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불에 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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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병 고생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웃기는 야그 같은 내무생활 이야기 한편 올려보자. 졸 병, 졸병도 세월이 지나면 고참이 되는 것이다. 며느리 늙으면 시어머니 되고, 아들도 자라 면 아버지 되듯이...
예비중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방어진 해안부대의 내무반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때 우리 고참 중에 임병장이라고 아주 괴짜가 있었다. 술도 고래고, 목소리도 고래고, 행동도 거침이 없었다. 가끔씩 술이 고프면 집합을 시켜서 그렇지, 평소에서 마음씨 후덕한 아저씨 같은 입 가에 항상 웃는 모습을 달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가을날 일요일 우리들은 내무반에서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주변 청소를 마치고 아침 프로 시청을 하는 사람, 침상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 행정반에서 잡담을 하는 사람 제 각각으로 쉬고 있었다. 그 때 우리 임병장께서는 내무반 침상에서 돌아앉아 면도를 하고 있 었다.
"야! 운전병, 휘발유 한 통 들고 와라!"
고참 임병장은 면도를 하다말고 쓰리퀘타(3/4톤 트럭) 운전병을 불렀다. 운전병에게 유류 창고에서 석유도 아니고 휘발유를 들고 오라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임병장은 아주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인상이 완전히 썩은 무 씹은 얼굴이 되어 사사건건 신경질만 부리고 다녔다. 그리고는 시도 때도 없이 어느 장소에서도 막 긁어 대는 것이다. 그놈의 속이 어찌된 것인지 자다말고도 사타구니 긁는 소리와 신경질 소리에 내무반이 썰렁한 공기가 돌곤 했다. 임병장이 바로 우리 내무반에서 제일 고참으로 제대 두 세 달 남았으니 내무반장을 하고 있었다. 몰래 어디 방어진 사창가에 다녀 온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그 사타구니에 옴벌레 같 은 세면바리가 옮아왔던 것이다. 이 벌레는 음모의 모공에 기생하기에 좀처럼 퇴치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임병장의 가려움의 이유는 바로 이 세면바리가 범인이었다만 그도 우리 도 의무병도 치료 방법을 몰랐다. 이런 병은 분명 성병인데 임질 매독처럼 군대 의무실에서 관리하는 병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 전날 밤새도록 가려움에 음모를 다 뜯어내고 난리 부루스를 쳤건만 그놈들이 살 속에 서 기생하는 한 가시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 조용하고 한적한 휴일 날 오전시간에 임병장은 아랫도리 내놓고 음모를 몽땅 제거하여 이놈의 세면바리와 한바탕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모 면도를 마친 그는 세면기에 담아온 휘발유를 음부에 솟아 부었다. 모공(털구 멍)에 숨어사는 가는 실밥 같은 기생충을 손으로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낼 수 없었던 그는 약물전법을 사용키로 마음을 먹었다. '휘발유 전법' 휘발유를 살포하여 일시에 전멸시킨다는 최후의 선전포고를 하고 즉각 시행을 했었다.
내무반이 화들짝 뒤집힌 일은 바로 그 다음에 일어났다. 훌러덩 벗은 몸이 순시간에 하늘 로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내무반이 떠날 듯이 고함을 지르며 침상 위를 막 뒹굴었다. 다시 일어서더니 혼자 뛰기 시작했다.
"불이야! 불! 아이고 불두덩에 불이야!" "불, 불, 불..."
우리는 불이라는 소리에 정말 불알에 불이 붙은 줄 알았다. 불은 붙었으나 보이지 않는 불이었다. 칼 면도한 부드러운 속살, 깎인 모공사이에 핏빛이 비쳤을 것인데 그 곳에다 휘발 유를 뿌렸으니 살에 불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는 내무반 침상 위를 돌다 마침 내 연병장 옆 소나무 숲길을 뛰기 시작했다. 맨발에 맨몸으로 부시맨처럼 알몸이 되어 덜렁 덜렁 거리며 큰 소리로 구령을 부르며 혼자 뛰었다. 우린 한바탕 바라다보았다. 마치 강 건너 불 구경한다는 말처럼 구경만 하다 배를 잡고 배꼽을 쥐고 웃었다. 사내들 만 사는 세상이라 아무 흉이 안되고 지나갔다. 다행히 그 후로 세면바리는 없어졌는지, 그 일을 본 우리 돌팔이 의무병이 어디서 정보를 구해와 치료를 해 주었는지 뒷말이 없어졌다.
그 세면바리(?)란 기생충은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묘한 일인 것은 그놈은 머리털 속에 도 안 살고, 수염 속에도 안 살고 꼭 음모에만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녀 공용이다. 성병 의 일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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