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치고나서
|
| |
|
|
| |
| |
| |
연못주변의 영산홍이 꽃필때는 몰랐는데 꽃지고나서 바라보니 너무 자랐다.
평상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면 물이 보이지 않고 답답해 보이겠다 싶어 아이를 불러 전지를 시켰다.
"이만큼씩 자르면 좋게다"하고 그중 크게 우거진 영산홍 가지 하나를 잘라 보이며 시범을 보였다. 같이 손을 봐야 했었는데 밖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 왔더니 아 뿔사 이게 왠 일인가. 영산홍가지들이 거의 민둥사니가 되어있었다.
연못가 돌틈에 푸른빛을 자랑하던 영산홍이 거의 맨몸둥이를 드러내고
있는것 아닌가. "진짜로 이게 뭔짓이냐?"
"사장님이 그렇게 짜르라고 했잖아요"
아이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처음에 지적한 영산홍은 그중에서 제일 키가 큰것으로 잘라낸 가지가 30센티정도 였는데 키작은 영산홍에도 그 기준으로 잘라내 버린것이다.
의사전달이 잘못된 내 잘 못도 있는것 같고 또 이미 잘라버린 나무를 어찌할 수 없어 나무래면 뭐하냐 싶어 돌아서고 말았다. 저 가지에 다시 새잎이 돋아나려면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그동안 쓸쓸해 보일 연못이 안타까웠다.
하나 위안되는것은 언젠가 나무를 잘 다루는 분에게 들은 이야긴데 나무가 너무 많이컷다며 과감하게 한번 잘라주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은 기억이 있어서 차라리 잘된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일이 며칠 지난 일이라서 행여나 새잎이라도 돋나해서 살펴봐도 아직은 감감 무소식이고, 몇잎씩 붙어 있는 잎들만이 살아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 서는데 어디서 은은한 향기가 난다. 울타리쪽에 사람 키보다 훌쩍 커버린 쥐똥나무였다. 하얀꽃이 가득하다.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아 보니 향이 진하다. 이렇게 고운 향이 있는 나무를 하필이면 쥐똥나무라고 이름 했을까.
벌들이 부지런히 꽃이랄것도 없는 꽃잎의 꽃술사이를 부지런이 움직인다.
볼품없는 꽃들이 더 향이 짙고 꿀이 많이 많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쥐똥나무 아래선 머웃잎이 자라고 토란잎이 제법 커나온다. 머웃잎이야 제 자리에서 다시 겨울을 나는것이지만 토란은 작년에 캐고나서 다시 심지 않았는데 남아 있던 씨알이 얼지 않고 다시 싹을 틔웠다. 아마도 가을에 낙엽을 쓸어 모아 두었던 곳이라서 땅이 얼지 않았던 모양이다. 생각지도 않은곳에 토란잎이 나오는것을 보고 생명이 새삼스럽게 참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영산홍가지를 너무 많이 잘라서 서운해 하던 생각은 다 어디로 가고 구석진곳에서 제모습을 키워가는 하찮은 것들의 풋풋한 생명력이 쥐똥나무 향과함께 가슴으로 밀려왔다.
이 정원에 울타리옆의 이 작은 웅성거림이 없었다면 무슨 운치가 있었겠는가 싶다. 내년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훌륭히 조연을 해주는 이런 대접받지 못하는 것들도 신경을 써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영산홍이야 내 아니라도 누가 아름답다 해 줄 사람 많으니......
쥐똥나무가 서 있는 이 작은 귀퉁이를 사랑하리라.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