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고문관 엄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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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관이란 문자는 군대서 유래한 것만은 확실하나 어원은 다를 것이다. 특별히 조사나 감독으로 파견된 특정직에 국한되는 용어일 것이다. 그러나 군대생활 중에 고문관하면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이런 종류의 사람을 뜻한다. 졸병생활 군대 생활에서 제일의 특과는 고문관이다. 고문관이 되는 자격에는 주특기가 따로 없다. 어느 주특기도 될 수가 있고 되었다. 고문관이 되면 그에게는 제대까지 졸병으로써 부여받는 모든 혜택이 주어진다. 예를 들면 야간보초도 면제되고 식기당번, 사역, 훈련, 내무 반 관물정돈, 총기관리, 탄 당번 그야말로 공동으로 수행하는 일은 모두 면제이다. 다만 하 루 세끼 챙겨먹고, 모포 펴고 자고, 옷 입고, 숨쉬는 일만 하면 된다. 군대생활 위의 열거한 일들이 전부인데 이런 일들을 면제받으니 그냥 전역을 시키지 왜 군대생활을 하게 하는지 하는 의문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다 이유가 있고 또 어느 부대이고 고문관은 있었다. 그럼 고문관이 되면 좋은데 어떻게 고문관이 되는지 궁금할 것이다. 정말로 고문관이 되 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우면 다 고문관으로 빠질 것이 아닌가? 그리고 되고 싶어도 될 수도 인정도 해 주지 않는다.
그런 고문관이 우리 부대에 있었다. 나보다 일년 고참이었다. 그도 처음에는 졸병으로 우 리 부대에 왔을 것이다. 내가 졸병으로 갔을 때 그는 어느덧 새까만 졸병은 면하고 중고참 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고참이 되고 있었지만 고문관 노릇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그의 행동은 이러했다. 졸병들에게 거의 고참 노릇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것들은 끝없 이 챙겼다. 자기가 졸병의 고참이란 사실을 인정해 달라는 것과 세끼 식사 챙겨서 먹는 것 과 간식이나 먹을거리가 생기면 철저히 챙겨 먹었다. 그러니 할 일은 안하고 먹기는 철두철 미했다. 그렇다고 한번도 졸병에게 욕을 하거나 때리는 일도 없었다. 그러니 졸병도 그를 고 참으로 대접하는 법도 없었다. 그는 졸병들과 어울리길 좋아했다. 그래야 만만하고 편하니 그러할 것이다. 하루종일 겨울 이면 따뜻한 양지에서 퍼지고 앉아서 놀다 식사시간이 되면 나타났다. 여름이면 나무 그늘 에서 잠만 잤다. 그러나 식사시간에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의 졸병시절은 피눈물나는 고참들과의 싸움이었다. 고참의 심부름과 졸병노릇을 그르치 는 일들과의 투쟁이었다. 그도 고문관이 되기 전까지는 졸병노릇을 했으나 제대로 하는 일 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가령 식사당번이 되어 배식을 받으면 혼자 먼저 먹었다. 그리고는 식탁에 밥을 타서 진열하는 일도 국그릇을 옮기는 일도 안 하는 것이었다. 먼저 먹고는 멀 뚱멀뚱 다른 졸병들 일하는 것 구경만 하고 만다. 졸병들끼리의 일은 그런 대로 넘어가자. 그러다 야간근무를 서라하면 총 베고 자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순찰이라도 걸리면 소대전체 가 단체기합 먹을 일만 만들고 나중에 고참들로부터 얼마나 터졌겠는가. 그런 일을 수없이 반복했었다. 고참들은 일을 가르치고 때리고 그러다 드디어 고참이 손을 들면 고문관에 등 극하는 것이다. 이런 일 아무나 하고 되는 것이 아님이 틀림없다. 일단 그 무지 막대한 고참의 매를 견딜 맷집이 되어야한다. 아무리 맞아도 전혀 고쳐지는 모습이 보이질 않아야 한다. 지시하고 명 령하면 고분고분 다 이해한 걸로 넘어가 주어야한다. 그러나 결국과 언제나 전과 같아야 한 다. 시키면 결과는 언제나 더 나쁘게 나와야 한다. 그렇다고 고문관이 저지른 일이 악의가 아니어야 하고 군무를 어기는 군법의 사건이 아니어야 한다. 한마디로 개망나니가 아니어야 하고 성질이 나쁘지 않아야 하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여야 한다. 그러니 고참도 그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는 꾸밈이 아니라 천성이어야 한다. 고문관의 자질이 있어야 했 었다. 요즈음의 군대는 그런 자질의 용사는 보충역이나 면제로 현역에 입대하지는 않을 것 이다. 우리는 더러 그 고문관 고참이 부러웠다. 그는 언제나 웃을 수 있고 언제나 놀 수 있고 언제나 제 하고 싶은 대로 지냈다. 그리고 인간적이고 좋은 고참이었다. 먹을 것 조금만 챙 겨주면 다정다감한 고참이었다. 괜히 심술부리고 주기적으로 졸병을 패야 군기가 잡힌다고 삼일 걸러 몽둥이 들던 고참과는 달랐다. 가끔씩은 그 고문관이 이해가 되질 않은 적도 있었다. 어떤 일은 알아서 확실히 챙기고 철두철미했으니 그렇다. 그런 일이란 대개가 본인의 신상에 관한 일이고 다른 누가 아무도 해주지 않는 자기만의 일일 경우였다. 그런 비슷한 일, 그보다도 쉬운 일인데도 안 해도 다 른 졸병이 해 줄 일은 절대 스스로 하는 법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그런 행동들이 일 부러 고문관 노릇을 하지 않나 하는 의심이었다.
어찌되었거나 고문관 아무나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우린 졸병시절 그 고 문관 고참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덧 세월은 흘러주어 그도 제대 말년이 되었고 최 고 고참도 되었다. 그러나 그의 말년 행동을 보면 꾸밈이 아니라 천성임이 확실하였다. 그렇 게 부러웠던 고문관도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는 생각이 지금 든다. 그 고참 엄 병장만큼 어 렵게 군대 생활을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군을 만기 제대해 준 자랑스런 대한의 남아였다는 것이다. 고문관이 되기도 참으로 힘들었지만 아무도 인정해 주 지 않는 집단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3년을 마쳐야 제대가 되기에 참고 견딘 忍苦 의 세월이었다는 것이다.
고문관 엄 병장에게 이제서야 고참 대접 안 해 준 것에 대하여, 무시하고 지냈던 일들에 대하여 사과를 보낸다. 엄상섭 일병도 전역 시에는 육군 병장 엄 병장으로 자랑스럽게 전역 했다. 여기 이름 석자 올리는 이유는 보고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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