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이상원

이상원

포터블의 노래(인턴시절의 기억)



	밤이 되면 경북대학교 병원 외래진료동의 업무는 마감된다. 하루종일 이 광역시와 경상북도 일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그들의 돈과 고통을 알약과 주사로 교환하느라 북적대던 이 거대 한 건물의 외래 진료동은 노을이 지는 저녁 조개 껍질 닫듯이 그 널찍한 입을 닫는다. 등 뒤의 쪽문으로 응급실을 두어 세상을 향한 또 하나의 입을 남겨둔 채, 그 뱃속 벌집같은 병 동에 애벌레처럼 고이 담겨있는 환자들 사이를 당직의사, 당직간호사들만이 일벌처럼 오가 며 고요한 병원의 밤이 시작된다. 현대의 의사들은 천수관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팔을 가지고 있다. 그의 팔은 기계 의 팔이다. 차트에 내는 한줄의 오더나 컴퓨터 입력으로 그는 사람들을 부리고, 기계를 움직 이고, 보고를 받으며, 이런 저런 사실들을 더하고 빼서 결론을 낸다. 작고 마른 키에 흰 가 운을 걸친 그의 지친 눈길이 안경너머로 환자를 보고 볼펜으로 차트에 몇줄의 지시를 적고 돌아서면 환자들은 의사 만나기가 힘들다고 투덜대지만, 사실은 그의 충복이자 또다른 분신 인 기계들이 남겨둔 그림자처럼 환자 곁에 붙어 진짜 일판을 벌이는 것이다. 작게는 pulse oxymeter, ECG처럼 아담한 것부터 키크고 날씬한 C-PAP, 그보다 덩치좋은 ventilator, 큼 지막하게는 포터블, CT, MRI 나아가서 각종 임상검사장비까지, 다양하고 저마다 개성있게 만들어진 기계들이 환자를 꽉 붙들고, 붙들고 찌르고, 찔러서 뽑아낸 피를 다른 기계로 보내 고, 환자에게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이 기계 저 기계로 주고 받기를 하루종일 되풀이한다. 전기만 먹으면 결코 지치지도 항의하지도 않는 이들은 지난 20세기 과학문명의 산물들이다. 19세기의 위대한 천재들이 해낸 발명을 20세기는 그 상업적 욕구와 경제적 논리에 따라 대 량으로 복제하고 혼합하였다. 뢴트겐이 엑스광선을 발견하여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는 길을 연 후. 이제 이 엑스광선을 대량으로 찍어내고 컴퓨터를 통해 이미지를 합성해내는 방식으 로 CT가 태어났듯이, 이들 과학문명의 산물들은 서로 만나고 복제되고 혼합됨으로써 현대 medical technology를 이루었으며, 이제는 근거리 통신망이 등장하여 자기들만이 이해하는 전자파의 언어를 주고 받게 되었다. 이것은 기계들의 신경계이며, 물론 의사들이 콘트롤한 다. (인턴들이 하는 일 중 일부는 어떻게 보면 이 전자파 신경회로가 완성되기 전 그 공백 을 몸으로 뛰어 채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의료는 이들 기계문명에 절대적으로 의 지하며 이제 이들이 없으면 현대의료는 현대의료일 수 없다. 어느날, 기계들이 파업을 한다 면? 단정할 수 없지만, 의사들이 중세시대 모양으로 환자의 혈액을 일일이 눈금 그인 유리 판에 얹어놓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RBC count를 셈해야 한다면, 아마도 거대 병원은 문 을 닫고 현대의료는 궤멸되고 말 것이다. 포터블은 큰 병원에서 쓰는 이동식 방사선 촬영기이다. 커다란 사각형의 몸체에 포크레인의 팔과 같이 여러개의 관절이 달린 목이 있고, 엑스 광선을 발사하는 납작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 포터블- 그러니까, 환자를 방사선실로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일 때 전화로 연락을 하면 방사선기사가 끌고 와서 찍어주고, 인턴이나 주치의가 현상된 필름을 찾아서 본다는게 원칙 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늘 그렇지는 않다. 