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 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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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과 술에 대한 애환을 적어보자. 술에 대한 나의 철학이랄까 사랑은 나의 명정기(酩酊 記)에 이미 올려놓았다. 그런 술을 부대의 영내에서는 절대 마실 수가 없었다. 몰래 먹기는 하나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못 마신다. 술은 즐거워도 마시고, 괴로워도 마시고, 어울려도 마 시고, 혼자서도 마시는 게 술 아니던가. 그런 술을 신병 훈련소 입대 후부터 마실 기회가 없 었다. 그러니 몇 달 동안 단주(端酒)를 한 것이다.
군인은 야간에 교대로 보초를 선다. 전방이나 해안부대는 야간에 철책이나 해안선을 지키 는 게 임무이지만 그냥 후방부대는 어디든 간에 부대 외각 초소에서 보초를 서야한다. 이 보초는 주간 조와 야간 조가 있으나 주로 야간 조에 경비를 강화해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바로 졸병 시절 어느 날, 그 연암의 예비대 야산에 위치한 우리 부대 외곽보초를 서게 되었 다. 동산 가운데 부대건물이 위치하고 사방으로 소나무 숲이 우거진 언덕이 아래로 솟아져 있었다. 그 언덕 8부 능선 참호에서 야간 근무를 2시간 교대로 자다 일어나서 나간다. 그날 은 한밤중이 아니라 자정 전 시간이었다. 물론 완전무장에 실탄까지 지급 받아 근무를 나섰 고 참호에 있던 초저녁 조와 교대를 했다. 나는 불혓듯 술 생각이 간절하였다. 언덕 아래 개울을 건너면 주막집이 있었다. 고참과 선 임하사들은 가끔씩 내려가던 집이다. 저곳까지만 가면 술이 있는데 그 시절 술이란 막걸리 가 대중주였다. 그 막걸리를 마시고 싶었던 것이다. 총과 탄띠와 철모를 풀밭에 숨겼다. 참 호에 두면 혹 순찰이나 교대 조에게 총이 보이면 안 되는 일이다. 군인이 총을 버리면 이는 바로 남한산성행이다. 총을 떨어뜨려도 기합인데, 총은 생명인데, 총을 버린다는 것은 군법 사건이기 때문이다. 저만치 깊은 풀덤불에 숨기고 수통만 들고 살금살금 인근 참호를 피해 하천을 건넜다. 좋게 생각하면 술 사러 나간 것이고 나쁘게 보면 탈영병이 되는 것이다. 그 것도 근무지를 이탈한 탈영이다. 주막에는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방안에는 사람 소리가 들리었다. 그렇다고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일이 아니다. 나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이제는 재빨리 술을 사서 되돌 아가야만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는 셈이다. 주모가 나오더니 벌써 내 차림과 계급장을 보고 는 내가 온 이유를 아는 것이다. 그녀는 방문을 얼른 닫아주었다. 아마 그 방안에도 우리 부 대 병사들이 있었나보다. 지금 시간에 여기 주막에 와서 술 마실 사람은 선임하사들 일거다. 수통 한 통 막걸리를 채우고 대접 한 사발 선 채로 마셨다. 이가 시리도록 시원한 막걸리 맛을.
아! 아! 어찌 잊으랴! 6.25 노래가 아니라 그 술맛을 어찌 잊으리까. 수통 하나 채운 술의 양이 얼마인지 지금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미제 야전용 수통 하나면 반 되는 넘을 것 인데 알 수가 없구나. 밤바람이 찬 이른 봄날 소나무 그늘사이로 별들만이 총총한 참호 속 에서 나는 수개월만에 처음 술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음미라고 제법 쓰니 그런가한다만 그 순간에 음미가 어디 있었겠느냐. 막 들이키고 순찰이라도 아니 와서 근무시간이 지나고 저 내무반 침구 속에서 꿈나라로 가는 게 꿈이거늘. 다행이 이 첫 번째 시도, 나 혼자 몰래 시 도한 술 사러 탈영한 사건은 완전범죄가 되어 죄와 벌이 일치하지 못한 사건이 되었다.
군대 생활 3년 동안 술은 참으로 많이 마신 시기이다. 군대에서 술은 금기사항이다. 그러 니 더욱 몰래 숨어서 마신다. 우리같이 해안초소 근무자들은 술이 至近에 있고, 술 마실 일 을 자꾸만 만들어 고참들은 술로 살았던 해안 생활이었다. 그리고 왜 그리도 술이 그립고 좋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못 마시게 통제를 하니 더욱 그립고 애틋한 게 아니었던가 싶 다. 이 사회는 누가 통제하지 않는데 본인 스스로 절제하고 관리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말이다.
그런 의미로 오늘 저녁에는 네온등 찬란한 주막집에서 젓가락 장단으로 한잔 거나하게 마 셔볼까!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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