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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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오랜 옛날.
초등학교 졸업반의 들째 동생녀석의 이야기 입니다.
점심을 먹고 늦으막이 소멕이러 나간 녀석이 땅거미가 이슥해진
시각인데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요놈자석 또 해찰이구나. 오기만 해바라"
마당에 모기불을 지피시며 할머니는 그념하셨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하나둘 일어설 쯤에야 식구들 모두 걱정이 되어
동생을 찾아 나섰습니다.
소먹이는 곳이라야 기껏 집앞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둑방이거나
조금더 풀이 많은곳이라면 마을 앞을 흐르는 냇가를 타고 오르다
보면 제각옆을 지나 가제도 잡고 하는 사당골 뿐이었습니다.
조금 외진곳이라 혼자서 소를 멕이기에는 무섭지만 누구하고
같이만 간다면 소나무 둥치에 소를 매놓고 산가제를 잡는 재미가
따로 있는 곳이었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나서서 소리질러 이름을 불러도 동생은 나타나지 않고
암소의 핑경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늘엔 별이 똑똑히 여물어 이미 밤이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산으로 들로 찾아 헤메던 동네 장정들도 하나둘씩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오기 시작할무렵 할머니와 어머니는 사색이 돌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때였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딸랑이는 핑경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귀에도 선한 우리집 암소의 핑경소리였습니다.
모두가 일어나서 대문간으로 달려나갔읍니다. 막내 당숙이 소를
찾아가지고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함께 있어야 할 동생이
보이지 않는것이었습니다.
"애기는?"
"없어요. 소만 재넘어 소나무 아래 매어져 있데요"
"무슨 소리냐? 잘 더 찾어 봐야제. 소만가져오면 어쪄?"
"아이구 큰 엄니도 조카가 중허제 소가 중했겠어요?"
막내당숙이 외려 더 역성이었습니다.
"어디서 찾았냐?"
"재넘어서요"
"재 넘어서?"
"어짠일로 거기까지 갔다냐?"
"내가 아요?"
막내 당숙도 짜증이었습니다. 여기 저기 가시에 긁힌자국이
모깃불속에 쑥대가 타오를때마다 선명히 보이고 있었읍니다.
재넘어라면 소먹이러 갈곳도 아니지만 읍네 장에나 가려면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모여들었던 동네 사람들도 하나 둘 돌아가고 넋을 놓은 어머니와
식구들만 모깃불 아래서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외양간에서 소가 자꾸 울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울어쌓는 소를 살피러 할머니가 외양간으로
가셨습니다.
"야들아 이리좀 와바라. 소가 굶었는지 배가 툭 꺼졌다"
결론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소는 동생이 소멕이러 몰고간 이후로 나무에 메어진채 풀을 뜯지
못하고 탈탈 굶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이놈이?"
2.
가출이었습니다.
그당시엔 서울로 가출하는것이 유행이었지요.
마을에 가출한 다음 성공해서 잘 살고 있는 일가 아제가
한 분 계셨습니다.
동네의 젊은 이 들에게 이 아저씨의 성공담은 꿈이고 희망이기도
했었지요.
서울만 가면 모두다 성공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던 때였고 또 실제로
그런분들이 그 뒤에 두서너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성공한 그 아저씨가 뒤를 봐준 까닭도 있었겠지요.
그 대열에 동생녀석이 끼었을 거란 것입니다.
그런 결론을 내면서 우선은 안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안도감을 불러일으킨게지요.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당시만 해도 귀한 큰 어머니의 손목시계가
없어진것도 알았습니다.
씨없는 자식이 생겨났다고 조부님은 역정을 내셨고 "자식교육을
어찌시켰기에 그 모양이냐" 하고 어머님은 꾸중을 들으셨습니다.
며칠 후 편지가 한통이 왔습니다.
"큰 어머님 전 상서"
꼭 성공해서 돌아가겠습니다. 큰 어머님 시계는 읍내 전당포에
맞겨놓았습니다. 나중에 성공해서 큰 시계로 사드릴께요.
이런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연필로 침뭍여서 또박또박 쓴 편지를 보고 어머니는 많이 우셨지요.
어머니는 다음 장날
곡식을 머리에 이고 장에 내다 팔아 전당쪽지를 내밀고 시계를
찾아왔지만 차비밖에 안되는 그 돈으로 어디서 어떻게 잠이나
자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그래도 그놈이 크게 될놈이여. 걱정말어"
장이 파하고 산길을 오르며 폭폭한 걸음을 걷는 어머니에게 같이
장길 나선 아주머니들의 위안이 있었지만 어머님의 걸음은
천근 만근이었습니다.
지금도 내가 이해되지 않는것 하나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 어린것이 시계를 맡긴다고 전당포에서 그 시계를 잡어
주었냐는 것입니다.
그 부분은 지금도 동생이 함구를 하고 있음으로 알길이 없습니다만
아마도 저보다 더큰 어떤 사람의 동행이 있었을 것이란 것이
제 생각입니다.
3.
동생의 가출은 30일 동안의 외출로 끝났습니다.
저녁 어스름 사립문밖에 허수아비 마냥 매달려 있는 있는 동생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미웠지만 와락 눈물이 났습니다.
할아버님에게 종아리를 맞았지만 울지는 않더군요. 의지가
강한 녀석이었습니다.
목욕을 시키고 새옷으로 갈아 입힌다음 다 큰녀석이 그날 저녁은
어머니 품에서 안겨서 잤습니다.
어머니는 밤새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녀석의 가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아 도시로 나오기 전까지
두어번의 시도가 더 있었지요.
내 동생들 중에서 유일하게 초등학교 졸업장하나로 지금까지
굳굳하게 살아가고 있는 녀석입니다.
이녀석은 나보다도 컴퓨터를 잘하고 나보다도 더 사업가입니다.
지금은 작은 회사를 꾸려가는 사장이고 언제 그랬냐는듯 티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공부 안하고 말썽꾸러기라며 할아버님은 에미옆에서
농사지을놈으로 점찍어 놓았지만 야생의 망아지는 쉽게 길이
들어지지 않았었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늘 말씀하셨지요.
"너만 고등학교 졸업하면 시골을 떠나자. 이 좁은 땅에서
우리 식구들이 다 살 수는 없어야"
어머니의 결단은 옳은것이었고 그 결단으로 우리는 시골을 떠 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동생의 잦은 가출을 크게 나무래지 않은 것으로
봐서 당신 자신이 이 좁은 시골농토를 떠나고 싶은 반란을
꿈꾸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고향을 떠나야 한다. 그래야 성공해야."
우리가 남들처럼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홀어머니 모시고 우리
6남매가 그냥 그데로 시골에 엎디어 살았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 순박한 어머니에게 "떠나야 산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것은
아마도 우리 둘째동생의 망아지같은 돌출행동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꼭 옳다고 말하진 못하겠습니다만 지금도 나는 생각합니다.
물질적으로 성공하기를 꿈꾸는 사람은 가능한 멀리 고향을
떠나라고 말하라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고향을 잊어서는 않되겠지요.
가출에서 배우는 것은 독립심인것 같단 생각을 해봅니다.
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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