흔히 중환자실에 놔두기에, 인턴이 뛰어가 이놈을 몰고 병실로 가서 찍고, 필름을 꺼내 응급실에 딸린 야간현상소로 두두두 달려가 현상을 해 서는 필름을 가지고 다시 병실로 가서, 환자 곁에 있는 주치의에게 보여주게 된다. 따라서 포터블은 한밤중 응급상황과 같은 긴급한 시기나 움직일 수 없는 중환자들을 위해 요긴한 장비이다. 포터블은 덩치가 크고 무거워 들거나 끌고 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철의 공룡과도 같은 이 기계를 밀면 고무패드가 달린 바퀴가 부드럽게 천천히 굴러가면서, 낮고 거칠며 끊어지지 않는 소리를 낸다. 바퀴소리는 마치 신음이나 염불, 혹은 노래처럼 어둡고 조용한 병실 복도로 깔려나간다. 어느날 다소 피로하고 염세적인 어느 당직 인턴이 듣기에, 그의 손길을 따라 복도 저편에 있는 위중하고 때로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다가가던 이놈의 포터블의 바퀴소리는 음산 한 노랫소리로 들렸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인턴은 그 노래가 듣기 싫지 않았다. 그는 다만 피로로 멍한 머리, 과거의 거창한 꿈에 비해 초라한 현실, 불안한 미래 등등 잡다 하고 너저분한 상념에 부대끼는 심약한 젊은이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선배의사들이나 환자, 간호사들 누구도 인턴을 의사로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손 밑에서 웅얼대는 포터블을 밀며 스스로가 환자에게 다가가는 의사임을 이를 악물고 되뇌인다. 병실 문이 열리면 거기에 숨을 헐떡이는 늙고 마른 환자가 인턴의 눈에 들어온다. 환자의 코에는 위로 통하는 튜브가, 목에는 호흡을 위한 기도절개창이, 어깨에는 중심정맥삽관을 위 한 가늘고 예민해 보이는 합성수지관이 꽂혀 있으며 요도에는 폴리 카테터가 삽입되어 있 다. 포터블이 다가가 그 머리로 환자를 내려다보면 간호사와 여의사들은 엑스 광선의 독기 를 피해 자리를 옮긴다. 레디, 샷의 구호 뒤에 눈에 보이지 않는 엑스 광선이 환자의 가슴을 빛의 속도로 관통하여 필름 건판에 물이 찬 폐포나 염증으로 흐려진 기관지 음영을 순간적 으로 새겨넣는다. 사냥을 마친 거대한 짐승처럼, 포터블은 그 입에서 침과 피를 흘리며 환자 에게서 물러나 구석에 자리하고 두 번째의 신호를 기다리며 사냥감을 주시한다. 그의 눈 앞 에서 주치의와 간호사, 인턴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환자의 부인 혹은 아들은 묘하게 긴 장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다. 포터블이 찍어낸 환자의 속내가 곧 주치의의 손에 들리고 주치의는 필름을 치켜들어 형광등에 비추어 보고는 낮은 음성으로 투약을 지시한다. 무표정 한 간호사와 인턴은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 법, 때로는 가끔은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병원이 그 임무를 성직자와 교대하며 산 자와 죽은 자 가 저도 모르게 서로의 자리를 잡는 순간이다. 의사들에게는 허탈하면서도 하나의 매듭이 정리되는 순간이며, 보호자들이 의사들에게 요구했던 의무의 철회가 선언되며, 이제 장제와 유산 등속에 관계되는 새로운 국면으로 보호자들의 의무가 전환되는 시기이다. "운명하셨습니다." 주치의가 낮은 목소리로 사망을 선언하고 지친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가면 보호자들은 기다렸 다는 듯이 통곡을 시작한다. 