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順伊)
|
| |
|
|
| |
| |
| |
1.
초등학교 4학년때이다.
작달막한 키에 단단하게 생긴 선생님한분이 도시에서 전근을 왔다.
학교라야 한학년에 한반씩 밖에 없는 조그만 학교였다.
어찌나 고약하신지 숙제를 않했다가는 엉덩이부터 종아리까지는
우리것이 아니라고 봐도 되었다.
풍금도 잘 치시고 웅변도 하시고 우리에게 연극도 지도하셨다.
선생님이 오신뒤로 우리 학교에도 도시풍이 좀 돌았다.
대부분 외지에서 오시는 선생님들이 많아 결혼하신 선생님은 방을 얻어
살림을 하시었고 우리 담임선생처럼 총각선생님은 결혼하신 선생님댁에서
더부살이를 하거나 아니면 하숙을 하기 마련이다.
"집에 방이 여유있는 사람 손들어봐라"
나도 손을 들었지만 좀 멀다는 이유로 제외되었고
두어집을 돌아보신 선생님은 순이네 집으로 방을 정하셨다.
사실 시골에 방이 여유가 있는 집은 극히 드믄 때이다.
순이는 일찍 아버지를 여윈 외동딸에다가 할머니하고 어머니
셋이서 살고 있었다.
비교적 풍족한 살림에 사랑채가 비어 있어 거처하기에 적당한
집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여자들만 사는 집이라서 거북하긴 했다.
다행히 사랑채가 따로 있고
선생님이라면 높게 보던 시절이어서 순이의 공부 지도도
해주면좋겠다는 생각에서 순이 할머니가 결정한 일이다.
당시에 우리반에서는 월등히 공부를 잘하는 애 두명을 제하고는
나를 비롯해서 예닐곱명정도가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을 하던 때였고
여기에는 순이와 영순이도 들어있다.
순이와 영순이는 늘 경쟁상대다.
공부하는것도 얼굴 이쁜것도.........
그러나 나는 순이가 좋았고 매사에 순이 편을 들었다.
2.
문제가 생겼다.
순이의 실력이 월등히 영순이를 앞지른 것이다.
선생님이 순이에게 시험지를 가르쳐 준다더라.
심지어는 순이 엄마를 선생님이 좋아한더더라까지.........
난감한 일이었다.
그럴때마다 순이는 영순이를 소문의 진원지로 지목하게 되고
영순이는 영순이데로 선생님께 꾸중들으면 순이만 이뻐한다고
선생님을 미워하고.....
나도 자꾸만 선생님이 순이만 예뻐하는것 같아 선생님에게
미움증이 갔고 순이까지도 미워졌다.
학교가 끝나면 순이는 교무실 옆 화단에 앉아서 선생님을
기다린다.
"넌 왜 집에 않가니?"
"선생님하고 같이 갈려고! 왜?"
턱을 쳐들고 고개를 갸웃하게 하면서 잰다.
체! 기집에 재기는.....?"
학교가 끝나면 순이를 데리고 나란히 퇴근하는 선생님이 미워졌다.
그러는 중에도 선생님은 우리를 열심히 지도했다.
일제고사를 보면 반평균성적이 전교에서 일등이었고
타교에 비해서도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일류대학을 둘이나
보내게 되는 밑공부를 충실히 시키신 선생님이셨다.
3.
순이 어머니는 그해 집안의 권유로 개가를 하게 되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순이가 몹시 외롭게 보였다.
성적도 떨어지고 우울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5학년이 되던 가을 운동회를 끝내고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쯤이었던가 담임선생님도 다른학교로
전근을 가시게 되었다. 이부분은 기억이 정확치 않다.
6학년에 올라가면서 순이의 성적은 점점 더 떨어졌다.
"거봐라! 그동안 선생님이 시험문제를 가르쳐준게 틀림없어"
실은 그게 아니었다.
순이는 개가한 엄마가 그리웠던 것이다.
엄마의 개가를 이해하지 못한 순이는 많이 슬펐던 모양이었다.
자존심이 많은 아이라서 학교에서 내색을 않았을 뿐이었다.
우리는 순이의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것이고.....
순이도 다음 해봄 어머니를 따라서 전학을 갔다.
순이가 이뻐보이면 보일 수록 순이가 나에게 새침하면 할 수록
괜스리 선생님이 미웠던 철업던 시절이 문득 그립다.
순이 할머니는 가끔씩 우리짐에도 놀러오셨다.
할머니가 대모(大母)님이라 부르시는걸 보면 우리는
먼 일가였던 모양이다.
그때야 알턱이 없었지요.
살다보니 선생님께 인사한번 못드렸다.
순이도 손주볼 나이 되가겠다.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