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쫄병수첩

쫄병수첩

두칠이

29. 쥐는 쥐는 궁게 자고



	"쥐를 소탕하라" 드디어 쥐를 몽땅 잡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군인들 먹을 식량도 모자라는데 쥐까지 극 성이니 마땅히 소탕을 해야하지만 그 쥐도 마음대로 잡을 수도 잡히지도 않았다. 취사장이 고 무기고이고 보급창고이고 심지어는 내무반 관물대까지 쳐들어오는 것이 쥐였다. 긴 겨울 이 지나고 그 동안 살이 토실토실 오른 쥐를 잡으라고 부대원들에게 명령이 하달된 날은 봄 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여러분은 쥐가 어디 살 것 같은가? 먹이를 찾으러 먹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몰래 다 녀오는 놈이 쥐가 아닌가. 그러나 집을 지어두고, 잠을 자고, 짝을 짓고, 새끼를 키우는 곳 말이다. 우리 민요에 이런 노래가 있다. 쥐는 쥐는 궁게 자고 새는 새는 낭개 자고 님은 님은 품에 자고 새근 새근 우리 아가 엄마 품에 잠을 잔다. 쥐는 궁게(구멍)에서 자고, 새는 낭개(나무)에서 자는 것이 맞다. 군대 쥐는 겁이 없다. 겁이 제일 많은 동물이 쥐인데도 군대 쥐는 졸병 알기는 우습게 여 긴다. 그래서 모포 뒤에서도 뛰어나오고 식탁 밑에서도 나와 밥 먹는 우리들을 한바탕 소란 을 피우게도 만들곤 했다. 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위험하고, 더럽고, 불결한 동물은 아니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러니 국그릇에도 나오는 것이 아닌가? 취사병도 쥐가 보 이면 훠이 훠이 하며 남의 개 쫓듯 쫓고 만다. 그러면 이놈의 쥐도 사람을 깔보고는 도망을 가는 척만 하고는 연신 되돌아 나와 망을 보고 기를 채운다. 그렇게 지내고 키워온 쥐를 소 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리 부대 쥐들의 집은 취사장 뒤 소나무 밭에 붙어있었다. 소나무 밭 둘레로 어느 부대 나 마찬가지로 교통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하여 놓았다. 그 교통호로 초병들이 지나다니듯이 쥐들은 소나무 밭 지하에다 그들의 교통호를 파두고 저희들끼리 가상 비상훈련을 하고 있었 다. 예를 들면 A방향의 우리 교통호에 적(군인)이 출현하면 모두 B방향으로 그들의 교통호 를 통과하여 숨거나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취사장 내부로 직통하는 지하통 로를 확보하여 절대로 노출되게 다니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쥐가 사는지 통계 도 예측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봄이 되면 새끼를 치고 한 달에 한번씩 출산을 하는 번식력을 감안하면 가히 기하급수로 증가할 것이니 말사스의 인구론을 적용하지 않아도 우 리들의 식량은 산술급수도 아니고 정량급식이라고 했던가? 쥐란 녀석의 영리함은 과히 사람을 능가한다. 우리 할머니 말씀에 쥐 잡기 할 때 절대 소 문내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사람 말을 알아듣는 쥐가 도망을 친다는 것이다. 우린 그 봄 날에 갑자기 하달된 명령으로 비밀리에 출동을 했다. 쥐를 잡는 특별한 도구가 없다. 쌀을 넣었던 쌀부대를 들고 쥐를 잡아 집어넣으면 된다. 그 영리한 쥐를, 대낮에 어떻게 부대에 집어넣는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생전 처음 하는 일이거늘 그냥 고참들이 하자는 대로하는 도리밖엔 없다. 