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똥 구린내를 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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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도 내리지 않으면서 하늘이 낮고 좀 퀴퀴하게 덥다.
이런날이 제일 고역이다.
차라리 비가 콸콸 쏟아지든가 하늘 맑게 덥든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동네 흐린날은 코가 좀 많이 괴롭다.
십년전에 이 도시에 살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여기는 완전히 시골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
농사 짓는 집이 몇채 있었을뿐 별다른게 없어서
이쪽으로 오는 일도 드물었고 또 이쪽 동네에는 나환자 촌이 있어서
사람들이 좀 꺼림직하게 여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십년이 지나 이곳에 다시 오니
관공서도 번듯하게 지어져 있고 국내굴지의 유통업계인
할인점도 진출해 있고 언덕을 잘라 만든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나는 산이나 강물 가까이 사는게 좋아서
황악산 쪽에 살고 싶었지만 것두 여의치 않았고
작은 못이 있는 변두리에 살고 싶었는데 거기두 집이 없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집이 이거 하나 있어 앞뒤 가릴 처지도 아닌터라
불쑥 계약하려 마음 먹었는데
주변 사람들 말이 그 동네는 공기가 나쁘다는 거다
시골인데 공기 나쁠게 뭐있을까 물으니
근처에 양계단지가 있어 닭똥구린내가 많이 난단다
계약하러 온날은 아주 찌는듯한 팔월이라
남편하고 내가 일부러 멀리까기 걸어 가 봤어도
닭똥냄새는 그리 나지 않았고 전세로 나와있는 집도 변변히 없어서
그냥 계약을 하고 말았다.
흐린날이면 북쪽바람을 타고 닭구린냄새가 참기 괴로울만큼 심하다
꾸릿꾸릿한 그 냄새는 사람의 마음까지 파고 드는지
오후쯤 되려면 머리까지 아프고 식욕도 떨어진다
사람마음 이란게 이상해서
아파트 단지가 양계단지보다 더 늦게 생겻으니
냄새가 날 것 이라는건 누구든 다 알고 입주한 것이지만
살다보니 어느새 아파트 사람들을 위해서는 양계단지가
저 멀리 어디로 이주를 해야 한다는 그런 말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비도 오지 않고 더워서 창문을 닫고 살지도 못하는
요즘같은 때는 정말이지 고역이다.
닭똥 구린내 라면 나는 아주 진작에 날마다 맡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대학 3학년의 두번째 학기.
그땐 세상이 시끄럽던때라 데모도 잦앗고 휴교도 잦았다
나는 여대를 다녔으니 데모같은 건 할 생각도 않앗지만
다른남자 학교들과 사귀는 여학생들의 경우
남학생들을 통해 나쁜 사상들에 물들 염려가 있다해서
우리학교도 휴교령을 명령받고 학교는 폐쇄되어
아무도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미대학생들의 3학년이란 학기를 마치는 전시회가 열리니
작품에 소홀할 수가 없는 학년이고
전공의 특성상 그림을 그리자면 낮이고 밤이고 온통 어질러놓고 살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집에만 있자니 무료해서 날마다 어디론가 나가다닌 기억은 잇지만
학교가 다시 문을 열게되면 치르게 될 전시회 걱정을 하던차에
친하게 지내던 후배 하나가 같이 작업실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후배의 집은 변두리에서 양계장을 하고 있었는데
예전에 닭장으로 쓰던 공간이 닭이 줄어드는 바람에 비어 있다는거다
우린 거길 개조해서 작업실로 만들기로 합의를 보았다
후배의 아버님께선 우리를 위해
닭들이 먹는 사료포대를 이용해서 도배도 깔끔히 해주셨고
사료트럭을 몰고 고물상에 가셔서 책상이며 걸상도 사다 주셨다.
작업실 오픈에 맞춰 친구들이 거울이며 화분이며 빗자루며
온갖 비품들을 선물해 줬는데
작업실을 열자 우린 유화팔레트를 이용해서 간판도 내걸고
국민학교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서 약간의 돈도 벌었다
바로 옆 닭장에서는 닭들이 구구거리는 소리가 쉴새 없이 들려왔는데
닭들의 푸드득거림
낳은 알을 빼앗기지 않으려 외쳐대는 암탉들 울음까지
시간이 지나면서는 다 정겨워져서 낭만처럼 여기면서 그곳을 드나들었다
도로보다 좀 낫아서 움푹한 느낌이 드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아침저녁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야 했는데
도심의 한가운데를 조금 비켜난 그곳에 그런 양계장이
존재 한다는게 참 신기했었다
수십년도 더 된 옛날일인데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 닭장 화실에서 몇달을 그렇게 지냈다.
그곳의 하루하루는 즐거웠는데
다만 며칠에 한번씩 사흘인가 나흘에 한번씩은 닭장안의 닭똥들을
마당에 죄다 내다 널어 말려 누군가에게 팔았다
닭똥이 화분에 좋다던가 해서 단골로 사가는 업자들이 있었는데
바짝 말려야만 상품의 가치가 있다고 했다
닭똥을 말리는 날은 그 집의 넓은 마당은 물론
작업실 입구까지 닭똥들로 그득찼다.
작업실에는 방문객들이 많아서 수시로 드나들곤 했었는데
닭똥냄새기 고역이었어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리는 친구들이 많앗다
정말이지 온집안 가득 지천으로 널린 닭똥을 피해 작업실까지 오는 길은
요리조리 징검다리 건너듯 멀어서 아차 하는 순간
닭똥으로 신발밑창을 도배 해야했다
사나흘에 한번씩 말리던 닭똥 구린내
사람은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인지
얼마가 지나자 곧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수 있엇지만
그래도 비오는 날에는 좀 곤욕이어서 작업실 문을 꼭 닫고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 들으면서 작업에 몰두했었다
마음씨 좋게 생기셨던 후배의 아버님 후덕하신 아주머니.
4학년이 되어서는 더 멋잇고 깔끔한 곳으로 작업실을 옮겨
혼자 꾸려 나갔지만 가끔씩 그 닭장집엘 들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닭똥구린내를 맡으며 추억어린 얘기를 쓴다
그래도 냄새는 여전히 지독하다
아마도 이동네 닭구린냄새에는 내 추억이 묻어 잇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내가 누구와 결혼하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하게 여겼던 후배
그녀도 결혼을 했고 나도 결혼했다
그녀는 우리 달푼씨를 모르고
내가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잇다는것조차 모를테지만
나는 가끔씩 그녀를 기억한다.
그녀 결혼식에 갔었고
그녀보다 그녀의 부모님을 더 친밀히 느낀 적도 있었는데
지금 그녀는 어디에서 사는지 알지 못한체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제 좀 있으면 닭냄새나는 이집을 떠나 다른곳으로 간다
닭똥냄새와 함께 그때의 기억도 점차 희미해지리라..
2000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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