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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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밤,
어둑해지면서 대소가의 모든 식구들이 할아버지가 계시는
큰집에 모여든다.
새옷 새신발로 차리신 어른들도 결코 어린아이 못지 않게 낙낙한
즐거움이 역력하다.
"아이고 갈재서방님! 그렇게 채려입고 나오니께 새신랑같소!"
큰어머님이 손아래 사촌 시동생에게 농을 던진다.
언제나 젊잖고 말없으신 갈재 당숙은 "그래요?"하고 가벼운
웃음으로 응답하신다.
해가 가기전에 지난 한해의 불편했던것 서운했던 것들을 어른들
모시고 둘러앉아 털어버리는 시간을 갖는것. 이걸 묵은 세배라고 한다.
종일 떡을 찌고 나물을 익히느라 뜨거워진 아랫목에선 술이 괴고
식혜동이가 익고 있다. 할머님은 연신 술이 너무 넘는건 아닌가
조바심이시다.
세분 할아버님 자손들이 모여앉으면 이 큰방이 언제나 비좁다.
할아버님들 사이사이에 당신의 손자들이 밤알처럼 촘촘히 박혀있고
뽀시락 장난이 한창이다.
"형님! 금년엔 죄송하게 됐어요."
"잊어 버리자"
저수지의 물을 받으면서 당숙과 숙부님이
물꼬때분에 크게 다투시고는 그해 두분이 몹시 불편하게 지내셨다.
가문해 저수지의 수문을 여는 날에는 온 식구가 동원된다.
논배미 물대는 일은 한해 농사를 좌우하는 중대사라서
형제라 할지라도 멱살잡이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법이다.
잘잘못이야 어느 이유 없을까만은 형님에게 대드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죄송했다 말씀하면서도 아무래도 서운했던지
"그렇지만 형님이 좀 너무하셨어요. 하하"하며
너스레 웃음으로 농치며 넘어가려 했지만
당숙의 심기 불편한것이 금방 방안의 공기가 팽창하는듯 했다.
"어흠!"
할아버님의 기침이 나직히 울린다. 일종의 경고이시다.
"오빠! 술상좀 들어줘요"
눈치빠른 고모가 재치있게 숙부를 불러낸다.
"큰오빠! 이 산적 내가 붙였는데 간좀 바 줏시오!" 하고 큰 당숙의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어양이다.
어른들 앞이라서 큰 소리가 날 수는 없는 밤이긴했다.
마무리 못한 問事며, 농사일 등으로 서운했던일 안주삼아
덕담주무르며 그믐밤은 그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당숙이 음식수발하는 고모를 가르키며
"백부님! 내년에는 야 시집보내야지요?"
"아이~ 오빠는..."
고모는 부엌으로 내닫고 왁자한 웃음이 방안을 채운다.
"닭 울겠다. 이젠 그만 가자"하고 종조부님이 일어서신다.
인생살이가 어찌 덕담만 주고 받으며 살아질것인가.
그믐밤은 그렇게 섭섭한 일들을 양념삼아 털어버리면서 새해는
더 우애있게 지내자 다짐한다.
아직도 큰어머니와 어머니 고모들의 할일은 태산이다.
잠을 자면 눈섭이 하애진다는 할머니의 말씀에도 동생들은 깊은 잠에
빠졌지만 나는 긴가민가 의심속하면서도 눈이 하애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을 쫓으려고 애썼다.
아니다, 어쩌면 철질하는 고모가 큰어머니 몰래 살짝 살짝 입속에
넣어주는 부침게를 못잊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는 잠을 어쩌랴.
어머님과 큰어머님이 쌔겨대던 조청이 엿가락이되어
대청마루에서 겨울 찬기운에 파삭하게 굳어지는 동안 나는 잠이 들었다.
고모가 장난삼아 눈섭에 밀가루를 바르는것도 모르고......
우리모두가 가졌던 공통된 추억의 한토막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도 즐거운 추억 되살리시고 행복한
시간들 가지시기 바랍니다.
"白巳" "靑巳"
거꾸로 붙이고 모든 재앙을 막아달라고 저도 빌렵니다.
그믐밤
묵은 세배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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