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방어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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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훈련 받고 울경사로 전입 와서 6개월을 또 훈련받고 방어진 해안으로 이동했던 우리 부대는 방어진 바닷가의 추억을 남기고 다시 내륙 예비대로 이동을 했다. 이동의 주요 목적 은 전투력 향상이었다. 주간에는 잠자고 밤이면 해안 근무를 서는 초병의 체력과 전투력을 훈련으로 향상시키고자 함이 바로 그 이유였다. 나는 방어진 생활이 좋았다. 내륙의 예비대 훈련생활에 비하면 해안의 생활은 임무가 주 어지니 외롭고 무서워도 안정된 생활이었다. 방어진 군대생활이 내 군대생활의 황금기였다. 비록 졸병이었지만 군대 맛을 제대로 익히고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곳이다. 활동이라야 뭐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참들 모시고 동기생들과 의기투합하며 그래도 몇몇 의 졸병을 거느리고 살았다. 우리 중대는 현대조선소 앞 바다부터 현대자동차 앞 간척지까지 우리가 지켰다. 겨울이 지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또 지나고 우린 다음해 이른 봄 다시 연암의 훈련지로 이동 을 준비하였다. 난 그곳이 싫었다. 그곳에서 겪은 졸병시절의 고생을 기억하면 소름이 끼쳤 다. 어느덧 중 고참이 되었고 또 행정반의 병기계원이란 직책도 얻었으니 전처럼 훈련받고 졸병생활로 고생하진 않을 것이다만 방어진이 좋았다.
이동일자와 시간이 정해지고 이 곳에는 새로 투입되는 병력과 떠나는 병력의 임무 인수인 계는 정말 눈부신 환상의 연출이었다. 한 치의 소홀함 느슨함도 없이 우리부대를 접수할 중 대가 6개월의 훈련을 받고 정해진 시간에 각 교대지에서 대기를 했다. 모든 참호와 분초와 소초와 중대에 인수받는 사람과 인계하는 사람이 마주 선다. 그리고 각본에 의해 고정화기 와 탄약, 장비와 가장 중요한 임무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사불란하게 벌어졌다. 그렇다고 뭘 들고 와서 주고받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 다. 개인용 지급 장비는 개인이 소지하고 그 곳에 원천적으로 배치되었던 것들은 그대로 사 용하게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하드웨어적으로 인수 인계하는 것은 없고 소프트웨어적인 것들의 인수인계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계임무인 책임과 권한 이런 것의 인수인계였다.
밤 9시경에 부대와 지역을 접수할 중대는 필요한 행정적 절차를 이행하고 밤 자정을 기해 우리들은 방어진 지역을 빠져 나왔다. 준비된 트럭들이 물건들을 실었고 병력은 이십 리 길 을 걸어서 야간행군으로 예비대로 이동을 마쳤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명령에 죽고 살고 움직인다. 그러니 쥐도 새도 모르게 살짝 야간 도주를 해 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주민들이 모르진 않지만 '밤새 안녕'이란 인사처럼 우리들은 떠나버리는 것이다. 먹고, 자고, 가꾸고, 웃고, 울던 정든 집을 하루 밤에 다 버리고 가는 것이었다. 모두가 한 사람의 열외도 없이 먼저도 나중도 없이 일시에 순시간에 우리들은 오고 가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군인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음날 보면 똑같은 군인들이 그곳에서 어제처럼 꼭 같은 일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보시면 꼭 같은 인간들이 언제나 그곳에서 열 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영원히 죽지 않고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그 해 안초소에는 지금도 어느 군인이 열심히 그 곳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벌써 25년 전에 내가 선 그 자리에 여전히 푸르고 젊은 청년 한사람이 서 있을 것이 아닌가! 그 때나 지금이나 하늘은 푸르고 파도가 일렁이듯이 세상은 하나도 변함이 없이 움직이고 있다.
밤을 도와서 우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시 예비대의 새날을 맞았다. 해가 뜨면 점호 를 취하고 체조를 하고 식사를 했다. 그리고 정해진 훈련을 받고 또 끼니마다 식사를 하고 야간이면 불침범 보초를 서며, 각개전투 분대전투 소대전투 태권도 행군 수색 무장구보 주 야간사격 등 전투에 필요한 훈련을 받았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열심히 받았다. 측정 이란 시험도 통과해야하고 수많은 복무수칙 규율도 외웠다. 나는 명색이 먹물이라도 먹었는 데 어찌 그렇게도 외우기는 낙제인지 정말 난 외우는 시험이면 쪽지에 적어 커닝도 했었다. 외우기는 어렵고 또 외워지지가 않으니 나로써 별 상책이 없었다. 끝까지 다 외우는 수칙 규율은 하나도 없었다. '군기란 군대의 규율이며 사기이다'로 시작하는 군대 용어의 정의하며 보초란 경계란 또 군인복무규율 등등 아, 한도 끝도 없이 외워야하는 것들을 그러니 머리 나쁜 사람은 군대생 활도 어렵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하여튼 그 많은 것들 합창하며 외우고 시험 치고 그러면서 훈련소 같은 예비대를 보냈다.
방어진을 떠나면서 방어진의 추억과 그리움을 적고자 시작한 글이 어찌 한 많은 예비대의 곡소리만 적고 말았다. 방어진을 떠나고 그 후 전역하여 그 방어진 울기 등대 부대 앞에서 한참을 기웃기웃했었다. 민간인 복장으로 부대 정문에서 기웃거리다 결국 들어 가보지 못하 고 말았다. 그곳에 누구 한사람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어야 만나보고 쳐다보고 할 일인데. 지 역이야, 산이야, 들이야, 언덕이야, 건물은 다 눈에 익었건만 아는 이라곤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 언덕과 억새와 바다와 하늘이 보인다. 다 보인다 다 떠오른다. 나의 기억에는 그 옛날 그렇게 외우던 '군인의 길'은 단 한 줄도 기억이 안 되지 만 그 그림 같은 풍경과 추억들은 다 내 가슴에 영롱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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