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떡고물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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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령을 하다 병기계원으로 보직을 바꾸었다. 그러니 졸병은 면하고 중고참쯤 되었나보다. 중대 병기계는 중대의 화기와 탄약을 관리하는 직책이다. 무척 중요한 직책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한직(閒職)이고 가장 별 볼일 없는 職이다. 왜냐면 총과 총알은 돈이 안 되는 일 이기에 누구나 좋아하지 않는 물건이고, 있으면 귀찮고 잃어버리면 보통 문제가 아니니 좋 아할 리가 없었다. 화기란 탄약을 장진하면 무기이니 이는 인명을 살상하는 일이고, 사람 죽이는 일이 궁극 적인 목적인 군인이지만 죽고 죽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아무도 없을 것이 아닌가. 또 하나 이놈의 화기나 탄약은 돈이 안 된다. 살 놈이 없으니 팔 곳이 없다. 쌀이나 기름이나 하다못해 작업복 군화도 다 빼돌리면 돈이 되는데 무기 살 놈이 어디 있나? 그러니 내가 맡 은 병기계원은 한직이었다. 군대 생활 한직으로 한가하면 좋은 일이 아닌가? 어찌 보면 그 럴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부대 돈 밝히는 선임하사 김상사는 나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다른 계원에게 는 군기도 잡고 달래기도하고 짝짜꿍이 맞았지만 나랑은 영 서로가 신경 끄고 살았다. 총알 팔아 돈 만들일 나도 그도 없다는 걸 아니까. 허나 이 놈들을 분실하거나 망실하거나 수량 이 어긋나거나하면 큰일이 생긴다. 아무래도 보관 관리를 확실히 하여야지 총기사고가 난다 든지 분실사고가 되면 이 병기계가 연루되지 않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병기계 사수가 전역을 하며 나에게 물려준 유산이 있었다. 이건 보통 비밀이 아닌데 여기 서 공개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대로 물려온 병기계원의 상속된 유산이었다. 총알과 탄약이 다. 그것도 몇 개가 아니라 수천 발씩이나 된다. 심지어는 수류탄, 크레뮤아, 신호탄, 총류탄, 각종 탄약들이 몇 상자씩이나 되었다. 그는 전역 일이 가까워지자 날 불렀다. 그리고 야전삽 을 들고 따라오라고 했었다. 나는 철조망 옆 소나무 아래 잔디를 팠다. 탄약통에 수십 개가 묻혀있었다. 그리고는 그 속의 물건들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상병! 잘 보관해!" "다음 부대 이동 때 잊지 말고 파 가도록..." "이것들은 내 사수가 나에게 물려준 것에다 내가 좀더 모아두었으니 지내다보면 필요할 일 이 생길 것이야!"
필요할 일? 뭐, 탈영할 일인가? 무기고에 전투용 비상 실탄과 무기는 다 보관되어 있는 데 이 장부외 탄약들이 왜 필요해? 하는 의문을 가졌다. 무기고의 탄약들은 부대 이동시 장 부와 대조하여 인수인계를 한다. 그 많은 실탄 수를 어찌 다 헤아릴 것인가? 그래서 헤아렸 다고 하고 그냥 주는 데로 받고 준다. 돈도 안 되는 탄약을 갖고 헤아린다는 것이 아무리 목숨과 같지만 보통 일이 아니고, 한두 사람이 붙어서 될 일도 아니고, 탄약고에서 그런 작 업을 하는 일도 위험한 일이니 모두 다 그냥 믿고 주고받았다. 사실인즉 총기와 탄약의 보관, 관리, 확인은 엄중한 일이고 수시로 확인하고 파악해야 하 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어찌 그런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누군가가 탄약을 훔쳐 가 면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화기로 얼마든지 무장 괴한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그러 하다. 사수였던 차 병장이 전역을 하고 우리 부대가 이동을 할 때 나는 무기고의 탄약은 다 인수 인계하였지만 그 파묻힌 탄약들은 모두 꺼내 차량에 싣고 이동 근무지의 으슥한 땅속 에 다시 묻어두었다. 참 왜 탄약고에 보관하지 땅에 묻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구나. 탄약고 에는 안전이야 하지마는 장부와 일치하지 않는 탄약을 보관하다 검열이나 순찰에 걸리면 추 궁을 당하고 영창을 가야하니 알면서도 그럴 수가 없는 일이었다. 참 지금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짓을 했구나 싶다.
