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내 고생은 다 개똥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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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동쪽에 큰 산 하나가 놓여있다. 이 산 위에는 우리나라 전신전화용 마이크로웨이 브 송신타워가 솟아있다. 일본으로 송출하는 국내 최대의 통신시설이었다. 지금은 위성으로 중계를 하니 그 용도가 줄었을 것이다. 동해바다와 울산시를 가로막은 이 산 이름은 舞龍山 이다. 용이 춤을 추는 산이라. 우리고장 마산에는 舞鶴山이라고 있는데 무룡산과 무학산 어 느 산세가 세나? 무학산도 자락이 크나 이 무룡산이 거칠고 더욱 험하다. 그 산은 우리 부대가 매주 한두 번씩 수색을 가야 했다. 한 철에 한번쯤이면 되지 무슨 매주 가느냐고 물을 일이긴 하다. 그러나 군대 일이란 바로 하잘 것 없고 쓰잘 때 없는 일 로 하루를 때우고 일년을 보내는 곳이다. 이유는 혹 간밤에 해안으로 침투한 간첩들이 은거 지로 자고 있는지도 살피고 훈련을 받는 우리 중대 병력들이 훈련용 산악 행군 및 수색 훈 련을 겸하여 그 수색을 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울산공업단지의 중요성과 이 송신타 워의 보호는 군의 주요 임무이기도 하다.
그 해 여름 우린 부대를 출발하여 무룡산으로 행군을 했다. 산길을 따라 걸어가도 힘든 길을 군가소리가 작다느니, 오와 열이 안 맞는다느니, 눈알에 힘이 안 들어있다느니 하는 말 도 아닌 핑계로 오리걸음, 낮은 포복, 높은 포복으로 비포장 흙먼지 길을 기었다. 완전군장 에 실탄까지 메고 철모 쓰고 기어가는 군인을 그대들이 상상이나 할 수가 있다면 이 글을 쓰고 그 시절 기합 받고 기던 일을 불평 없이 영광의 기합이라고 여겨드리리다. 감히 말하건대 그대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힘들고 고단한 훈련이었다. 낮은 포복으로 마 른 먼지가 보얗게 쌓인 신작로에는 앞서 기어간 전우가 흘린 땀들이 떡고물이 되어 흙덩이 와 같이 밀리는 그런 짐승의 삶을 어찌 상상할 수가 있단 말인가? 목이 마르고 숨이 차고 콧구멍 입 주위에는 흙먼지가 하얗게 묻어나는 모습을 어찌 본 적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 무더운 한 여름을 난 졸병이라고 AR사수를 임명받았다. 분대는 9명으로 구성되어있고 그중 1번 분대장부터 9번 부분대장 그 사이에 유탄 발사기 사수와 자동화기인 AR사수가 있 다. AR사수는 그 무거운 AR를 메고 탄창을 수십 개 허리와 어깨에 차야했다. AR사수는 졸 병이고 AR부사수는 고참이 한다. 어찌 이런 일이 있냐고 사수가 졸병이고 부사수가 고참이 냐고...? 부사수는 칼빈 소총을 메고 다닌다. 총이 가벼운 칼빈은 부사수 몫이니 그렇다. 나 는 그 무거운 자동화기 AR사수를 하였다. 그걸 메고 기합을 받았으니 어찌 견딜 수가 있었 겠는가? 그러나 우리들은 다 견디었다, 그 시절을. 그렇게 산을 올라 산마루에 오르면 배식차가 따라왔다. 꿀맛인들 이렇게 맛이 있을까? 정 말이지 그 시절 군대 밥맛은 상상할 수도 없다. 반찬 타령은 배가 덜 고파서 하는 깨춤이었 노라고나 할까. 식수가 공급이 안되어 어느 산길에서 길가에 물이 흥건히 고이는 곳을 파서 흙탕물로 목을 적신 적도 있었다. 산마루에서 중대원들은 행대로 한 줄을 지어 산 아래로 개미 한 마리 샐 틈 없이 수색을 하여 내려온다. 산길이 있는가 없는가는 질문이 아니 된다. 간첩을 찾는 일인데 길이 없고 험한 곳을 수색해야 하지 않는가? 바로 길을 두고 메로 가는 일이 수색이다. 바위 낭떠러지 가 나오면 알아서 우회를 하고 벼랑길 험한 길도 다 건너고 흩어져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간첩이라고 나타나면 어쩔까하는 무서움? 이 분풀이를 할 수 있는 그런 상대라도 나왔으면 좋으련만 한 놈도 없었다, 억울하게도. 고향생각 부모님생각 애인생각은 행복한 고민이어라. 아무 생각도 아니 났다. 그저 힘들고 고단하니 좀 쉬어 가면 좋으련만. 그것이 소원이었다. 온몸은 땀과 먼지로 번벅이 되었으나 다만 하얀 치아와 까만 두 눈만 빤짝이는 산짐승 같은 우리들이었다.
그 여름날 더위에 우린 배급되는 군대 건빵의 맛을 익히며, 별 사탕의 달콤함에 한을 녹 여 먹던 내 스무 살 청춘이었다. 그 무룡산을 넘으면 정자로 간다. 정자에는 그 산간벽지보 다 더욱 벽지인 정자에 지금은 왜 그렇게도 많은 러브호텔들이 해안에 즐비한가! 참 격세지 감이로다. 무룡산의 한이여, 별 사탕의 유혹이여. 이제는 러브호텔의 유혹이여............. 내 고생은 다 개똥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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