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몽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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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가에 둘러앉은 아낙들의 웃음이 새벽 안개를 흐트러놓고 있었다.
"어야, 강몽댁! 어젯밤에 서방님이 품어 주던가?"
박주댁이 강몽댁옆에 바짝 다가 앉으며 장난끼 어린 질문을 던진다.
"지랄났다. 여펜네!"
쌀이 반은 더 들어간 양식을 쪽박에 넣고 박박 문지른다.
문지르는 손놀림이 생기가 돈다.
물길러 온 아낙들이 아무리 구슬러 봤지만
"지랄났다." 소리만 연방하면서 대답할 낌새가 없자 아낙들이 하나 둘
물동이를 이고 일어서려는데, 입담좋은 성골리댁이 부랴부랴 달려와선
물동이를 내려 놓는다.
"강몽양반 왔담서? 어쨌어?"
마치 그일을 물어보려고 우물에 온 사람같다. 다시 또 새판잡이가 되었다.
일어서려던 아낙들이 또 강몽댁을 둘러 싼다.
성골리댁의 입담도 강몽댁의 "흐"하고 웃는 표정밖엔 얻어내지 못하자
옆에 있던 양동댁이 들은듯이 한마디 툭 던진다.
"각방썻다고 안허요!"
그말은 싫었던지
"뭔 각방? 자네가 봤는가?"하고 부정한다.
"긍게 어쨌냔 말이시" 다시 성골리댁이 채근한다.
"뭘 어쪄!"
"아 긍게 말이시. 어찌게 씨는 받어놨는가?"
"미쳤는 갑네"
"강몽양반 내일또 간담서? 씨는 확실히 받아야되네. 오늘 밤에는 요렇게"
얄궂은 몸짓을 하면서 강몽댁을 놀린다.
"알았제? 잉?"
"지랄!"
왁자한 웃음이 또 한번 모여든 안개를 흐트러 놓는다.
강몽댁은 시집온 이래도 자식이 없다.
사람이 심성은 한없으나 좀 모자라서 아낙들로 부터 놀림을 많이 받는다.
손재주로 하는 일엔 언제나 끼지 못해 동네 잔치 부엌 수발에도
아궁이 불때는 일이나 물긷는 일 설겆이 밖에는 차지가 안온다.
그것도 건듯하면 그릇들을 깨기 일수여서 마음이 안놓인다.
그저 맘편히 잘 하는 일은 들일 뿐이다.
사람이 이러다 보니 강몽양반은 밖으로만 돌게 되고
마침내 장에서 만난 여자와 딴살림을 차려 목포로 떠나버렸다.
강몽양반 욕들을 했으나 떠난 사람이 들을 리도 없고
애절한건 강몽댁 뿐이었다.
그후로 이삼년만에 한번씩 들려서 하루나 이틀쯤 있다가 떠나더니
이번에는 근 오년여만에야 돌아온것이다.
이번 방문에는 동네사람들의 귀에도 반가운 일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강몽댁을 데려간다는 소문이다.
또 다시 훌쩍 돌아갈것이라고 생각했던 동네 사람들도 의외라서
"강몽양반이 사람되았구만. 아먼 그래야제"
하며 다들 좋아했다.
허접 쓰레기같은 살림 특별히 가져갈것도 없고 해서 몸만갔다가
나중에 다시 들러 살림을 가져갈것이라고 했다.
"워따! 강몽댁 살일났네! 고생허고 산 보람 났네"
"가거던 병신노릇하지말고 아랫목에 앉어서 작은각시 부리고 살소 잉?"
"그럴수야 없겄제. 자식놓고 사는 사람 이제 어쩌것는가? 오손도손 살소"
아낙들은 아낙들데로 떠나는 강몽댁을 축복했다.
"야야"대답만 연상하던 강몽댁도
장농에 깊이 넣어둔 새옷으로 갈아입고 언제 준비했던지 하얀 고무신
꺼내 신고 떠날 채비를 했다.
갑작스런 결정이었을텐데도 언젠간 이날이 올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으로
보였다.
강몽댁이 떠나는날이 마침 장날이었고 군내버쓰가 처음으로 개통
되는 날이기도 했다.
사람들마다 버스를 타보려고 굳이 안가도 될 장엘 가느라
버스는 이미 두번째 정거정인데도 제법 들어 차 있었다.
그때 일이 벌어졌다.
뻐스가 도착하자 강몽댁이 신발을 벗어들고 버스에 올라탄것이다.
"신발은 왜 벗어? 여편네야" 옆에 아주머니가 퉁생이를 주고
사람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 뻐스가 하도 깨깠해서"
강몽양반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읍에 도착해서 마을 사람들과 눈물바람하며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고
강몽댁은 저만큼 목포행 차부로 먼저 걸어가는 강몽양반을 향해 걸음을 쟀다.
그러나 목포행 차가 출발할때 강몽댁은 그 차에 타지 못했다.
강몽양반만 떠나 버린것이다.
사람이 모자라서 평생을 우는것을 본 일이 없었는데
그날 만은 강몽댁이 울더란다. 서럽게 울더란다.
새옷은 벗어 다시 차곡차곡 개어 장농에 넣어두더란다.
특별히 장에 갈일도 없었지만 어쩌다 장에 갈일이 있어도
남들 다 타고가는 버스타지않고 혼자 걸어서 장에 가더란다.
밭일을 하다가도 하루에 두번 지나가는 버스만보면 "오살헐넘의 버스!"하고
혼자 두런거리더란다.
세월이 자꾸 흘러서 잊을만도 하련만 아낙들은 심심하면 강몽댁을 놀린다.
"이놈의 여편네야! 고무신짝은 왜 벗어들고 타!"
"흐흐~ 내가 차를 언제 타 봤어야제!"
그런 강몽댁이 피붙이 하나 없이 사십여살 이른나이에 죽었다.
다시 새옷을 입어 볼 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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