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손가락이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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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도 남보다 뒤떨어지는 분야가 있다면 그림 그리기와 손으로 만들기이다. 그림 그리기는 그래도 낳은 편이다. 허나 이 꾸미기와 만들기, 즉 손으로 하는 일은 정말 잼뱅이 이다. 발이 절뚝발이가 아니라 손이 절뚝손이다. 그러니 이 자판기 치는 일도 완전히 오차 투성이를 두, 세번씩 고쳐서 완성하고 있다. 다행이 열 손가락으로 치니 독수리 타법은 아니 지만 새끼손가락의 움직임은 차마 곁에서 애처로워 바라보지 못할 노릇이다.
군장이란 평상시에는 관물대에 보관하는 피복과 장비를 말한다. 그러나 출동을 하면 그 군장들은 배낭 속에 집어넣고 가야할 물건들이다. 그래서 군장을 꾸린다. 군대란 출동을 하 면 마치 배낭 메고 여러 날 산에서 먹고 자는 산행과 같다. 덮고 잘 모포와 피복 그리고 밥 을 지어먹을 식기인 반합, 야전에서 집 지을 텐트, 비를 피할 판초우의 그리고 전투를 수행 해야하니 무장을 해야한다. 대검, 소총, 수통, 탄띠, 탄환, 철모, 군화까지 신고 위장 망을 옷 위에 착용하면 출동준비가 끝이 난다. 이런 훈련을 수시로 받는다.
"군장 꾸려 10분 이내에 연병장에 집합!"
아! 나는 이 명령만 떨어지면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왜냐고? 나의 절뚝손이 문둥 이 같은 손가락이 군장을 꾸리려면 제대로 움직여 짐을 싸야 하는데 마음은 바쁘지 손은 안 놀지, 손이야 제대로 다 제 기능을 하지만 내 능력과 재능이 아무리 빨리 꾸려도 나는 제 시간에 연병장에 못 나가는 꼴이 되고 말았다. 몇 번을 낙오를 하자 우리 분대에서 이 군장 을 꾸려 집합이면 모두들 내 행동을 주시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날 도와줄 여력과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어디 노나? 그들도 부지런히 그들의 군장을 꾸려야 하니 말이다. 배낭이 제일 문제 거리였다. 배낭주위에는 고리가 여럿이 있었다. 이 고리들을 잘 이용하 면 짐이 흩어지지 않고 단단히 고정되고 모든 물품들이 가지런히 자리를 잡아 모양이 잡히 게 된다. 그래야 구보를 할 때나 전투 중에 군장이 풀어지지 않을 것이다. 전쟁 영화 보면 군인들 한 녀석씩 다 등짐을 지고 다니는 걸 보았을 것이다. 이 등짐이 바로 배낭이고 군장 이다. 차라리 풀지 말고 충동 때마다 그냥 지고 나서면 안될까? 풀어야하고 또 꾸려야하는 데 도무지 손가락들이 도와주질 않아 늘 늦장이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내 옆자리가 바로 배 일병이었다. 그는 나보다 한 6개월 고참이었다. 그는 맑은 얼굴을 하 고 있었다. 생김이야 합천 촌넘 스타일이지만 그런 대로 우리분대에서는 말이 통하는 소위 먹물을 먹은 사람이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뜻을 받들며 산다는 흥사단 학생 간부였다. 그 러나 이처럼 오직 훈련과 군기와 계급만이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그는 묵묵히 자기 일만 열 심히 하고 말없이 사는 3년을 때우는 병사였다. 그런 그는 합천이 고향이라 시골에서 농사 도 짓고 했다며 나의 부족한 손장난을 가끔 도와 주었다. 그는 군장을 재빨리 꾸리고는 내 가 더듬거리고 있는 배낭을 받아서 손쉽게 완성시켜 주었다. 그는 마치 하늘에서 날 도와주 려고 나타난 천사와 같았다. 나도 천천히 시간을 주면 여러 번을 하는 군장 꾸리기이니 하는 방법은 익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문제였다. 출동시간 내에 집합하여 군장 검사를 받는데 나의 군장은 불합격품이었다. 반듯하지 못하고 끈이 풀어지고 하여 못 꾸린 군장의 샘플로 진열되곤 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내 손가락이 유죄인 것을. 내가 요령을 피운 것도 아니고 군기가 빠진 것도 아니고 마음이 콩밭에 간 것도 아니니.... 우리 배 일병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훈련시절 참으로 고 생 많이 했을 것이다. 그의 잠자리는 내 곁에서 잔다. 그는 그 작은 군대 베개를 못 베고 잔다. 그의 버릇이 그 렇다. 취침점호를 취하면 모두 내무반에 침구 펴고 나란히 누워서 점호를 받는다. 반드시 베 개를 베야한다. 그는 안 베고 자는 베개를 점호시간만 베고 나면 재빨리 머리에서 꺼내 하 나 더 베고 자라고 나에게 주곤 했다. 고침단명(高枕短命)이라고 하면 그는 오래 살 사람이 다. 나는 반대이고 ....
제대 후 그의 고향 합천 야로에서 만났다. 부농의 아들이었다. 건축을 전공하여 지금은 안 동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참 못 만난 지 오래 되었다. 한 이십 년쯤 되었다. 한해 한두 번 전화나 편지 왕래를 하는 정도뿐이다.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인간사에는 있는 일이긴 하나 그 동안 마음먹었던 일, 그를 만나는 일은 올 가을에 이루어 질 것이다. 왜냐면 올 가을에 내 오래된 여행계획에 안동 지나 풍기에 부석사를 방문하기로 되어있기에 가는 길에 좀 더 시간을 잡아서 그를 만나고 올 계획이다. 그 동안 전교조 활동하다 해직도 당하고 지금도 전교조 경북지부 사무총장을 한다나? 참 반골은 어디가도 반골이구나.... 이 다음에 그 선배 고참 때문에 군대서 우리 단체 기합먹은 사건 올려 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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