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수의 조건과 짠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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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읽은 금아 선생님의 수필에 長壽라는 글이 있었다. 금아는 인간의 수명을 이렇 게 정의하셨다. <오래 살아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사는 삶은 짧은 인생이요, 짧아도 추 억과 과거를 기억하여 보석같이 꺼내서 회고하는 삶은 긴 인생>이라고. 나는 그런 이야기로 친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내 지난 일들을 이처럼 하나같이 잊 지 않고 기억하는 나의 삶을 즐기니 말이다. 나의 과거에 대한 기억력은 과히 천부적이다. 내 주위에 여러 친구들과 혹 가족들에게 지난 일을 기억해서 들려주면 그들은 나에게 감탄 과 찬사를 보내곤 한다. 이런 일도 나는 수련과 공부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타고난 재능일 것이다. 다행이 그런 재능이 있는 내가 글을 쓸 수조차 있으니 과히 이런 글 짓기에는 금상첨화이리다.
가을은 식욕의 계절이고 나 또한 요즈음 식욕이 잔뜩 일고 있는 참이니 먹는 이야기를 해 볼까한다. 신병 입대하여 하루 이틀은 군대 짠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덜 퍼진 까만 보리밥에 소금이 절인 배추김치 단무지 한 조각에 무엇보다도 냄새가 나는 밥이 먹기도 전에 사람을 질리게 하였다. 나의 식성은 가림이 없어 그리고 음식 욕심이 남보다 더한 편이라 열심히 먹으려고 했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나가자 냄새도 반찬 투정도 저절로 없어졌다. 그러나 한 주일 내내 밥을 거의 못 먹는 전우들도 있었다. 취사당번이 배급된 40인분 식판과 국을 취사장에서 내무반으로 끼니마다 타다 날랐다. 그 리고 개인 식판에 배급을 받아 침상에서 식사시작의 구령에 맞추어 "감사히 먹겠습니다."라 는 구호를 외치고 식사를 시작한다. 식사시간은 내 감으로 5분이 채 못되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이면 그 시절 젊은이에게는 모자라는 시간이 아니다. 밥 한 판 스푼으로 꾹꾹 담으면 너댓 스푼이면 끝이고, 국 한 그릇 한번에 쭉 마시면 없어질 것이니 5분이면 충분한 시간이 다. 그런 시간이 나에게는 항상 모자랐다. 나의 신통찮은 위장 때문에 밥을 오래 먹는 습관 이 있는지라 난 그 작은 밥도 아깝게 조금씩은 남길 때가 생겼다. 그러나 "식사 그만"이란 호령이 떨어지면 올라가던 스푼도 내려 놓아야하고 씹던 밥도 그 냥 삼켜야지 그 자리에서 씹는 모습이나 소리가 들리면 바로 기압 아니면 주먹이 가슴을 칠 것이니 아무도 어길 수가 없었다. 이제 그 식판을 들고 짠밥통을 거쳐 세면장 수도에 가서 그릇을 씻고 오는 순서이다. 못다 먹은 밥은 들고 가면서 눈치껏 퍼먹으면 된다. 그리고 그 렇게 먹어서 배를 채웠다. 내 정량은 먹었다. 그 정량을 먹는 것도 군대의 규율이었다.교관 이 학과시간에 들어오면 "식사 많이 했습니까?" 하고 교본대로 우리에게 물으면 우린 힘차 게 대답한다. 교본대로 "정량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량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힘차게 용감하게 정량을 먹었노라고 외친다. 아마 도 우린 그 정량의 반밖에 못 먹었노라고 외쳐야 했을 것이다. 배가 얼마나 고팠는지 그 시 절에 있었던 실화 두 가지를 올릴까한다.
