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퇴색된 계절의 약속.....(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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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에 모든 풍경이 정지된 무언의 세계...
그는 그곳에 한 풍경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자신을 의식하며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한순간 그 아름다운 풍경은 크리 스탈 조각상이 그려낸
차가움으로 변해 바닥위로 심한 비명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개찰구 옆에 가만히 자리잡고 있는 현금지급기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L이 있었고, 두 사람은 아주
다정한 미소를 교환하며 다가 쓰고 있었다.
그는 마치 불륜의 한 장면을 목격한 남편처럼 거친 질투심으로
자제력이 분실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방관자처럼 방치하며
그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아늑하고 따뜻한 풍경은 백지처럼 사라지고
그곳에는 자신과 그녀 그리고 L만이 존재 할 뿐 이였다.
그녀와 L은 무슨 말을 나누곤 돌아섰다.
그리고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당혹한 몸짓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몸짓에는
어색함이 영역했다.
그의 얼굴은 갑자기 피의 흐름이 통제된 듯 창백했고 일련의 배신감으로
굳어져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 그는 조금씩 귓가에 들려오는
풍경들의 소음과 L의 나지막한 음성이 마치 메아리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가지런한 치아를 보이며 L은 특유의 미소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응, 그래 넌 어때?"
그는 일말의 떨림과 어색함으로 악수를 하며 무의미한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던 그녀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
로 말했다.
"우연한 만남이야..."
그 말이 왜 그렇게 그를 한없이 초라하게 느끼게끔 했는지 그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럼 난 그만 가야겠다. 다음에 보자."
그리고는 그는 숨막히는 그 망각의 시간 속을 허우적거림으로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두 다리는 진공상태의 허공을 걷는 듯 아주 부자연스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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