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일어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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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반구에 위치한 이곳 씨애틀에 먼동이 트는 시간은 아침 7시쯤 이다.
아침 8시 좀 넘어야 내가 아침산책을 나서는 Meadowdale Creek Trail에 어둠이 거치는 것이다.
편도 1.25 마일이 되는 이 산책길은 줄곧 비탈길로 태평양 해안으로 연결된다.
아침 8시 쯤이면 딱따구리들이 아침밥을 먹는 시간이다.
영어로 Woodpecker 라고 불리는 이 새는 고향에 서본 딱따구리와는 크기가 훨씬 다르다.
이곳에 Woodpecker는 아주 왜소(矮小) 하지만 머리 정수리에 빨간 관(冠) 모양의 점이 완연한 것에는 다름이 없다.
항상 그렇게 하듯이 이 길은 내가 염불공양(念佛供養)을 하는 길이다.
웅얼웅얼 염불을 하며 내려 가다가 딱 딱 딱.... 딱따구리의 아침 먹는 소리가 나면 나는 염불소리를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어느새 그 소리는 목탁소리로 내 마음의 공간에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딱 딱 딱 ...또로록...
딱따구리가 치는 목탁소리에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얽히어 살던 하루의 먼지가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목탁소리가 귓전에서 멀어져 간다.
나무등걸들이 쓰러져있는 구비를 돌아 굵은 자갈들을 씻으며 질주하듯 흐르는 물소리에 아침잠을 깬 새들이 부산을 떨며, 간밤에 꾼 사랑꿈 이야기를 조잘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무성염불(無聲念佛)로 잦아들었던 염불을 다시 웅얼거리며 급히 질주하는 물을 앞세우고 평평해 지기 시작하는 길을 따라 내려간다.
Creek에서 무언가 펄떡 뛰며 물장구를 친다.
무엇일까? 산란(産卵)을 위해 서서히 오르고 있는 연어들이다.
여기 한 마리, 저기 두 마리....
얼마나 먼길을 힘겹게 왔는지 몹시 지쳐 있고, 얼마나 부데꼇는지 몸에는 희끗희끗 상처 투성 이다.
연어의 행렬, 그 장엄한 행렬 앞에서 잠시 숨을 죽이고 서 있다.
3, 4년전 이곳에서 산란돼 바다로 나가 북태평양을 한바퀴 돌고 성어가 되어 자기가 태어난곳을 찾아와 알을 까는 것이다.
그들이 자기가 태어난 조그만 Creek을 찾아 올 수 있는 것은 어느 해양학자의 말에 따르면 그들의 코에 있는 케모센소리(Chemosensory)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고향의 냄새를 따라 찾아온다는 것이다.
더러는 알을 까고 죽어 널브러져 있는, 삶과 죽음의 장엄한 모습이 펼쳐져 있다.
새로운 삶을 위해 죽음에 임하고 있는 연어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철모르는 치어(稚魚)들이 광활한 바다로 나갈 것이다.
이렇게 태어남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굴레를 아무 의심 없이 그들은 돌고 있는데, 생노병사 그 윤회를 벗어나 보겠다고 오늘도 나는 산책길에서 부처님을 불러보는 것이다.
어느새 내 발길은 광활한 바닷가에 이른다.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저 편에서 해는 떠올라 광대무변한 지혜의 빛을 광활한 바다 수평선 위에 펼쳐 놨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淸淨法身毘盧遮那佛)의 진리의 바다여!
풍랑이 쉬고 번뇌가 끊어진, 과거, 현재, 미래, 삼라만상이 비추어 지는 바다여!
서둘러 흘러 내려온 시냇물이 바다와 만나는 부근에 갈매기들이 좌선을 하고 있다.
그들의 공안은 백천귀해 동일함미(百川歸海 同一檻味)- 모든 시냇물이 바다에 이르면 다 한가지 짠 맛 뿐일세- 갈매기들은 이미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들어 있고, 나는 합장한 채로 멀거니 서 있을 뿐이다.
멀리 포구를 빠져나가는 화물선에 현대(Hyundai)라는 상호가 가물거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내 고향 사람들이 사는 서쪽을 향해 다시 한번 합장한다.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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