간호사는 시간을 기록하고 인턴은 환자의 몸에 박혀 있는 고통 과 인내의 흔적들을 제거한다. 치욕스런 폴리 카테터가 요도에서 빠져나오고, 메스껍던 레빈 튜브가 코에서 뽑혀 나오고, 중심정맥 카테터와 기도절개창 스텐트가 환자의 몸에 검고 깊 은 상처를 남긴 채 빠져나온다. 의사들이 그 막강한 기계의 손을 거두어들인 후, 이제야 편 안해진 몸을 이미 식어버린 육체는 즐길 수 없다. 포터블은 인턴의 손에 이끌려 몸을 돌리 고는 다시 낮고 메마른 노래를 부르며 어두운 복도를 지나 중환자실로 돌아간다. 지친 인턴은 숙소로 올라간다. 불꺼진 인턴 숙소, 종이컵과 담배꽁초가 어지러이 널려진 휴 게실에 가 생수를 한컵 따라 마시고 담배를 피워 물고 소파에 몸을 뉘어 눈을 감고 휴식을 청하지만. 피로할 때는 늘 그러했듯이 온갖 유령같은 상념이 뇌수를 가득 채워온다. 사람이 태어나면 집안은 경사스런 분위기로 넘쳐나고 모두가 축복하며 즐거워한다. 진정 삶은 축복 할 일이었다. 그러면 죽음은 무엇인가. 생명이 있는 존재는 언젠가는 병들고 죽게 마련이다. 죽음은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지만, 지친 몸으로 반쯤 잠들기 시작하는 인턴은 생각한다. 이 시대의 죽음은 욕되다. 왜 죽음은 존중받지 못하는가. 누구라도, 그 숱한 튜브며 라인이 아 니고서는 우리는 평화로이 죽음을 맞지 못하는가. 이승을 떠난 한 영혼을 생각하며 인턴은 잠이 든다. 비록 포터블을 끄는 풋내기일지언정 의사라고 스스로 믿고 싶어하던 그도, 시간 이 지나면 기계의 팔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는 다른 권한과 책임을 가지며,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판단을 할 것이다. 세상은 그 이후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데, 그는 변할 것이다. 지금 그는 한 영혼의 욕된 죽음을 슬픈 눈으로 떠올리지만, 언젠가 그도 상상력을 댓가로 치르는 대신 세상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승리하겠지만, 또 하나의 자아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은 언젠가 배워야만 할 것들이다. 그리고 언젠가, 포터 블은 그를 위해 노래를 부르며 다가올 것이다. 매일 밤 이 도시에서 포터블은 죽음의 노래를 낮게 웅얼거리고 사람들은 태어나고 사라져가 며 저마다의 삶을 바쁘게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척박하고 힘들어 노동이 없이는 하루의 끼 니를 채울 수가 없지만, 오랜 삶을 살아온 어르신들은 숲이나 바위처럼 고요하고 부드러우 며 지혜로우셨다. 그렇게, 죽음의 순간에도 고귀하고 존엄한, 그런 죽음을 노인들께 드릴 수 는 없었을까. 과연, 현대의료는, 사람을 존엄하게 하는가? 불완전한 세상에 완전한 답은 있 을 수 없으며, 오직 거기에는 상상력과 꿈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꿈은 때로 우리의 삶과 우 리의 세상을 과연 밀어오고, 때로 배신당하며 잊혀져 왔다. 삶을 모두 경험하고도 꿈을 잃지 않은 사람은 복되다. 혼미한 머리에 끝맺지 못하는 생각들을 떠올리며 인턴의 몸은 점점 잠에 취해가고 타다만 담배꽁초는 바닥으로 톡 떨어진다. 새벽 3시의 밤하늘에 바람이 우우웅 소리를 내며 스쳐 지나가고 별은 수천만년 전과 마찬가지로 곱게 빛나며 지친 인턴은 첫사랑 소녀의 꿈을 꾸 며 잠든다. 혼탁한 상념은 담배연기와 더불어 밤하늘로 밤새 흩어져 가고 마침내 아름답게 텅 빈 아침, 가벼운 머리와 맑은 눈으로 다시 깨어날 것이다. 환한 아침을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