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고독한 연락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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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령(傳令)이란 군대의 연락병이다. 내가 전령으로 선발된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직 졸병 이라는 이유를 제외하면은.... 중대전령의 임무는 매일 대대와 사령부에 다녀와야 한다. 공문 서를 수령하고 전달하는 일과 매달 바뀌는 전문 해석용 음어(秘文)를 수령하여 중대 통신병 에게 전달하는 일이 주요 임무이다. 과외로 부대에 필요한 사제 물품을 구입하고 사병들의 군장 휘장 등을 주문 받아 사다 주는 일이다. 군이라고 모든 물품들이 전량 보급되지는 않 는다. 예를 들면 빤츠고무줄, 계급장, 명찰, 모자 등 이런 물품들은 개개인이 시중의 군장가 게에서 구입하여 사용한다.
문서 수발 임무란 사령부에서 파악보고 실시하라는 지시문을 행정반의 서무인 인사병이 작성하여 사령부에 접수시키고 하달되는 공문서를 수령하여 중대에 행정요원에게 인계함으 로써 끝이 난다. 전령은 단순히 심부름꾼이며, 파발병이며, 우편배달부며, 택배요원이다. 그 런 사항을 전화나 무전으로 하지 않고 직접 사람이 전달하는 체제이다. 지금은 어찌하나 모 르겠다. 팩스도 있고 인터넷도 사용되는 세상이니 모른다. 아직도 부대에서 팩스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보나마나 인터넷으로 내용을 보낼 리도 없고 여전히 이십 수 년 전처럼 연락병인 전령이 발로 걷고 차를 타고 이동하여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 아침 먹고 10시경이면 전령가방에 그 날 전달해야 하는 문서들이 하나씩 모인다. 그리고 중대원들이 사 달라고 기록한 물품 명세서와 돈이 들어온다. 나는 항상 군화를 반들반들하 게 닦아야만 했다. 옷도 잘 다려 입어야한다. 내가 옷을 멋지게 입는 사람은 아닌데 사령부 나 대대 정문을 통과하려면 그 위병 근무자의 눈에 나면 출입도 하기 전에 열나게 기합부터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싫어도 귀찮아도 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령은 고참은 안 하는 직책이다. 남의 집에 가서 싫은 소리 듣기 싫은 까닭이다. 고참이면 제 집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는데 구태여 남의 부대에 가서 잔소리나 듣고 또 기합 이나 받으면 하소연 할 때도 없으니 고참이 되면 졸병에게 전령업무를 넘기고 다른 계원으 로 임무를 맡는 것이다.
나는 천성이 다니길 좋아하니 매일 나가는 것이 마음 편하였다. 졸병이 내무반에서 내무 생활 하면 내내 고참에게 시달려야한다. 그냥 밥만 먹으면 전령가방 하나 옆구리에 끼고는 버스를 타고 나갔다. 전령은 완장이 나온다. 완장을 끼면 버스는 무임승차이다. 버스 안내양 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녀석이 또한 전령이다. 어디 공짜 버스 타는 놈을 좋아하랴! 내 돈만 좀 넉넉했으면 돈 다 내고 타고 다녔을 것인데 군바리 주머니에 어쩔 수가 없어서 공 짜로 다녔다. 하도 다니다보니 버스 안내양이 날 보면 그냥 눈 마주치길 거부하고 딴전을 피우던 아가씨도 있었다. 그래도 수놈만 모여 사는 부대와는 달리 버스간에는 미니 비슷한 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도 보이고 여름이면 밝은 색의 엷은 블라우스 속으로 브레지어가 비쳐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푸른 제복의 아저씨는 눈만 멀뚱멀뚱해야지 방도가 없었다. 그 시절 울산시내에는 군바리가 버글버글하던 곳이라 군바리는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 괜히 찝쩍거리다 헌병이라도 부르면 부녀자 희롱하라고 바로 영창 갈 일이었다. 그 일이 겁이 나서 나는 눈알만 굴렸지, 울산 땅 에서 여자 한 명 붙들어보지 못하고 마친 군대 3년이었다. 그러나 영외 생활이란 게 이런 저런 유혹이 산재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내에서 낮술 에 취해서 헤매는 일도 있었고, 명정기 이야기처럼 전령 가방을 통 채로 잃고는 하늘을 원 망하며 낙담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이 보호하사 산전수전 다 겪고 무사히 개구리복 입고 제대를 할 수 있었다. 그런 후 중고참이 되자 전령 일을 나의 후임자 졸병에게 넘기고 곧 전역할 차병장의 조수가 되어 병기계원의 일을 맡았다.
우리 부대 전령은 낮에는 영외를 다니고 밤에는 부대에서 사는 半軍半民 같은 생활이었 다. 그래도 부대로 혼자 걸어 들어오면 참 쓸쓸하고 허전한 날이 많았다. 전령은 혼자서 생 활하는 직책이다. 그래서 고독한 직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인에게 비하면 외판원, 판매 사원, 영업사원 같다. 아마도 그들도 무척 고독한 직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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