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쫄병수첩

쫄병수첩

두칠이

28. 어찌 잊으랴, 박통의 시대를



	군대생활 부정적인 면만 들고 나와서 이제 입대할 사람들 사기만 죽이는지 사뭇 걱정이 되긴 한다. 내 아들 녀석도 내년 겨울이면 신병 훈련소에 입소할 것이다. 지난여름에 신체검 사를 간다기에 그놈의 열린 턱을 핑계로 방위병이나 되어줄란가 싶어 진단서까지 첨부하여 보냈는데 갔다와서 하는 말이 "이런 거 쓸데없다, 갔고 가라"하드라며 1급을 받아왔다. 현역 입영 딱지란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는 자꾸 현역 졸병으로 간다고 한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구나! 그래 도 장교로 가면 안되겠나? ROTC라고 장교 복무 제도가 있다며.... 지원자가 많아 그냥 마음 편히 졸병으로 간다고 한다. 알았어! 하고 말았지만 부모 마음은 그리 편치 못하다. 자식 녀 석 군대간다는 것이. 그래도 누군가는 가야 후방의 국민이 안심하고 잔다는 일이라고 하니 갈 수밖에 도리가 없는 일이다. 그래 가야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 하는 일이고 나의 조국을 지키는 일이기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헌법을 그것도 대통령 선출을 직접선거에서 간접선거로 바꾸는 개헌 의 국민투표가 1972년 10월에 있었다. 이런바 10월 유신이었다. '유신헌법' 유신만이 살길이 라고 대한민국 방방곡곡에는 유신 찬양 현수막이 걸리고 입시학원의 이름도 유신학원이 생 기고 참으로 삼천리가 야단법석이던 시절이 있었다. 삼선개헌에 유신헌법에 반대한다고 시 위로 얼룩이진 대학생활이었는데.... 결국 대통령을 세 번이나 하고 나더니 이제는 세 번이고 네 번이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의원들을 뽑아 그들로 하여금 대통령을 선출케 하는 대만 의 총통제 같은 제도를 도입하려고 개헌국민투표를 했다. 국민이 원하는데 헌법이 막고 있으니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내가 아니면 이 나라가 망할 것이니 인재가 없으니 이제 下野하면 나라가 산으로 바다로 좌초할 것이니, 내가 끝까지 해 야 한다는 명분에서 유신헌법이 탄생했다. 수많은 민주인사가 연행되고, 학생들이 제적되고, 지식인이 노동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하루 아침에 끌러가서 사라지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도 안가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 그 시절에는 일어났었다. 참으로 암울 한 시대였고 우리가 아파할 역사의 질곡이었다. 아, 아, 어찌 잊으랴하며 6.25노래를 배웠지 만, 이제는 아, 아, 어찌 잊으랴 유신의 시대를, 박통의 시대를.... 역사상 최고의 투표율과 최 고의 찬성률로 이 헌법은 통과되었다. 유신헌법의 실체는 묻어두고 이 법이 바로 통일헌법 이고 이 법이 잘 살고자 하는 헌법이라고 알리는데 어느 누가 통일을 싫어하고 잘 살기를 싫어하리요. 전대미문의 기록으로 통과된 헌법,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 지지를 재 신임하는 투표가 군 대에서도 실시되었다. 그 시절에 공교롭게도 나는 졸병 군인이었다. '양심선언으로 그 시절 에는 고발하지 못 했던 일을 지금 와서 내가 떠 벌이고 있나?' 싶기도 하다. 1974년인가 5년인가 아리송하다. 방어진 가서 맞은 2월이었다. 그러니 75년 2월이구나. 유 신헌법의 대한 국민저항에 정국이 파행으로 치닫자 박통은 대통령의 주요정책을 국민들이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물어보자는 일종의 정국 돌파용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되었다. 91% 이상의 투표율과 91%의 찬성률로 지지를 얻은 유신헌법의 전례로 보아 국민을 볼모로 독재 를 할 생각이었다. 우리 고참 배 일병 이야기는 지난번에 잠깐 비추었다. 그 배 일병이 독재에 항거하여 고 집으로 싸워 이긴 사건이 있었다. 선거에서 투표는 비밀투표가 원칙이고 지켜지는 게 상식 이다. 그러나 그 때 그 선거는 아니었다. 공개 투표였다. 사전에 찬성을 위한 교육이 수 차 례 실시되고 그 다음 개개인의 투표의사를 확인한 후 선거에 임한다. 물론 선거용지에 기표 하는 것도 감독 하에 찍는다. 중대장의 오랜 교육실시 후 모두 참석에 모두 찬성이어야 한 다. 이는 중대장을 포함하여 우리부대 부대장의 진급이 걸린 사건이다. 배 일병은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고 투표소에 가지 않았다. 분초에서 중대장에게 불 러온 배 일병은 기권하겠다고 본인의 의사를 밝혔다. 우린 아무도 반대도 거부도 못하였다. 군대에서 졸병이 자기의 의사가 어디 있나? 그런데 배 일병은 중대장이랑 붙었다. 서로 다 른 주장 때문에 수 시간을 중대장 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중대장은 통 사정을 했었다. 기권 은 불가하다. 그래서 그는 중대장이 보는 앞에서 용감하게 반대를 찍었다. 투표용지는 밀봉 되지 않은 상태로 대대로 전해졌다. 이것도 전령인 내 손으로 들고 갔다. 배 일병의 반대표 가 걱정이 되었다. 모두 재 검표를 할 것인데, 다행이 재검토를 하지 않은 채 봉해졌다. 아 무도 중대장 소대장 면전에서 반대를 못했던 그 시절에 그는 싸워 이겼다. 기권도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전원참석에 전원 찬성만이 우리의 지상 과제라고 믿던 시절이었다. 두칠이, 너 이야기 지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물어 올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구나. 어찌 이런 역사적 사실을 지어낼 수가 있는가? 내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그 시절의 아픔들을 기억들을 사실대로 기술하여 이 시대적 판단으로 우리 군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고 하지 않았나. 그 후 박통은 그 헌법의 결과로 1979년에 의사 김재규의 손에 사살되었다. 내가 김재규를 의사라고 칭하면 발끈 할 사람 여럿 나올 줄 안다. 더러는 유고, 서거, 지랄하고 자빠졌네! 죽어야만 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역사의 귀결이다. 이등방문이 안중근에게 죽었듯이, 보 는 관점에서 영웅이 되고 원흉이 되기도 한다. 우리 인간 세상의 일들은.... 그 배 일병님! 우리 군대 고참 배용한 일병은 지금 무얼 하는가? 시대의 선각자, 그는 여 전히 전교조에 골수분자로 교육계의 개혁을 위해 싸우다 수년간 퇴직교사로 살다가 지금도 전교조 간부로 투쟁한다나? 참 반골은 죽어도 反骨 할 끼여! 그는 학창시절에 흥사단 써클 간부였다. 그가 뿌린 씨앗들은 지금 나 같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 새 싹으로 돋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