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어느 해안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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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번에 언급했듯이 해안의 처녀들과 해안 초소의 졸병들에게 그런 그런 사랑들이 있었 다. 풋사랑 같기도 하고 춘향전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랑도 모르는 풋내기들도 있을 것이다만 난 이미 말했듯이 풋사랑도 사랑이고 덜 익은 사랑도 사 랑이고 우리네 삶에 젊은이들에게는 그 정도이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이다. 그런 사랑들이 점점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말썽도 생기고 눈물도 생기고 환희의 기쁨도 얻 었을 것이다. 군바리 군대 시절에 알고 지낸 처녀가 있었다면 군대생활 참 행복하게 한 셈 이다. 정 둘 곳 없었던 시절인데 정 붙일 사람 있고 왕성한 식욕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얻 었고 멀고도 긴 세월을 춘풍의 호시절처럼 보낼 수가 있었으니 과히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졸병시절 보낸 나이가 결혼 적령기가 좀 못되던 시기였다. 일찍 결혼 을 한다면 뭐 입대 전 결혼하여 아내를 고향에 두고 온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가 제대 후 3, 4년을 넘겨야 결혼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군대생활 중에 결혼생활을 할 수도 없으니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 결혼을 하려고 했더라도 현실적으로 어쩔 수가 없는 기간이었다.
어느 날 우리 부대 정문에 해안의 사는 모녀가 찾아왔다. 그들은 이불 보따리를 이고 모 병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오늘이 전역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전역... 군대 졸병이 군대 생활 피눈물을 흘리며 살았던 부대를 떠나면 대개 다시는 찾아오지도 기억하지도 않는 곳이 바로 복무장소이다. 그런 부대를 작업복 벗어 반납하고 개구리복장으로 빛나는 예비군 모자 를 쓰고 전역신고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정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고 한 많은 군대생활 드디어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모 녀는 모 병장이 부대에서 나오면 그녀는 순정을 바쳐 사랑한 사람을 따라 고향 산천 버리고 내륙의 신세계로 모 병장의 고향집으로 시집을 가는 길이었다. 정식 결혼이야 아니 올렸지 만 처녀 집에서는 이미 이 청년을 사위로 인정하고 그가 전역하면 딸을 보내리라고 마음을 정했던 것이다. 우리 부대 내무반에는 정문에서 온 연락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 제대 고참은 우 리 졸병들에게 다짐을 받아두었다. 그는 중대장 소대장 선임하사에게 전역신고를 마치고 사 령부로 가서 마지막 전역신고를 마치고 전역증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순서인 것이다. 그는 중대 전역신고를 하는 동안 몇 번의 정문의 전화연락을 받았다. 벌써 모녀가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었다마는 모 병장은 처녀를 데리고 갈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사정이 어 떠한지 모르지만 결혼이란 게 어디 정상적인 우리의 가풍으로는 그렇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 닌 것이었다. 남자측 사정도 그리 손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깊고 긴 사연이야 모르지만 모 병장은 전 역신고를 마치고 정문으로 나가질 않았다. 그는 뒷문으로 빠져 사령부로 줄행랑을 치고 말 았다. 정문 초소병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사기를 치라고 일어두고 그는 떠나버렸다. 정문에서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리던 모녀는 어느덧 중식시간쯤에서도 사태의 긴박성을 인지하고 초병을 다그쳤다. 그러나 초병이 무슨 죄가 있나? 정문으로 나가는 것이 당연하거 늘 그러니 기다리라고 알려주었다는데... 두 모녀는 이제 찾아 갈 곳이 바로 사령부였다. 혹 아직 사령부 신고가 끝나지 않았다면 붙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 그 어촌에 택시가 어디 있나. 그들은 한번씩 지나가는 울산행 완행버스를 기다려 사령부로 갔을 것이다만 아마도 그 시간이면 그는 사령부 신고도 마치고 이미 고향 가는 버 스에 몸을 싣고 있었을 것이다. 가제는 게 편이라고 어느 누구 한 명 처녀 편 드는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또 그럴 수도 없었다. 측은하고 가련하지만 다 운명이거늘.... 인연이 아니었던 걸하고 말아야 할 일이었다. 모르긴 모를 일이다. 사랑의 종지부가 어디인지 종말이 어떠한지.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 남녀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열심 히 열렬히 서로를 그 동안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현실이 그 사랑을 뛰어넘지 못했을 뿐이다. 인간은 아직까지는 사랑만을 먹고 살수는 없고 현실이 중요하기에 그러하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러하다. 그러나 세기의 사랑이나 이야기 속의 사랑이나 간혹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랑 숭고한 사랑은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희망에 차서, 행복에 차서, 꿈에 부풀어 새 신랑 따라 갈 것이라던 어촌 처녀의 깨어진 춘 몽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현실도 다 극복할 능력을 신은 주셨다. 그녀도 모 병장도 다시는 못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인연을 만나 살아가고 있으리 다. 이제 와서 보니 그런 상황에 직면한 어머니의 심정은 또한 어떠했을까? 부모가 되어보 니 이제서야 부모의 심정이 떠오른다.
덧붙여 한 이야기를 더 하면 어느 제대병은 전역 후 바로 우리 부대 앞에서 살았다. 그는 돌아갈 집도 절도 없는 고아였다. 그는 때맞추어 마을 가게 처녀와 알고 지내다 그 집으로 들어가서 살았다. 우리는 전역한 그를 가게에서 만났다. 이런 경우는 해피 엔드이다. 처녀 집이나 총각사정이나 그대로 한 가족이 되어 살도록 인연이 되었다.
혹 이런 일들이 남자의 기만이라고 할 것 같아 혼자서 자격지심(自激之心)이 들어 덧붙이 자면 아들 낳아서 군대 보내보아라. 정말 아들이 도둑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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