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살생(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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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손에 익은 솜씨로 썩 그어 내렸다. 검붉은 피가 송알송알 흰 살 틈에서 방울져 나왔다. 이런 일에 이골이 나 있어서 인지, 잘 벼려진 칼로 득달 같이 각을 떠나갔다. 한쪽 죽지가 뚝 떨어져 나갔다. 진작부터 칼 솜씨 좋은 사내 옆에 바싹 다가서서 거드러대던 영감님이 다른 한쪽 죽지가 잘려나가는 것을 보자 입가에 해죽이 웃음을 띄었다. 양쪽 죽지를 삽시간에 절단 당한 홍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특유의 입 모양에 비웃음을 머금은체 스테인레스 철판으로된 고기손질대(臺)위에 넓죽이 늘어져 있었다.
저녘 노을에 칼에 뭍어 있는 홍어의 피가 번쩍 반사 됐다. 짭짤하게 저려진 바닷바람이 비린내를 거둬 갔다. 내장이 흘러나온 몸통은 비위를 뒤집을 만큼 끔직 했다. 사내는 내장을 칼끝으로 찍어 들어서 조금전 까지도 홍어가 놀던 검푸른 바다 속으로 헌신짝처럼 내 던졌다. 저녘 먹이로 무얼 잡아먹겠다고 밀물을 따라 에드몬드 앞 낚시터까지 멋모르고 딸아 들어온 홍어가 어이없이 삶의 끝장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 홍어는 30여 파운드가 넘는 큰놈이었다. 그렇게 크기까지 수 없이 많은 작은고기를 통째로 삼켜왔을 것이다.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가 되는 이치에서인가, 홍어는 마침내 다른 것들의 먹이가 되버린 것이다. 사내는 먹음직스럽다는 듯이 발려낸 살덩이를 번쩍 들어 돌리면서 살펴보더니 쿨러 박스에 담았다. 그리고 다른 한 쪽지는 아까부터 군침을 흘리며 옆에 바싹 붙어 있던 영감님한테 내밀었다. 영감님은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영감님은 그날 저녘 몇몇 이웃 친구들을 불러 뜻밖에 얻은 홍어회를 치고 소주잔도 곁들여가며 즐거웠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큰 홍어를 낚아올린 그 사내가 부러웠다. 오래 전 나도 친구를 따라 낚시를 해보았지만 제대로 고기 한번 낚아 본적이 없다. 잡을 줄 몰라서가 아니라 잡히지가 않는다. 언젠가는 이 지역 물때와 물골을 훤히 알고 있고 소위 고기가 잘 잡히는 휫싱스팟(Fishing Spot)을 남달리 잘 알고 있는 고기 잡는데 도가 텄다는 작사 한 분을 따라 낚시를 간 적이 있었다. 그와 똑같이 낚시를 드리워도 이상야릇하게도 웬일인지 나한테는 망둥이 한마리도 걸려들지 않는 것이었다. 매번 허탕을 치는 나를 민망하게 쳐다보는 작사의 눈길을 슬그머니 피하곤 했다. 고기 잡는 도사와 함께 가도 한 마리도 못 잡는 내 낚시 실력(?)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 그후 어느 좌석에서 재수가 옴 붙은 내 낚시 속사정을 털어 놨다. 그랬더니 대뜸 "부처님 믿으면서 살생을 하려니 될 법이나 해! 그러니 고기가 않 물지...." 나는 그후로 낚시와는 연때가 맞지않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게 됐고 그저 가끔 저녘 바람을 쐴겸 낚시터를 서성거리는 구경꾼의 신세가 된 것이다. 그날도 낚시터에 나갔다가 홍어의 도살현장과 맞닥뜨린 것이다. 약육강식하며 살아왔던 그 홍어는 인과응보, 자작환수라고나 할까, 수 없이 지어온 그의 업보(業報)를 몸을 난도질 당하고 뜯겨 먹힘으로서 치뤄낸것이 었다. 홍어의 죽음은 결코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 수많은 작은 고기들의 배를 채워 줬고, 잡은 고기를 혼자 챙기지 않고 영감님께 한 죽지를 선뜻 주던 그 사내의 너글너글함, 홍어회를 안주 삼아 흥겨러웠을 영감님의 친구들, 그 홍어는 이렇듯 살신(殺身)하여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를 베푼 것이다. 왜 모든 죽음은 살아있는 많은 다른 것들의 삶의 연장에 보탬이 되어야만 하는지? 그런 생각을 해보며 터벅터벅 낚시터를 빠져 나오는데 귓전에 다시 울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부처님 믿으면서 살생을 하려니 될법이나해!" 나는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을 존중한다. 비록 곤충 까지도. 내 몸 간수 하느라 육식을 해야하는 이율배반을 져지르면서.....
그래도 나는 조금씩 조금씩 부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한다.
라디오 한국 에 有想 기고 (2/4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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