우리가 먼 저 한 일은 일단 취사장과 연결되는 쥐의 지하 비상통로를 완전히 붕괴시켜 탈출구를 차단 하는 일이었다. 다음은 교통호의 쥐구멍에 한 두 명씩 보초를 세웠다. 쥐들은 교통호 흙벽에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우리 교통호 땅바닥 아래까지 지하 통로를 만들 필요가 없 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소나무 밭 지하 굴에다 궁을 지어놓고, 오는 봄이면 시집 장 가들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제 쥐들은 완전 포위가 되었다. 독 안에 든 쥐 꼴이었다. 생각을 하여보면 알다시피 이 숲 속이야말로 그들의 지상낙원이었다. 이쪽에서 들키면 반대편으로 달아나고 지하토굴에 숨어있으면 천혜의 요새인 셈이다. 모두들 민방위 훈련을 열심히 받았기에 비상사태가 발생 하면 찍소리 없이 기다리면 해제가 되었던 곳이었다. 간혹 밝은 세상이 그리우면 출입구로 한번 뛰어나갔다 급하면 구멍으로 쏙 들어오면 따라오던 군바리 졸병은 구멍 앞에서 막대기 로 몇 번 쑤시어보거나 파보고는 그냥 두는 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졸병이 어디 할 일 없 어, 쥐 잡기나 할 법이냐? 최종 작전 명령이 하달되었다. 석유 기름을 묻힌 헝겊에 불을 붙여 쥐구멍에 연기를 피우 는 일이다. 화공전법이었다. 우리는 불길을 넣을 구멍은 좀 크게 파고 그 속으로 연기와 불 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구멍의 반대편에서는 쥐가 뛰어나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이 구멍에도 불, 저 구멍에도 연기, 지하통로에서 늴리리 맘보를 부르던 쥐, '사랑은 아무나 하나'하며 사 랑 타령 대장이던 두칠이 생쥐도 오늘은 분명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서 그 동안 내 사 랑 다링을 부르던 궁녀들을 거느리고 연기를 피해 손바닥 보듯 훤한 교통호의 지형을 찾아 불길이 없는 길로 주르륵 몰려 나갔다. 그리고는 낙화암에 떨어지는 삼천 궁녀의 심정으로 연기 없는 조용한 쥐구멍으로 피융 뛰어 내린다. 한 놈이 시범으로 뛰어나갔으니 괜찮은 모 양이구나 하고 다음 놈도 지체없이 뛰어 내린다. 우리의 교통호로 낙하를 하는 것이었다. 꿈 꾸는 백마강 노래를 부르며. 바로 이때 대기하던 쌀부대 병력은 낙하하는 서(鼠)궁녀들 하나씩, 하나씩 부대 속으로 받 아 넣는다. 손도 안대고 잡아넣는 일이다. 그냥 조용히 기다리다 몰려나오는 녀석을 공중에 서 낚는 일이다. 어쩌다 꼬리에 불이 붙은 채 불구멍으로 뛰어나오면 놀란 병사가 놓이는 일도 있다. 그러면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쥐를 쫓아 뛰어 다니는 재미란 참으로 유쾌한 일 이었다. 숨어야 할 집을 잃은 쥐들은 모두들 포로로 잡힌다 바야흐로 화공전법의 대승이었 다. 이제는 그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여 마지막 최후진술을 듣고 수장(水葬)을 했다. 수장이 란 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빈 기름통에 물 가득 붙고 쌀부대를 통 채로 집어넣어 두면 수장 이 끝이 났다. 한바탕 쥐와의 전쟁을 치르고 전과를 기록하고 우린 교통호를 보수해 두었다. 우리도 교 통호를 확보해야하고 겨울에 또 다른 쥐들의 지하 교통호로 사용토록 허가를 해야하니 말이 다. 그렇게 일년을 보내고 내년 봄이면 또 화공전법의 쥐 소탕작전은 해야 할 일이다. 영리 한 쥐도 일년이 지나면 지난 시절의 고난은 잊고 마는가보다. 우리 남자들 세월 지나면 군 대에서 고생한 것은 다 잊고 살 듯이 ... 짠밥에는 잊어먹는 약이 들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