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쫄병수첩

쫄병수첩

두칠이

20. 크리스마스 트리



	이 이야기는 졸병시절 훈련받은 후 방어진에서 일년을 넘긴 다음 방어진에서 다시 연암의 예비중대로 와서 나도 어연간 중고참이 되었을 시기의 이야기다. 그 겨울 우리는 월동준비 를 마치고 두더지 모양으로 막사 주위와 출입문을 볏짚으로 이엉을 엮고 방풍용 비닐을 사 방으로 둘러쳐서 좀더 나은 생활을 꾸미고 살았다. 지난해 그러니 내가 여기로 처음 전입 와서 훈련받을 무렵과는 사뭇 사정이 달라졌다. 나는 중대 행정반의 행정요원으로 소대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기관사병이 되었다. 우리 중 대본부에는 행정요원이 10여명쯤 있었다. 그들은 다 그들의 고유 직책을 갖고 있다. 작전병, 인사병, 병기계원, 이사종계원, 일삼종계원, 통신병, 전령, 의무병, 취사병, 운전병 이 정도이 다. 이들에 대한 설명은 넘어가고 다만 듣기 생소하기도 2,4종과 1,3종에 대한 설명을 덧붙 이겠다. 1종이란 식품이다. 쌀과 부식들이다 2종은 피복들이다. 3종은 유류이고, 4종은 건물 이나 건축을 위한 장비들이다. 대강 무슨 이야기인가는 알 것이다. 그러니 이런 종들은 모두 군수품들이다. 사람이 먹고살려면 보급품들이 지급되어야하고 그래야 생활을 할 수가 있다. 그 중에 병 기는 따로 분류하여 병기계원이 무기와 탄약을 관리한다. 이 정도이면 작전과 전투를 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인사는 인력관리, 작전은 교육 훈련 전투, 전령은 중대의 문서수발과 직 접 명령과 지시를 수령하고 보고하는 일을 한다. 이 정도로 각설하고 그 중대 행정요원 중 내 또래 친구가 3명이 있었다. 우리는 아직은 사수는 아니고 고참 사수를 보좌하는 부사수로 있었다. 사수는 언젠가 전역을 한다. 그래서 전역 일년 전에 부사수를 받는데 우리 동기 3명이 뽑혔다. 나는 전령으로 둘은 작전병과 이 사종계원으로 뽑혔다. 이제 서서히 우리들 세상이 오고 있었다. 중대 행정반을 장악하면 중 대의 모든 기능을 통제하고 우리들이 모시는 중대장과 인사계라는 선임하사를 보좌하며 실 질적인 중대의 집행은 우리들이 해 나가는 것이다. 소대에는 소대장과 선임하사가 있으나 그들은 모두 중대 행정요원들에게 보급을 제대로 받아야 따뜻한 겨울도 보낼 수 있고, 식량 과 부식도 하다 못해 기름 한 드럼이라도 더 타 쓸 것이기에 그렇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세모에 우리 동기 3명은 좀더 건사한 크리스마스를 기획하였다. 나는 몇 번밖에 못 보낼 군대 크리스마스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동기들과 의논하여 내무반을 단장하기로 했다. 먼저 색종이와 반짝이는 꼬마전구를 구하고 전선을 연결하여 불 을 밝혔다. 크리스마스의 하이라이트는 크리스마스 트리인데..... 트리를 만들자! 우리는 바로 나무를 구하러 나갔다. 우리가 훈련 다니던 야산 언덕에 폼 나는 사철나무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날 저녁을 먹고 기영이랑 나는 곡괭이 하나 들고 나 무를 캐러 나갔다. 우리 키 만한 소나무 잎이 달린 사철나무였다. 지고 오느라고 아주 힘이 든 사철나무를 큰 화분에 심고는 색종이로 줄을 엮고 전구를 달고 하얀 솜도 구해서 붙였 다. 이제 제법 분위기가 올랐다.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가 왔다. 기다리던 흰눈이 펄 펄 펄 연병장 지붕위로 휘날리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징글벨 소리는 없지만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는 다 마련 되었다. 마지막으로 샴펜 축제를 벌리자...! 샴펜이 터지고 불켜진 꼬마전구들이 생글생글 웃음을 짓는 크리스마스가 시작되었다. 우 리는 다같이 샴펜을 터뜨리고 징글벨 징글벨 노래를 함께 불렀다. 별로 재미있는 일이 없는 삭막한 내무반에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 우리들의 군대시절을 추억하는 일을 만들었다. 물론 순전히 이 두칠이의 아이디어로 그들과 같이 만들었다. 그런 크리스마스의 추억, 제대 후에 사회생활 하면서도 잘 가져보지 못했다. 우리 집 아이 들 어릴 적 집에서 작은 트리를 만들어본 기억을 제외하면 말이다. 가을이 깊어가니 겨울도 멀지 않았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있다. 상점에서 옮겨온 용품들이 아닌 내 손으로 크리 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볼 일이 다시 있으려나.......? 그럼 꿈이라도 가져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