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서 우리딸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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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딸아이 소풍 가는 날이라고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앞동네에서 들려오는 새벽닭 울음소리도 정겹고
아직 체 밝지 않은 어둠도 좋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밥을 했다.
물도 싸고 간식도 싸고 이것저것 가방에 챙겨 넣고 있으려니
일어난 딸아이 말이 밖에 비가 온다는 것이다. 도시락 싸는 것만 바빠
날씨가 어떤지 보는 것조차 잊고 있었더니 비 오는 날 소풍이라니
멀리 경주까지 가는 소풍 재미가 덜 할껀 뻔한 일이다.
비가 온다니 음식들이 젖을까봐 다 싼 가방을 풀고
커다란 비닐봉지에 준비물들을 몽땅 넣고 다시 가방을 쌌다.
차가운 음료수를 냉동실에서 꺼내는 아이에게
식힌 보리차물을 음료수병에 넣어 들려 보냈다.
어슴프레한 가운데 아이를 보내고 돌아서니 장식장위에 놓여진 돈이
보인다. 비 온다며 소동을 피느라 용돈 준 걸 깜짝 잊고 놓고 갔나보다.
소풍을 경주엑스포로 간다니 세계 여러나라 음식들이며 풍물들이 있대서
색다른 것도 사먹고 사고 싶은거 사라고 준 돈을 놓고 갔으니
오늘 돌아오는 딸아이 이야기 보따리가 무척 많을거 같다.
놓고 간 돈이 마음에 걸려 쯧쯧 거린는 내게 남편은 다른친구들에게
빌어서라도 쓰겠지 라며 마음 놓으라 위로를 한다.
그렇지만 딸아이 성격을 아는 나는 오전내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지난 토요일이다. 평일이면 학원 가느라 가족끼리 밥 먹는 것이
일주일내내 몇번 되지 않아 아침에 학교 가는 딸에게
오늘은 꼭 일찍와서 식구들끼리 같이 점심 먹자 했더니
딸아이는 저희아버지 오실 시간에 맞춰 콩죽같은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어찌 된 일이냐 물었더니만
"아침에 잔돈 가져 가는 걸 잊어버려서 내친 김에 그냥 집까지 걸어 왔단다." 친구들에게 빌리지 그랬냐는 내게 조금 걸음 되지 뭘 빌리느냐고
비상금으로 만원이 있었지만 큰돈 깨면 다 쓸까봐 그냥 걸어 왔단다.
어쩌면 딸아이는 오늘도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지 않고 그저 가져간 것만
다먹고 돌아올지 모르겠다. 어릴적부터 나는 그애를 믿어 왔다.
어릴적에는 병치레가 심해서 내 속을 많이 끓였었지만
작은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 그애는 나의 말동무였다.
남편은 말이 없는 사람이니 내가 하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듣는것에도
그렇다고 자신이 직접 말하는 것에도 인색해서 나는 궁여지책으로 그랫는지
어쨌는지 좋은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거나 모두 그애에게 털어놓고
의견을 묻곤 했었다. 어렸지만 그래도 내 얘길 잘 아해 주었던거 같다.
자라면서는 속이 깊어 내가 힘들때 마다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었다.
잔병치레가 심해서 친정아버지와 나는 그애게게 쌍화탕을 끓여 먹이곤 했는데 그탓인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몸에 살이 있는 편이다.
가족 셋은 홀쭉한데 저만 토실토실하니 주변의 눈총도 받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에게 왠 뚱보냐며 놀림도 받고 민지네홈에
올려진 어릴적 사진으로 그래도 쬐금은 귀여울 것이란 예상을 뒤짚어 놓아
그애 심기가 불편할 때도 있지만 잔병치레 않으니 난 참 좋다.
가끔씩 그애가 입맛이 없다고 밥을 먹지 않을때 우리집은 초비상이다.
딸아이가 밥을 안먹으면 그건 백발백중 병에 걸렸다는 신호이니까.
얼굴이 예쁜 편도 아니고 날씬한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뛰어난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아이지만 여러번 전학을 한것에 비해
친구들에게는 의리파이고 성격도 모난데 없이 둥글어서
학교생활에는 잘 적응하고 있다. 집안일을 할 줄 모르고 여자다운 데가
별로 없어서 그것 좀 고치라고 종용하고 있지만 새벽같이 나갔다
오밤중에 돌아오는 아이에게 자꾸만 강요 하기도 뭐해서 요즘은 그냥 두고
보고만 있다. 저라고 마음 편하겠는가? 중학교 3 학년이니 가만 두어도
받는 입시 스트레스가 말도 못한다.다른 아이들은 신경질도 부리고
까탈스럽게 가출도 하고 엄마몰래 이성교제도 한다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얘기해주는 딸이 고맙고 삐뚫어지지 않은 심성이 고맙기만 하다.
아직은 열다섯살 밖에 안된 아이에게 모든것을 완벽히 하라 강요 하고
헐뜯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지켜 보면서 올바른 길로 나갈수 있게
잡아 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여름을 계기로 나는 그애가 아직은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은 내가 너무 나의 잣대로만 그애를 보아 왔다는 것.
아직은 여러가지로 미숙한 청소년인 그아이를 나는 너무 과대평가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감정변화에 예민하고 비판의식이 뚜렷한 다만 사춘기의 어린 소녀 라는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어제 불쑥 바람쐬러 같이 나간 딸아이 말이 이번 겨울방학때는 엄마랑
여행좀 실컷 하고 싶으니 절 좀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님 어떻겠냐며
꼭 좀 그렇게 해달라며 부탁을 한다. 니가 좋음 그러자 흔쾌히 승낙
했는데 다가올 겨울이 난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아직도 밖에는 비가 온다. 이 비오는 날에 우리딸은 파인애플바
하나라도 사먹었는지 모르겠다. 난 집에 있어 비오는 창 밖 내다보며
센치해지는 것도 좋은데 우리딸 생각을 하니 이 비가 어서 그쳤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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