노천 짠밥통이 시멘트 목욕탕처럼 사각으로 놓여있었다. 그것에다 우린 남은 짠밥을 버렸 다. 입소한 첫 주일은 이 짠밥이 쌓이곤 한다. 우리가 훈련을 받은 시기가 2월 초순이니 살 얼음이 짠밥통에는 서럭서럭 얼었다. 훈련소에는 매주 신병들이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명찰 색이 선배 후배를 알려주는 표시이며 파란 명찰은 몇 주차이고 빨간 명찰은 몇 주차인줄 알 고 군기를 잡는다. 오뉴월 하루 땡볕이 어디라고 여기 한 주일 고참은 그냥 쪼인트 까고 귀싸대기 올리는 훈 련소 선후배 군기였다. 우리가 배식판을 들고 짠밥통으로 가는 동안에 이 선배들이 우릴 따 라 온다. 왜냐고? 그들은 알고 있었다. 첫 주차 신병들의 남긴 밥을 노리는 것이다. 그래도 그걸 얻어먹는 사람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더러는 그 서거럭 서거럭 언 짠밥통을 손으로 집어넣어 밥알을 건져 먹는 걸 보았다. 다행이 겨울이라 아직 부패하지 않은 짠밥이니 먹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내 이 증언이 혹자는 설마 설마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내가 본 사건이다. 1974년 2월 창원 39사단 신병훈련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일반 사회인들께서는 정말인가? 하고 놀라시고. 그 시절이 군대 생활을 했거나 관련된 장교들은 그런 일이란 비일비재한 일이라, 일상의 일이라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 그렇게 살았고 다 그런 줄 알고 지냈는데 어찌 그런 일이 가십이 되고 이야기 거리가 되냐고 오히려 물어볼 일일지도 모른 다. 면역이 되고 만성이 되면 판단이 없어진다. 까만 얼굴을 가진 아프리카 흑인들은 그들이 얼굴이 까만 것이 이상하지 않다. 코에 배꼽에 팔뚝에 고리를 걸이를 하는 그들은 아니한 우리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이 시절에 우리 군대 졸병은 이렇게 어려웠다. 정량이라 고 외치면서 정량은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정량을 먹고 정량 먹었노라고 외쳐야하는 졸병시 절이었다.
두 번째 먹는 이야기는 훈련병이 이용하는 px는 아니지만 훈련병도 쉬는 시간을 이용하 여 px나들이를 하였다. 첫 주는 불가하나 한 주일쯤 지나면 단팥빵 달나라빵 크림빵을 사 먹을 수가 있었다. 모두들 어떻게 숨겼는지 종이돈 한 두 장 들고는 빵을 사먹었다. 아! 그 달콤한 빵 맛이여 난 단팥빵이 제일 맛 좋았다. 달콤한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 도 난 단팥빵을 맛있게 먹곤 한다. 그 저녁 날 px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 몇 주 앞서 입소한 훈련소 고참이 저지른 사건 이었다. 빵이 먹고 싶어도 배가 고파도 돈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었다. 우리 동기 중에 누군 가가 막 빵 비닐을 벗기고 입에 넣은 찰나에 일어난 일이다. 곁에서 바라보던 훈련소 어느 고참이 이를 재빨리 손으로 덥석 빼앗아 자기 입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먹이를 빼앗긴 졸병은 그냥 멍하게 바라볼 따름이다. 명찰을 보니 고참이고 벌써 삼켜버린 빵은 흔적조차 증거조차 없어지고 고참은 아무 표정도 없이 달아나지도 않고 돌아서서 걸어 가고 말았다. 이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난 실로 참담함을 느꼈다. 이게 인간의 본능이구나. 누가 우리 인간이 최고의 지성을 갖춘 만물의 영장이라고, 이성 과 지혜를 가진 선택받은 생명이요 존재라고 하였던가? 배고픔은 이성도 체면도 그저 한 조 각 허울에 불가한 것이거늘. 빼앗아 먹고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른다고 난 그 사람이 이상 하다고 보지 않는다. 理性도 人性도 이 배고픔이 해결되어야 존재하는 우리의 껍질이거늘.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빵을 먹을 때는 모두들 주위를 살피며, 두 손으로 웅켜쥐고 재빨리 입 에 넣어야 안심이 되곤 했다. 입에 넣기 전까지는 내 것도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르니.
배가 불러서 못 먹고 입맛이 없어 못 먹는다고 들었다. 요즈음 훈련소가. 보일러가 제대로 지어진 내무반에 들어가고 텔레비전, 오디오가 진열되고 휴대폰, 삐삐가 울어대는 군대라고 들었다. 콘센트 막사의 뚫어진 양철판 사이로 밤새 겨울 찬바람이 얼마나 불어대는지. 코가 얼고 눈썹이 얼어 모포 밖으로 얼굴을 내 놓지 못하는 막사였다. 이름처럼 막사라고 불렀다.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함석으로 반원으로 지은 그런 내무반이었다. 그 시절 우리 군대 훈 련소 내무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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