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단상들
|
| |
|
|
| |
| |
| |
1.은행잎
간밤 천둥에 비바람 치더니 거짓말처럼 아침이 조용하다.
차창에 은행잎 몇잎이 물기에 젖어 붙어있다.
윈도부럿쉬를 돌려서 잎을 털어내고 아파트 골목을 빠져나온다.
도서관을 지나 보문산자락을 끼는 새 도로는 짧지만 상쾌하다.
봄이면 복숭아꽃 배꽃을 보여주던 산자락에 단풍이 곱게 밀려들었다.
이런 출근길을 날마다 지나는것도 도시사는 사람들에겐 흔치 않는
행복중에 하나이리라.
은행잎 하나가 윈도우 부럿쉬사이에 끼어 한동안 나풀거리며 따라오더니
어느새 나비같은 몸짓으로 바람속에 휩쓸려 버린다.
유리 한장 사이에 매달려서 무슨 말을 내게 하고 싶었던건 아닐까?
차창에
은행잎이 미쳐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묻어 있는것 같다.
맑은 가을아침
햇살이 곱다.
--------------------------------------------------------------------------------
2. 수련
봄빛이 돈다 싶을때 부터 아직 차가운 물속인데도
여린잎들을 앙징스럽게 내놓더니 어느새 흰빛도는 분홍꽃이 피었다.
녹색잎에 뒹구는 물방울이 햇볕에 영롱하다.
작은 이연못에 자리한지가 어언 몇해이언만
특별히 손을 봐준일 없는데도 해마다 고운 자태를 보여준다.
나무는 나무데로 꽃들은 꽃들데로 손을 봐주어야 제몫을 하지만
수련에겐 아무것도 해준것이 없는데도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진토의 세상을 밝히듯 곱게 피어주는것이 그저 미안할 뿐이다.
자신을 낮추다 못해 진흙탕속에서 시린 겨울로 제몸을 담금질하여
인간을 위해 아름다운 얼굴을 세상에 들어내는 섭리가 경이롭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어도 환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당신곁에 있어요.
내가 피어있는 동안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릴께요. 하는것만 같다.
그렇게 환한 모습 보이다가도
생명이 다할 때는 얼굴을 숙이고 물속에 잠겨 흔적을 감춘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던것처럼....
어떤 부담도 주지 않겠다는것처럼.... 추하지 앟게 사라진다.
조용히 제몸을 쓸어안고 물속으로 사라지는 수련을 보면서
오늘이 초파일이란 생각에 마음이 경건해졌다.
--------------------------------------------------------------------------------
3.이상과현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하는 옛날 남진의 노래가 있다.
술자리에서 으레 흥이나면 한곡씩 애창하는 곡이기도 하다.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
꼭 한번은 갖고 싶은 집이다.
자주 듣는 노래는 아니지만 가계에서 잔치라도 있는 날이면
어쩌다 한번씩 듣는 지금은 아 옛날이여를 자주 되뇌이는 층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나는 이노래를 들을때 마다 노래 그 자체로 듣지 못하고 왜 엉뚱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저 푸른 풀밭에 드러누어 하늘을 보면서 노래하고 싶다면,
눈앞에 보이는 풀밭으로 가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푸른 풀 밭은 어디로가고 억새에 잡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음을
보게 될것이다.
우리의 이상과 꿈은 현실앞에서 너무나 무력하다.
저 멀리있는것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좀더 충실하고
알뜰하게 가꾸는것이 좀더 현실적이란 생각을 해본다.
새장의 새는 밖으로 날아가고 싶고. 밖에 있는 새는 새장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서있는 자리는 인생이란것 자체가 그렇듯이 불만족스러운것이다.
그렇다면 멀리있는것만을 동경하고 그리워 할일만도 아닌듯하다.
그렇다고 이상을 꿈꾸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을 더 사랑하고 현실을 더 알뜰하게 가꾸고 헤쳐나가자는 뜻에서
오늘 우리집 잔치마당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실없는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
4.철지난 노란매꽃
봄이면 다른 꽃들과함께 질세라 황매화가 핀다.
봄한철 정원을 밝히기에 부족함이 없는 꽃이다.
이 황매화가 꽃이 다 지고난후에 가지치기를 해주었더니
다시 새순이 자라 봄처럼 그렇게 많이는 아니지만 다시 꽃이폈다.
철지나 핀 꽃이라선지 튼실하지 못하여 애잔한 정과함께
유독 눈길이 간다.
가을로 접어 드는 빗줄기에 황매화가 젖고 있다.
귀한 마음에 빗줄기가 그치면 꽃의 물방울을 털어주었다.
배롱나무꽃이 섭섭타하겠다.
오늘 가난한 젊은화가의 글에 전염되어
가는빗줄기에도 고개떨구고 있는 황매화를 바라보며
같이 마음이 심란해져졌다..
그가 황매화를 노란 매꽃으로 이름 붙이자 한다.
담배한모금을 길게 빗속정원으로 뿜어낸다.
배롱나무 꽃송이가 비에 젖고 있는 초가을, 노란매꽃이 애처롭다.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