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도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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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걸쳐져 있어 날이 흐립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우리집 전화가 연신 띠르릉 따르릉 울려대는게
아마도 근처 공사장에 무슨일이 터졌나봅니다.
집 전화 울리는거하고 공사장 일 터진거하고 무슨관련이 있나 하시겠지요.
이사오자마자 잘못걸린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이상하다 했더니
우리집 전화번호와 숫자 하나가 틀린곳이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가 발주시킨 토목공사장 현장사무실이더군요.
우리전화번호는 한때 단기가설용 전화로 쓰였던 모양이라
때아닌 영안실 찾는 전화도 많았구요.
아무튼 별별 일이 다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거의 몇달 동안 밤낮없이 울려대다
요즘 좀 뜸한게 살만 하더니 오늘또 이렇게 시끄럽게 울려대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중요한 일이 잇는게 틀림없습니다.
공사장이란게 그렇잖아요
아주 꼭두새벽 해뜨자마자 작업을 시작해서는 해지기 전에
서둘러 일을 마치니 현장에 일이 있는 날이면
새벽잠 많은 우리식구들은 영낙없이 잠을 설치게 되지요.
집에 가만히 앉아있는 아줌마가 남의 공사장에 일 터진건 어떻게 아냐고
물으시면 다 아는 수가 있다고 말씀 드릴게요.
우리집 전화번호와 공사장 전화번호는 손가락 하나를 잘못 눌리면
홰까닥 틀리게 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공사장이란 곳이 아주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고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는 곳이니 당연히 뭔가 분주하게 마련이고
뭔가 일이 잘못되면 사람들은 조급하고 바쁜 마음에
상대에게 빨리 연락을 하고자 급하게 전화번호를 누르게 되지요
그러다보면 손가락이 잘못 실수를 하게 되구요.
그런데 혼자 집에 앉아 가만 전화를 오래 받다 보니요
참 희얀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집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이라곤
우리가족과 친한 친구 몇사람뿐이라
"여보세요!"만 들어도 잘못 걸린 건줄 금방 안답니다.
그런데요
전화를 받다보면 얼굴은 모르지만 그래두 그사람이 보인답니다.
이른 새벽에 "아~, 여보시요 거게 위치가 ..." 하는 사람들은
멀리서 자재를 싣고 달려온 화물차 기사들이구요
수화기를 들자마자 "누구 바꿔~"라고 명령조로 말하는 사람은
분명 그곳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높으신 분들이구요
또 "여보세요!"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씨이~ "라고 욕부터 내뱉는 사람들은
감독관이나 소위 십장이라고 부르는 사람 일것이라 추측 된답니다.
그리고 또 아주 점잖게 자기 신분부터 밝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지요.
하루동안에 이 모든 종류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다 듣게 되는 날은
그 공사장에 아주 엄청난 규모의 사건이 생겼다고 봐야하구요
아침부터 "ㅅ,ㄴ" 자를 듣게 되는 날은
자재공급에 이상이 생겼다는 말.
또 점잖은 사무직원들의 전화가 빗발치는 날은
아마도 무슨 보고서나 기획자료 같은것이 잘 못 올려진 날이겠지요
목소리만으로 사건을 판단한다
이쯤되면 오즈마녀가 아가사크리스티는 아니래두
쬐깐한 탐정노릇은 하겠지요
연거푸 잘못 걸린 전화를 받다보면 아주 불쾌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참 우스운 사람도 있어요.
어떤 사람이냐구요?
잘못 걸린 번호이니 공사장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그쪽으로 천천히 다시 걸어보라고 말하고 돌아서면 또 따르릉...
그럼 "하이고 참 와 아줌마가 자꾸 나오는교?"라고 하거나
"김양아, 급하다 빨리!하거나....
"뭣이 잘못됐노"라며 짜증을 내거나,,,,
암튼이요
전화만으로 사람을 안다는거요.
하루기분을 몽땅 망칠수도 있다는거요.
우린 이제 잘못 걸린 전화에 익숙해서 별 영향을 안받지만요.
그래두 좋은게 좋다고 현장에 일 터져도
이 애궂은 아줌마에게 짜증은 좀 안냈으면 합니다.
특히 높으신 분들의 경우는 거의 대개 마구 화를 내면서 반말부터 합니다
그러니 날마다 그렇게 찍찍 던지는 반말 들으며
근무 할라치면 얼마나 짜증이 날까요
오늘 아침부터 전화통에 불이 났으니
뭔일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조용한걸 보니
왠만큼 해결이 된 모양입니다.
점심들 맛있게 드시고
남은 오후 일 즐겁게 마무리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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