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럽고 풋풋하게 자라 무성해 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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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딸랑이 운동회 날이어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해서
학교로 갔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적에는 이사하고 난 후 제일 먼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까지 남편하고 둘이 걸어서 가 보는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고 있던 터라 배낭에다 먹을 것을 넣고
손에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 내린 비로 길은 젖어 있었고 간간히 뿌리는 비가 한적한
시골길에 운치를 더해 주었다. 모두들 일찌감치 학교로 갔는지 걸어가는
엄마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 혼자서 걷기에 딱 좋았다.
학교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지만 기차 건널목이 있어서 나는
늘상 불안해 지름길로 다니지 말고 그냥 아스팔트 도로로 다니라
일렀었다. 오늘 막상 걸어가보니 그 길은 그리 위험하지 않았고 건널목에는
차단기가 설치 되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운동회를 마치고 돌아 오는 길. 둘이서 얼마나 느리게 걸어 왔던지
한시간이상이 걸렸다. 길가에는 호박꽃도 피어 있고 누구네집 담장에
누렇게 익은 호박덩쿨들이 널려 있고 모과나무며 감나무며 대추나무에
방울 토마토. 길따라 일궈놓은 고구마밭에는 무성한 덩굴이 뻗은 고구마가
싱싱하게 펼쳐져 있었다. 숨이 차와서 고개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멀리
산자락밑에서부터 온통 푸른 덩굴식물들이 우거져 있는게 경관이 좋았다.
아름다움이란 이런 자연스러운 것이란 생각이 들어 딸랑이 손을 꼭 쥐고
마주 보고 웃었다. 심심해서 나무이파리 따다 하늘로 던진다는
나무 그늘 밑에서 잠시 쉬고 네잎달린 토끼풀을 발견한 친구에게
여전히 좋은 일이라곤 한가지도 생기지 않는다는 딸랑이 이야기를 들으며
오느라 지루한 줄 모르고 걸어 온 길. 초등학교의 마지막 운동회를 마치고
돌아오며 시골에서 살아 본 몇년의 기억이 이다음 우리 딸랑이에게
어떤 추억으로 남을지 생각해 보았다,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들.
특별히 뭔가 남아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애 마음속에 푸르게 자리잡아
싱그럽고 풋풋하게 자라 무성해 지리라 생각된다.
2000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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