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추상화(抽象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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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짙은 어둠이 잠재되어 있는 시간 그는 눈을 떴다.
방안은 아직도 어둡다.
현실의 추잡한 소음이 창을 통해 당당함으로 들려온다.
그의 머리맡에는 찌그러진 맥주 캔들이 즐비하게 누워져 있다. 그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일어났다.
벽에 걸린 시계가 3시를 지나 달리고 있었다.
그는 창 아래에서 들려오는 추잡한 소음을 확인하기 위해 창 쪽으로 다가가
야윈 손으로 창을 열었다.
차가운 한줄기 바람이 세차게 밀려들어온다.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밝은 곳에 서점이 있고, 보기에도 멋진 검정색
자가용이 다소곳함으로 주차되어 있다.
어둠을 사이에 두고 여자와 남자가 서로 마주보며 거친 음성으로 서로를
잡아먹을 듯 어르릉 그린다.
밤색 자켓에 긴 생 머리의 여자는 조금은 밝은 노란 색의 염색을 하고,
짧은 스커트에 긴 부츠를 신고 있으며 조금은 풍만한 가슴을 가졌다.
그리고 조금은 가는 다리를 가졌지만 결코 아름답거나 지적인 분위기는
갖지는 아니다.
남자는 검은 청바지에 가죽 점퍼를 입고 검은 모자를 쓰고 늘씬한 몸매에
훤출한 키...무엇보다 젊었다.
"그래, 나 42살이다. 어쩔래?" 여자가 말했다.
"누가 뭐라고 했나?" 남자가 말한다.
언 듯 보기에도 두 사람은 불륜관계였다.
그들은 서로 서로에게 대해 상처를 주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여자가 담배에 불을 붙여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아주 깊게 빨아 마신 후 차가운 공기 속으로 짙은 한숨과 함께 뿌연
연기를 토해낸다.
계속되는 거침 속에 시간이 흘렀다.
"너가 날 무시했잖아..." 남자가 말했다.
"왜 그라는데 나한테 왜 이라는데..." 여자가 말한다.
여자는 답답한지 지갑으로 자가용 지붕을 때렸다.
그리고는 집 대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여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인다. 조금 후 남자가 여자 쪽으로
다가온다.
이젠 심한 몸 동작과 상스러움까지 서로에게 퍼붓는다.
그는 그렇게 창 아래 펼쳐지는 풍경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대문에 가려져 두 사람의 모습이 잠시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적막이 아주 잠깐동안 머물다 사라진다.
짧은 시간이 흐른 후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택시를 잡으려는 듯 가로등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거친 어투로 상스러움을 토해낸다.
여자가 남자 쪽으로 다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남자의 목을 감싸 안았다.
여자의 어깨가 흐느낌으로 흔들린다.
"너 나한테까지 이렇게 구차한 모습 보이지 않아도 돼..."
젓은 여자의 음성이 부드럽게 남자의 귓전으로 전해진다. 남자는 아무런
말없이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꽂은 채 멍하니 서있다.
그때 한 대의 경찰차가 순찰을 돌며 내려온다.
남자가 여자를 살짝 떼어내고 몇 발짝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담배를 한가치 물고 불을 부친다.
몇 번이고 연기를 들이 마셨다 내어 품 곤한다. 급기야 자신의 발아래
던지곤 밟아 으깬다.
그리고 여자에게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안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렇게 연극의 한 배경처럼 풍경이 사라졌다.
그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거리를 한동안 바라본다.
그리고 창문을 닫았다...
그는 벽으로 다가가 기대앉았다. 겉잡을수 없는 그리움으로 그녀가 보고
싶었다.
그는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띠리릭~ 띠리릭~
계속되는 신호음만이 귓전을 배회한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마도 그녀는 남편 곁에서 잠을 자고 있나보다.
그는 고개를 떨군 채 곁에 놓인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부쳤다.
손가락 사이로 타들어 가는 담배를 바라보며 조금 전 창 아래의 풍경이
자신과 그녀의 풍경임에 답답함이 가슴깊이 억눌려옴을 느끼며 또 하루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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