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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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가 구슬을 쏟아놓은듯 흐르고,
더위는 기를 쓰며 물러앉을 기색이 없는 밤이다.
평상옆에 타오르던 모깃불도 지쳐 가물가물하고,
앞집 봉수댁네도 잠이 들었는지 들창으로 새나오던 불빛이 사라졌다.
새말양반은 살갖을 파고드는 모기를 부채로 후려치며
아무래도 잠들기는 틀렸다 싶어 평상에서 일어나 앉았다.
"임자는 잠 안자?"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있던 새말댁을 향해서 건성으로 한마디 건낸다.
바구니에 담겨진 옥수수를 바라보니 토실토실 잘여물었다.
아마도 종자로 말릴 모양이다.
옥수수의 노란 빛갈이 달빛에 비치어 마치 여인네 살결같다는 생각이
문득들었다.
낮에 일나갔다 들어오면서 담넘어 얼핏보았던 봉수댁의 피부색갈 같단
생각이 들었던 것도 동시였다.
"아따 봉수댁 이쁘데"
"뭔 말이라요?"
"등목하고 들어가는 봉수댁 등짝을 봤단 말이시"
"뭐여라우?"
뜬금없는 소리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아내의 눈빛이 심상찮다.
이건 아무래도 않해도 될 이야기를 한것이 틀림없었다.
아내의 손길이 우악스럽게 옥수수껍질을 쥐어 뜯고 있는것이 역력했다.
그렇찮아도 과수댁을 이웃에 두고 산다는것이 마음한켠 늘
조마조마 하던 새말댁이었다.
일부러 봤다는것도 아니고 우연찮게 봤다는것을 내놓고 강짜할 수 도 없는
일이어서 애궂은 옥수수만 거칠게 쥐어 뜯었다.
봉수양반이 죽기전에야 그런 마음이 들었을턱이 없었지만
봉수양반 죽고나서 부터 봉수댁을 쳐다보는 눈길이 달라진것 같단 생각이
자꾸 들던 차였다. 그럴리 없다고 마음을 다스리면서도 은근히 가슴속에
부아가 치밀어 견딜 수 없다.
"진짜요?"
"아따 이사람 농담도 못해?"
옥수수 바구니를 밀치며 다구치는 새말댁의 눈빛이 형형해
새말양반은 외려 정색을 하고 되받아 화를 낸다.
"그러고 보니 당신 요즘 좀 이상합디다"
"뭣이 이상혀?"
"봉수댁 쳐다 보는 눈이 예전같지 않던디?"
어거지로 한버 떠 보는 소리였다.
"씨잘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잠이나 자!"
새말댁과 봉수댁은 친할것도 말것도 없는 그저 그런 이웃으로 지내는
사이지만, 마음한켠으로는 혼자사는 것이 안쓰러워 동정심이 가기도 했고
때론 담하나 사이의 알 수 없는 불안이 새말댁을 동요시키기도 했다.
행실히 난삽한 봉수댁이 아니어서 무엇하나 험 잡을 일 없지만서도
한번 일어난 의심병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던차였다.
"남정네들 늑대같은 심보를 알 수 있간디?"
끝내 한마디 툭 던지고 방안으로 들어가갔다.
일이 잘못되려면 묘하게도 벌어지는 법이다.
아무래도 이놈의 더위탓이라고 할밖에.......
사단은 다음날 샘가에서 벌어졌다.
새말댁은 빨랫거리 몇개를 담아 샘터로 갔다.
샘가에는 다른 아낙들 속에 봉수댁도 끼어있었다.
들일을 끝내고 점심을 짓기 위해서 물길러 온 아낙들이다.
"아따 이넘의 날씨 오살허게 찐다. 물한번 확 끼얹었으면 좋겄네."
유난히 더위잘타는 심평댁이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며 한마디 한다.
그말을 받아 봉수댁이 웃으면서
"집에가서 홀딱벗고 시원하게 한번 찌크러" 하고 하하 웃는다.
그말끝에 아까부터 봉수댁에게 심기가 않좋던 새말댁이
"어떤년은 남의 서방앞에서 웃통 할딱벗고 멱을 감는고?"
앞뒤없는 소리에 뜨아한 눈초리로 아낙들이 새말댁을 쳐다본다.
"뭔소리당가?"
빨래에 비누를 우걱우걱 문지르고 방망이로 쾅쾅내리치던 새말댁이
"뭔소리는 뭔소리것소? 꼬리 살랑살랑치는 에편네가 있응게 하는 소리제!"
봉수댁의 말 뒤끝이라 아낙들의 눈길이 모두 봉수댁에게 쏠렸다.
"지금 나보다가 하는 소린가?"
"몰라서 물어?"
새말댁의 말에 가시가 돋쳤다.
"말을 헐라면 똑 부러지게 하던지 그게 뭔소리여?"
"우리집양반 보란듯이 벗어 젖치고 목간 않했어?"
"이 여편네가 생사람 잡네. 목간이사 했지만. 보란듯이가 뭐여? 혼자 산다고 사람 무시혀?"
봉수댁이 새말댁의 머리 끄뎅이를 잡고 둘이서 샘바닥에 뒤엎어 졌다.
말리다 못한 아낙들이 두 여자들의 머리위로 물동이채 물을 퍼부어댔다.
찬물을 원없이 뒤집어 쓰고 나서야 싸움이 끝났다.
목물한번 시원하게 한 셈이다.
모두가 더위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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