적어 내려왔다. 그 3년 동안의 일들을, 근 30년이 되어 가는 지난 세월을 거슬러서 내 젊은 청춘의 강 언덕을 다녀온 기분이다.

 내 인생에 수많은 사람을 인연으로 만나고 헤어지곤 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은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남았다. 대개가 그러하다. 사람과 교우하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천성으로 사랑하는 나의 심성이니 나도 이건 자랑하고 싶다. 허나 나에게 모두가 좋은 기억의 사람만은 아니라고도 말하고 싶다. 그런 몇 안 되는 기억의 사람이 바로 인사계 김 상사였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나는 더러운 기억장치가 여전히 잘 돌아가기에 이름 석자가 이렇게 뚜렷한 걸 어떡하나.. 김ㅊ식 상사, 차마 이름을 부르면 안될까? 그의 명예에 누를 끼칠 일일까? 평생을 군에 몸 바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밝히면 안 된다고 하겠지.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내가 알기엔 그도 직업이었지. 어디 그가 애국심의 발로로 군대생활 보국대하지 않았잖아! 나보다도 좋은 연금제도로 노후를 보낼 사람인데...

 내가 없었던 일로 중상모략을 한다면 이름을 밝히면 안되지. 허나 실명으로 적어야 적어도 이 사실들에 대한 내가 책임을 질 일이 아닌가? 나와 그의 최초의 상면은 바로 이등병 전입병 시절이었고 나와 그의 거래관계가 생긴 것은 방어진 중대에 부대에 포설 할 전선의 도둑질이었다.
 그는 전기시설용 전선을 팔 업체를 나에게 조사해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시절 전령이니 울산의 전업사를 다녀 나무통에 몇 톤씩 감긴 전선을 살 업체를 구해 주었다. 나는 그 전선이 어디서 어떤 용도로 부대에 남겨졌는지는 잘 모른다. 그 시절 우리 부대에 가설하기 위해 들어온 전선일 것이다. 하여튼 나는 업체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 후 그 업체가 그 전선을 싣고 갔었다. 받은 돈은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불법이었다는 것이다. 불법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내 판단의 기준은 법이 도덕의 잣대는 아니다. 분명히 법의 길과 도덕의 길은 다르다는 것이다.

 김 상사 업무는 중대 안 살림을 맡아 사는 사람이었다. 우리 사병들에게 보급되는 모든 군수물자는 그가 관리를 하였다. 그의 부하가 바로 중대 행정요원이었다. 언젠가 이야기했듯이 쌀, 부식, 의복, 침구, 전투장비, 차량, 유류, 탄약, 무기까지 그의 수중에 있었다. 물론 모든 자산의 관리 책임은 지휘관이 중대장이었다. 그러나 중대장이란 직책은 일년에서 일년 반 정도이면 전근을 가고 만다. 그러니 말뚝 하사관 인사계란 직책은 거의 그 부대에서 말뚝을 박고 중대 살림을 삥땅을 치는 것이다.
 우리 동기는 2, 4종 보급계원도 있었다. 그도 장부 조작으로 보급품을 뒤로 빼 내었다. 특히 취사장을 관리하는 1, 3종 계원은 완전히 인사계의 손바닥에서 놀았다. 쌀, 유류는 그야말로 황금덩어리였다. 인사계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야간에 빼돌린 물건을 싣고 갈 차량 운전사였다. 그를 속이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의 손 장부에 그 일들이 꼼꼼히 적혀 있었다. 인사계 몰래 그는 적었다. 그도 인사계를 목조를 일이라도 생기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졸병주제에, 인사계가 중대를 덜어먹든지 말든지 내가 고달파 죽겠는데 이런 일에 신경 쓸 주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 시절에 그런 짓을 하는 인사계가 미웠던 것이 아니라, 나랑은 예시당초부터 사주팔자가 안 맞다고나 할까. 우린 견원지간이었다. 그러나 그가 날 버리지 못한 이유는 날 갈아치우면 내 자리를 무난히 맡아줄 적임자가 없었고 우리 부대 중대장이 날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와 나와의 이별은 실로 사건이었다. 내가 전역을 하니 우리들의 관계도 청산을 해야했었다. 우리 후배가 마련해 준 제대 회식에 불청객 인사계가 어떻게 냄새를 맡고 왔었다. 정자에서 가장 멋진 횟집에서 벌어진 만찬의 밤에 불청객은 왜 왔을까? 아마도 그는 전역 후 내 입이 걱정이 되었지 싶다.
 아무도 나에게 내 동기조차 김 상사의 비리들은 말을 안 해 주었지만 눈치 없는 난 별로 아는 것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일이었는데 도둑놈이 제 발이 저린다고 하듯이 그는 발이 저려서 왔을 것이다.
 그가 와서 내 제대 회식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내 앞에 앉은 그는 나의 한 맺힌 입바른 소리들을 다 들어야 했고 나는 결국 앉은자리에서 그의 상위에 구토를 하고 말았다. 그 날 그 자리에서 마신 술과 음식들 다 가만히 앉아서 그 앞에 토했다. 얼굴한번 안 돌리고 토하니 그는 사색이 되어 사라졌다.

 그 일로 다음날 난 개구리복 입고 전역 신고하는 시간, 내 후배들은 연병장 완전군장으로 돌고 있었다. 어제 밤 일로 그들은 인사계에게 기합을 받고 있었다. 잘 있거라 김 상사야! 굿바이 졸병 후배들아!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악수를 하고 부대를 빠져 나왔다. 그 김 상사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후배들과 동기들은 만나기도 하였고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이 책이 되어 세상에서 빛을 보면 그들은 두칠이를 기억하며 찾아줄 것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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