그러던 어느 날 해안부대 소대장이 연락을 해 왔다. 꿩을 잡는다고 M16 실탄을 사용했는 데 좀 달라는 것이었다. 또 어느 날 우리들은 야간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사격 후 탄피는 100프로 회수이다. 이 탄피 한 발이 실탄 한 발이니 그렇다. 그러나 야간에 100프롤 회수는 아무리 사격병이 주의를 해도 불가한 일이었다. 이런 일들로 이 숨겨둔 예비실탄이 소요되 는 것이었다. 가끔은 오발사고가 났고, 야간에 혼자 놀라서 수류탄 크레므아를 소모하기도 했다.
크레므아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하고 지나가자. 월남전에 위력을 발휘한 개인 전술화 기중 하나가 크레므아이다. 회사 다이어리 두께와 크기로 한쪽으로 배가 나온 형태의 널판 지같은 무기이다. 간첩이나 적의 침투가 예상되는 곳에 지뢰를 묻었지만 이제는 필요시 설 치하고 철수시키는 이동용 화기였다. 리모트 격발기를 누르면 수백 발인가 수천 발인가는 모르나 탄알이 전방을 향해 발사되는 것이다. 후방으로는 폭풍이 생기며 오로지 전방을 향 하여 일격에 솟아 붓는다. 이놈을 반대로 설치하면 적을 잡는다며 아군을 쑥대밭을 만드는 무서운 무기였다. 물론 전면에는 'FRONT' 뒷면에는 'REAR'라지만 평평한 두 면이 야간에 구별될 리도 없지 않는가. 영어도 어렵지만 우린 설치교육을 이렇게 받았다. 크레므아를 설 치하기 전에 한 면을 배에 붙여본다. 그리하여 배에 밀착되는 방향으로 그대로 전방에 설치 하면 틀림없는 방법이었다.
이런 일들이 생기니 내가 우리 사수에게 물려받은 탄약은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일이었 다. 그렇다고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령부로 보고를 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받는다는 것은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는 물론이고 나 또한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기에 그때마다 예 비 탄약으로 보충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우리 고참은 이 많은 탄약들을 어떻게 구하였는가? 내 추측으로는 이러하다. 돈이고 실탄이고 떡이고 만지면 고물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떡고물 이 모이고 쌓여 재산이 늘은 것이다. 이 탄약들을 팔아서 돈이 된다면 이렇게 모였을 리가 없다. 사회에 나가면 의심만 받고 피하는 물건이니 다 버리고 물려주고 가는 것이 아니겠는 가.
재산도 그러하다. 우리 죽을 때 저승에 가져 갈 수가 있다면 열 개 가져오면 한두 개씩만 돌려준다하면 남겨두고 가는 조상 별로 없을 것이다. 못 가져간다니 물려주고 남겨주고 것 아니겠는가.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다 채워주었는데도 여기저기에서 떡고물들이 떨어져서 나 도 조수에게 다 물려주고 나왔다. 나는 이제 내가 묻었던 장소도 잊었다. 그러나 그 부대는 아직도 존속하기에 지금도 병기계 사수는 그 탄통을 묻고 파고 하면서 이동시마다 지고 다 닐 것이다. 어느 부대의 병기계원이고 그렇다면 이 예비탄약도 인수 인계함이 합리적일 것 인데도 아직도 지고 다닐 것 같다. 아무래도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떡 고물들이 많아졌을 터인데 차 때기로 지고 이동하는가 싶어 쓸 때 없는 걱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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